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서 한복 입고 한국화 그리는‘독일인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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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담양 고택에 사는 사세 한양대 석좌교수
“아궁이 장작불 지피고 마루서 자연 감상 즐거워”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한국화를 그리며 한국의 정취에 흠뻑 빠져 사는 독일인. 베르너 사세(67·사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가 주인공이다.

독일 보쿰대와 함부르크대에서 한국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정년퇴임 직후인 2006년 9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가 터를 잡은 곳은 광주시 도심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문만 나서면 들판이 펼쳐지는 농촌 마을이다.
 
그의 집을 찾아갔더니 푸른 눈과 반백 구레나룻의 이방인은 개량 한복을 입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손님을 맞았다. 질투심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버린 걸 남이 주워다 요긴하게 쓰고 있을 것을 봤을 때처럼 말이다.

“1920년 대에 지었대요. 비어 있던 것을 빌려 살고 있죠. 원래 이름난 집이라 구경 오는 사람도 많아요.”

유창한 한국말이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살기엔 불편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난 별로 불편한 게 없거든요.”

이곳에 온 건 6㎞ 떨어진 곳에 독일 보쿰대 한국학과 교수 시절 제자였던 빈도림(55·본명 디르크 퓐들링)씨 부부가 사는 게 인연이 됐다.

“한옥에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퓐들링의 이웃이 이 집을 구해 줬어요. 고재욱씨 집이었대요.”

고재욱(1903~76)씨는 동아일보 주필·사장·회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그의 아버지가 80년 전에 건축한 본가에 사세 교수가 살고 있다. 대지가 2000㎡에 이르고, 앞·뒤뜰에 제법 큰 소나무 두 그루를 비롯한 크고 작은 갖가지 나무와 꽃으로 가득하다. 건물은 본채(162㎡)에 사랑채·아래채까지 합쳐 361㎡나 된다. 고재욱씨 손자인 고영진 광주대 교수(49·한국사)는 “한옥의 가치를 잘 아는 분이어서 선뜻 빌려 줬으며, 집을 깨끗이 잘 써 줘 고맙다”라고 말했다.

사세 교수는 본채는 대청마루를 서재로 쓰고, 방 넷 중 하나는 화실로 이용하고 있다. 사랑채에 꾸민 입식 주방과 온돌방에서 먹고 잔다. 창고로 쓰던 아래채의 일부를 리모델링해 욕실 겸 화장실을 만들었다.

본채 마루 밑에는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게 귀찮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왜요?”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재미있단다.

그는 하루에 수도 없이 본채·사랑채·아래채를 오가며 마루·댓돌·토방·마당을 오르내려야 하는 한옥 구조에 대해서도 보통 우리나라 사람과 반대로 받아들였다. “뭐가 불편해요? 운동이 돼 몸에 좋잖아요.”

그를 사로잡은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이 뭔지 궁금했다. “보세요”라며 턱을 들어 방문 아래 정원과 창 밖 산을 가리켰다. “(건물) 안과 바깥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돼 있어요. 겨울만 빼곤 마루를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생활하잖아요. 아파트는 사람을 가두는데, 한옥은 밖으로 열려 있어요. 그리고, 재료가 다 나무·흙·종이니까 건물 자체가 자연이죠.”

지난 여름엔 손자가 와 석 달간이나 있었고, 연말엔 큰아들이, 내년에는 이혼 뒤 친구처럼 지내는 전 부인이 찾아올 예정이다.

“마을에 서양사람이 사는 게 어색하면서도 호기심이 드는지 ‘어떻게 사나’ 하고 이웃들이 기웃거리곤 해요. 그것도 관심이고 친절이어서 싫지만은 않아요. 마을이 슬로 시티(Slow City)로 지정받아, 안길 담장들을 옛날식으로 고치고 공터에 정자도 세우는 등 전통의 모습과 가치를 되찾아 가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는 이 집에서 한지에 그린 수묵담채의 한국화를 모아 서울 서초구 정우갤러리에서 ‘꿈’이라는 주제로 이달 30일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다.

글=이해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베르너 사세=장인이 전남 나주 ‘호남비료’에서 근무하던 1960년 후반 여수·익산 등에서 기술학교 강사로 일했다. 귀국해 보쿰대서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 방언’으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돼 한국학과를 개설했다. 92년 함부르크대로 옮겨 한국학과를 개설했고, 유럽한국학협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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