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약, 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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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藥문問약藥답答

작은 나무를 들고있는 손

지난해 2월 미국의 <타임>지 표지에는 귀여운 아기 사진과 함께 깜짝 놀랄 만한 문구가 실렸다. 표지 속의 아기가 142세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표지에서 언급한 수명 연장이 절제된 식습관, 낙천적 성격, 규칙적 생활이 아니라 특정한 약의 복용을 통해 가능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약으로 장수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

<타임>의 과감한 헤드라인은 ‘라파마이신’이라는 약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기사 내용은 미국 텍사스대학 헬스사이언스센터 연구팀이 라파마이신을 복용한 쥐의 평균 수명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했는데, 이 연구팀은 라파마이신을 복용한 쥐가 그렇지 않은 쥐보다 1.77배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7개월이던 쥐의 생존 기간이 무려 48개월까지 연장된 것이다. 표지 속 아기가 142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추측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일 라파마이신의 노화 억제 기능이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이 현재의 80세에서 142세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라파마이신’이라는 수명 연장 약

라파마이신은 어떤 약이기에 동물의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까? 이 약은 1972년 이스터섬의 토양 세균에서 처음 발견된 물질이다. 사람 얼굴 모양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을 현지인들은 ‘라파 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따온 이름이 라파마이신이다(rapa는 Rapa Nui에서, Mycin은 이 항생물질을 만드는 스트렙토미세스 Streptomyces균에서 온 말이다). 라파마이신의 원래 용도는 항진균제다.

페니실린이 곰팡이가 주위 세균을 제압해서 자기들만 잘 살아보자고 만드는 물질이라면, 반대로 라파마이신은 세균이 주변의 곰팡이를 잡으려고 만드는 약인 셈이다. 이 약은 쓰는 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라파마이신을 고용량으로 쓰면 면역억제 효과를 나타내는 데 반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을 쓰면 동물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라파마이신이 사람의 수명을 142세까지 연장시켜줄 수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섣부르다. 같은 약이라도 쥐와 사람의 반응은 다르다. 동물 실험에서 기대를 불러일으킨 신약이 사람에게는 무용지물되는 경우가 80%를 넘는다(특정 건강기능식품의 효과를 선전하는 광고에서 동물실험을 근거자료로 제시하는 경우 의심해봐야 할 이유다). 라파마이신이 실제로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어떤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보려면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한 쪽에는 약을 주고 다른 한 쪽에는 가짜약을 주는 식으로 실험해야 한다.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게다가 사람처럼 수명이 긴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하려면 기간이 수십 년이 걸린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장수에 대한 연구에 효모, 기생충, 초파리, 쥐가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본래 기대수명이 짧다.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은 20일, 초파리는 40일, 쥐의 평균 수명이 2년이 조금 넘는 정도다.

 

동물실험, 칼로리 40% 줄이면 수명 30~50% 연장

약으로 142세까지 장수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하지만 장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라파마이신이 어떻게 동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나타내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포에는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복잡한 대사경로가 존재하는데, 노쇠한 세포에서 이런 경로의 속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노화의 해로운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유하자면, 나이들면서 머리숱은 점점 줄어들지만, 콧털은 성장을 멈추지 않고 더 길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파마이신은 이 대사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스위치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세포는 좀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손상을 덜 입는 절약모드에 들어가게 되면, 마치 노트북의 배터리 수명이 길어지듯 동물 수명이 연장된다. 이 대목에서 라파마이신을 복용 할 수 없다고 땅을 치는 독자들에게 희소식이 하나 있으니, 소식도 라파마이신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렇다. 섭취칼로리를 제한하면 라파마이신 없이도 mTOR이라는 단백질이 활성화되는 걸 막을 수 있으며, 노화를 늦추고 당뇨병 같은 질환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 동물 실험에서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도록 먹이를 주면서 칼로리를 40% 정도 줄이면, 대조군에 비해수명이 30~50%까지 늘어난다. 사실 소식에는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라파마이신의 부작용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라파마이신이 수명을 연장시키기는 했지만, 동시에 신체 사이즈가 30% 줄어들고, 당뇨와 녹내장 위험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수를 위해 감수하고 약을 복용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라파마이신을 ‘동전’이라고 하면 효과는 앞면, 부작용은 뒷면과 같아서 현재로서는 둘을 떼어내기가 어렵다.

 

오래 살면 행복할까

장수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약으로 ‘메트포르민’도 있다. 이 약은 당뇨병 치료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약으로 라파마이신과 비교하면 부작용이 가볍고 적게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몇몇 연구에서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당뇨병 환자들이 다른 당뇨병약을 복용한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8년 정도 더 오래 살며,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이나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메트포르민도 라파마이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칼로리 제한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어 생쥐의 수명을 다소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메트포르민은 사람의 수명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한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 연구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고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암, 심장병, 치매를 앓고 있거나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70~80대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간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장수에 관한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은 사실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40년 전과 비교하면 평균수명이 크게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그중에서도 증가폭이 크다. 50년 전 불과 52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영양과 위생, 환경이 좋아지고 현대 의약이 놀랍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덕분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고혈압인 사람은 항고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으로, 당뇨병인 사람은 당뇨병 치료약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암에 걸린 사람은 항암치료와 약제를 통해 지금도 각자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 수명을 약으로 연장할 수 있느냐, 그리고 약으로 수명을 연장하는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더 복잡하고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장수하는 약을 복용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아니오”라고 답했다. 사회적·개인적으로도 늘어나는 수명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대다수가 그들의 반려견의 수명이 연장되도록 약을 사용하는 데는 찬성했다. 반려견과의 이별이 상상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약으로라도 연장하고 싶다는 것이다(라파마이신이 개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실제로 진행 중이다).

결국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오래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오래 살아도 행복할까’인지도 모르겠다.

 

정재훈 약사

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경기도 분당 정자동에서 ‘J정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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