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 그레이(Jorg Gray) 6500’이란 시계가 있다. 검은색 바탕에 세 개의 타이머가 자리 잡은 325 달러(약 36만5000원)짜리로, 일반적인 ‘명품’ 반열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시계다.
까만 가죽 줄에는 하얀 스티치가 테두리에 박혀있다. 금빛 번쩍이는 롤렉스(Rolex)나 보석이 박힌 오메가(Omega)와는 가격을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이 시계는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바로 ‘버락 오바마’가 차는 시계이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이 시계를 찬 것은 재작년 여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당내 대선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부터다. 그가 그해 11월 4일 밤 대선 승리 연설을 할 때에도, 작년 4월 런던의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도 이 시계는 줄곧 그의 손목에 있었다.
이 시계를 제작하는 조그 그레이 사(社)로선 가만히 앉아서,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사 시계를 선전해 주는 셈이 됐다.
이 시계가 ‘오바마 손목시계’가 된 사연은 이렇다.
3년 전 미 국토안보부 소속의 비밀 경호국(Secret Service) 직원들은 딱 50개의 시계를 이 회사에 주문했다. 시계의 다이얼에 경호국 마크가 찍힌 시계였다. 그런데 2007년 8월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오바마는 자신의 46번째 생일을 맞아 자신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 요원으로부터 이 시계를 선물 받았다.
이후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은 미셸 오바마 여사가 이전에 자신에게 선물해 죽 차고 있던 태그 호이어 시계를 풀고, 조그 그레이 사의 이 제품을 차기 시작했다.
그 뒤,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오바마의 왼쪽 손목에 있는 이 시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계 제작사인 ‘조그 그레이’의 트레버 그네신(Gnesin) 회장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당신 회사의 시계를 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그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며 “비밀경호국 주문시계에는 우리 회사 로고가 아주 작게 새겨져 있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여러 장의 사진을 검토해 마침내 우리 회사 제품인 것을 알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공식석상에 이 시계를 차고 등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예 오바마가 외국을 방문하면, 그 나라 국민 사이에서 조그 그레이 사의 웹사이트로 접속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오바마가 베를린에 가면 독일에서의 사이트 접속이 빗발치고, 프라하에 간 날에는 체코 이용자들의 이 시계회사 접속이 폭주한다.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이 찬 모델인 조그 그레이 6500은 미국에서 판매량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시계 중 하나다. 물론 일반인들이 주문하는 이 시계에는 미 비밀 경호국 로고는 없다. 해당 회사는 최근 오바마가 착용했던 것과 동일한 모델에 그의 취임식 날짜를 새겨 기념 판 시계를 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