손톱만 한 칩 하나에 미국 국회 도서관의 모든 서적 정보, 또는 영화 4000편을 담을 수 있는 획기적인 메모리 기술이 개발됐다. 현존 기술보다 40배 이상 저장 용량이 큰 수준이다.
네덜란드 델프트 대학의 샌더 오테(Otte) 교수팀은 구리 판 위에 염소 원자를 하나씩 규직적으로 배열한 메모리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같은 성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나노테크놀로지 18일자에 발표했다.
델프트 대학의 오테 교수. /델프트대학 제공
연구진은 STM(scanning probe microscope)라는 장치를 활용해 염소 원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했다. 끝이 수 나노미터(1나노미터=100만분의 1미터)에 불과한 STM은 집게처럼 원자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이다. 과거 IBM 연구소가 같은 원리로 제논 원자를 갖고 IBM이라는 글자를 쓴 적이 있다.
오테 교수팀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염소 원자와 원자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했다. 염소 원자와 빈 공간을 전기가 통하는 1, 통하지 않는 0으로 간주하면 메모리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이르렀다.
연구진은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성공해 데이터를 읽기도 하고 쓸 수도 있는 1 킬로바이트짜리 장치를 개발했다. 메모리의 최소 단위는 비트(bit)이고 8개의 비트가 모이면 1바이트(byte)를 구성한다.
만일 이런 식으로 1제곱센티미터짜리 메모리 장치를 만들면 10테라바이트의 메모리를 저장할 수 있다. 통상 노트북의 하드디스크가 128GB(기가바이트)이다. 1테라바이트는 1024GB이다. 10테라바이트이면 1만240GB이다.
원자를 배치해 메모리 장치로 활용하는 구상을 도식화했다. /델프트 대학 제공
오테 교수팀이 개발한 장치를 엄지 손톱만하게 키우면 노트북 80여대 분량의 메모리를 모두 담을 수 있다. 네이처는 "이 정도의 용량이면 미국 국회 도서관의 서적이 가진 정보를 모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테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장치는 역사장 최고로 집적도가 높은 장치"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양산하는 48단 V낸드를 적용하면 손톱만한 크기에 256기가바이트의 데이터(초고화질 영화 50편, 일반 영화파일 100개 이상)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성과가 상용화될지는 미지수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영하 196도에서 성공했다. 질소 가스가 액체로 바뀌는 온도이다. 상온에서 실현하려면 생산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IBM의 크리스 루츠(Lutz) 연구원은 "오테 교수팀의 성과는 원자 세계에서도 인류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고를 넓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