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미국의 노인·장애인 환자 수천명이 요양시설에서 강제 퇴거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장기 요양환자보다 수익성 높은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위해 기존 환자들을 낡은 모텔, 노숙인 보호시설 등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쫓겨난 이들은 요양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코로나19에 노출될 위험을 겪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전역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과 장애인들이 낡아빠진 모텔과 노숙인 보호시설, 기타 안전하지 못한 시설들로 쫓겨나고 있다고 미국 16개 주의 22개 시민단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쫓겨난 피해 환자 규모는 미국 18개 주에서 최소 6400명에 달한다.
미국 연방정부 규정상 요양시설이 30일 전에 고지 없이 환자를 쫓아내는 것은 불법이지만, 미국 전역에서 강제 퇴거 프로그램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최대 영리 요양원 체인인 ‘록포트 헬스케어 서비스’의 임원은 지난 3월 31일 ‘즉시 퇴원 계획’을 밝혔다가 내부 고발로 발각됐다. 내부 고발자인 마이클 와서만 전 최고경영자(CEO)는 “가장 가난하고 수익 낮은 환자들을 수익성 높은 환자로 교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요양시설에서 일하던 내부 고발자들도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려고 기존 환자를 강제로 쫓아내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요양시설이 기존 환자들을 쫓아내는 이유는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면 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정책도 강제 퇴거 행위를 부추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공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지난해 가을부터 장기 요양환자보다는 급성기 환자의 수익성을 더 높게 책정하도록 요양시설 보상 방식을 바꿨다. 그 결과 요양시설은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면 다른 장기 요양환자보다 하루 600달러(약 73만원)를 더 벌 수 있게 됐다.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할 종합 병원들의 병상이 부족해지자, 요양원이 대신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도록 정책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쫓겨난 기존 환자들은 돌봐줄 의료인력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 노출됐다. 일례로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치매 환자인 RC 켄드릭(88)은 로스앤젤레스의 요양시설 레이크뷰테라스에서 지난 4월 6일 가족들 몰래 강제 퇴거당했는데, 일반 하숙집으로 옮겨진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혼자 도시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발견됐다. 척추수술 후 사지가 마비된 데이비드 멜러(54)도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한 요양원에서 재활하다가 지난 4월 반강제로 쫓겨났다. 한 노숙인 수용시설에 수용된 그는 다시 걷기 위한 재활 운동을 가르쳐주거나 혈당 조절 약과 진통제를 투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채 방치됐다.
강제 퇴거는 요양원 환자들의 코로나19 사망 위험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요양원 입원 환자단체 7곳은 지난 3월 뉴욕주 보건부에 서한을 보내 요양원 환자 퇴거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기저질환이 있어 감염병에 취약한 환자들이 더 열악한 집단 시설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코로나 사망자의 40%는 요양원에 입원했던 노인·장애인 환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