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죽음 체험 하루 피정’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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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명동성당 옆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김보록 신부가 ‘자신을 위한 장례미사와 고별식’을 집전하는 모습. 참가자들이 관 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고 있다.
관 뚜껑 닫히니 칠흑 속 무덤 ‘죽음의 5분’ 다시 만난 세상은 …
무엇을 위해 살다 죽는가 …
남은 삶이 새삼 고마워
150여 참가자 모두 눈물
 
16일 오전 9시30분. 일요일 아침이었다. 서울 명동의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선 ‘하루 피정(避靜)’이 열렸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제대(祭臺) 앞에 기다란 관(棺)이 하나 놓여 있었다. 관은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영락없는 ‘장례 미사’ 풍경이었다.

그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았다. 그리고 차례가 되자 관 뚜껑을 열었다. 참가자는 관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그리고 누웠다. 많은 이들이 지켜봤다. 진짜 장례식 같았다. 옆에 선 사람이 ‘탁!’ 하고 관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흰 천도 덮었다. 캄캄한 어둠, 참가자들은 그렇게 5분가량 ‘죽음’ 속에 누워 있었다.

강단에 오른 김보록(68·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신부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묵상해 보라. ‘죽음’을 알아야 ‘삶’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다. 관 앞에 선 사람이 ‘똑! 똑! ’하고 뚜껑을 두드렸다. 그리고 관을 열었다. 누웠던 사람이 일어났다. 눈이 벌겋게 젖어 있었다. 관에서 나온 40대 후반의 여성은 십자가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눈에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다음 사람이 관 속에 들어갔다. 그 위로 찬송가가 흘렀다. “인생은 나뭇잎 / 바람이 부는 대로 가네 /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 / 언젠가 떠나리라.” 노랫말을 따라 참가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묵상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김 신부는 그것도 지적했다. “다들 이 목숨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생명은 하늘로부터 잠시 빌린 거다. 그걸 정성을 다해 살고,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거다.” 그리고 김 신부는 죽음의 순간에 올릴 자신의 실제 기도문을 공개했다. “당신께서 주신 이 생명을 제가 왜 정성을 다해 살지 못했는지, 오직 그것만이 안타깝습니다.”

강당은 숙연해졌다. 관 앞에서 한 시간째 차례를 기다리던 유혜경(48·사업가·여)씨는 “순서가 점점 다가올수록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에 들어갔다. 5분 후에 관 밖으로 나온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지난해 3월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고통 속의 엄마’가 지금껏 내겐 큰 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관 속에 들어가니 참 고요하더라. 내가 생각했던 죽음과 많이 다르더라. 동시에 ‘엄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고마운 체험이다.”

다음 달에 영세를 받는다는 이수경(45·화가·여)씨도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다시 태어나는 심정이다. 내게 남은 삶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사랑을 실천하며 남은 삶을 채워야지’란 다짐을 한다. 그래야 정말 관 속에 누웠을 때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들을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관 속의 어둠은 과연 어떤 색일까. 그래서 직접 관 속으로 들어갔다. 뚜껑을 열고, 두 다리를 넣고, 길게 누웠다. ‘스~르~르’ 하고 관 뚜껑이 닫혔다. 그 위에 천까지 덮이자 완전한 어둠이었다. ‘아! 이거구나. 이게 바로 무덤 속이구나’ 싶었다. 동시에 절절하게 실감이 났다. ‘관 밖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구나. 사람도, 물건도, 그 어떤 것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구나. 관 속에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구나. 바로 ‘나의 마음’이구나. 그 마음만 이 안에 담기는 거구나. 그래서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정말정말 중요하구나’.

피정 참가자는 150명가량 됐다. 멀리 부산에서 올라온 이도 있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온 가족도 있고,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팔을 벌렸다. 죽음과 고통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걸 힘껏 껴안았다.

오후 3시, 제대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눕혀졌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려 예수의 몸에 입을 맞추었다. 못 박힌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머리의 가시관에 뺨을 대고, 옆구리의 창 자국을 어루만졌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뚝, 뚝’ 흘렸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무엇을 위해 죽는가, 또 무엇을 위해 살다가 죽는가’. 피정으로 죽음을 체험한 이들은 그 물음 앞에 섰다. 죽음을 향한 물음, 그건 바로 삶을 향한 물음이었다.

백성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피정(避靜·Retreat)=묵상이나 침묵 기도 등을 통한 기독교의 종교적 수련을 말한다. 주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묵상, 자기 성찰, 기도 등을 통해 나와 예수 사이의 간격을 좁혀 가는 과정이다. 피정은 예수가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했다는 마태복음의 전승에 근거한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 예수회 창시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피정을 발전시켰다. 성공회에선 1856년 수도원 운동 등의 전통을 회복하면서 피정을 종교적 수련으로 인정하게 됐다. 피정은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 피정의 집 등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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