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있는 여자의 이중결혼 “상상 속 얘기는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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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이 여자, 유럽 클럽 축구에까지 해박한 축구팬인 데다, 잠자리에서는 선수의 기량을 200% 발휘하게 하는 명감독이다. 역시나 축구팬인 남자는 단연 사랑에 빠지는데, 부여잡기 힘든 이 여자의 자유로움을 눈치채고는 버거워한다. 그럼에도 놓치기 싫은 그녀의 매력에 끌려 이 사랑을 좇고, 내처 결혼까지 졸라댄다. 이번 주(23일) 개봉하는 영화‘아내가 결혼했다’(감독 정윤수)의 전반부는 이색적이되, 평범한 로맨스물이다. 그런데 이 여자 인아(손예진), 결혼한 남편 덕훈(김주혁)에게 어느새 새로운 남자 재경(주상욱)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불륜? 아니, 이 여자는 둘을 모두 사랑하고, 둘을 모두 남편 삼겠단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간다, 천연덕스럽게도. 그래서 이 영화는 지극히 일상적인 동시에 지극히 전복적이 된다.

 기막힌 상황에 처한 남자 덕훈의 상처와 감정을 알알이 그려내는 김주혁의 연기도 칭찬할 만하지만, 역시나 눈길을 끄는 건 이 색다른 욕망의 주인공 인아다. 쉽지 않았을 역할에 손예진(26)은 적절한 각색을 바탕으로 육화된 매력을 물씬 입혀냈다. 2006년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박현욱(41)과 함께 이 평범하고도 발칙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설에는 결코 예쁜 여자는 아닌 걸로 표현돼죠. 읽으면서 이건 내가 아닌데(웃음), 했어요. 소설에서는 냉소적이었던 인아가 시나리오에는 적극적인 인물로 나와요.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죠. 막상 시나리오를 받아 내가 연기해야 한다고 보니 솔직히 엄두가 안 났어요. 제 것이 아닌 것 같았죠. 대사를 읽으면서 혼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고요(참고로, 청소년 관람 불가다).”

손예진의 솔직한 말에 작가도 “캐스팅 소식에 너무 미인이다 싶었다”고 공감했다. “미모가 아니라 일상에서 보면 볼수록 풍부한 표정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는 인물로 상상했다”는 말이다. 영화와 소설의 표현방식은 다른 법. 손예진은 감독이 주문한 인아의 특징을 “무조건 사랑스러워야 한다”로 전했다. 이 전례없는 인물이 설득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 영화가 택한 전략이다. “덕훈이 인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소설에는 수많은 말을 써놓았는데, 영화에서는 배우의 눈웃음, 거기에 살짝 고이는 눈물이면 충분했죠.”

작가의 은근한 칭찬에 배우는 “소설이 부럽다”고 한다. “영화는 설명 대신 한 장면으로 보여줘야 하니까요. 사실 어디까지를 보여줄지 선택의 기로가 많았어요. 개인 손예진은 덕훈의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인아와 괴리감을 느꼈죠. 하지만 손예진과 인아의 싸움에서 인아가 이겨야만 했어요.”

사실 ‘연애는 좋아, 결혼은 싫어’라면 몰라도 이중결혼이라니, 인아의 욕망은 여자들도 쉽게 상상하지 못한 바다. 손예진 역시 그랬다. “결혼하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건 다들 이해하죠. 그래서 불륜이나 이혼도 있고. 그런데 왜 또 결혼을 하겠다는 건지. 저는 인아가 돼야 하는데, 덕훈이 안쓰럽고 불쌍했어요. 스태프들도 인아를 미워했죠. 저 혼자 여러 명과 싸운 듯 싶어요. 지금도 제가 100% 이해를 했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작가의 느릿한 말투가 답한다. “저는 소설에 쓴 한두 문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이해하는 분도 있었는데, 아니라는 분이 더 많았죠(웃음). 인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부(情夫)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죠. 결혼해서 살아보니 좋더라, 그 좋은 걸 또 나누고 싶은 거죠.”

그런데 손예진의 열혈 중국팬이 번역해 보내줬다는 영국 신문의 기사가 재미있다. 인아처럼 두 남자와, 그것도 한집에 사는 여자의 사연이다. “첫 남자가 두 번째 남자를 만나면 주먹을 날리고 싶었대요. 막상 만나자마자 동질감을 느끼고 악수를 나눴대요. 여자는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말해요. 인아가 상상 속의 인물만은 아니구나 싶었죠.”

영화 속의 인아는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과는 거리를 둔다. “사랑스럽되 여우 같은 여자는 아니어야 했죠.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잖아요. 덕훈은 이래서 좋고, 재경은 저래서 좋고, 두 사람 모두 진실되게 사랑하는 거라고, 저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했어요.”

직장 일에 더해 헌신적으로 두 집 살림을 유지하는 인아의 모습은 차라리 수퍼우먼에 가깝다. 영화 속에는 남녀의 고정관념, 혈연중심의 자식 개념 등 통념을 뒤집는 대목이 적지 않은데, 두 집 살림의 수퍼우먼은 여자들의 욕망과 어긋나는 대목이다. 손예진은 “인아가 너무 완벽하게 비쳐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인아는 두 남자를 모두 갖기 위한 대가로 희생의 의미에서 더 책임을 지려는 거죠. 영화에 살짝만 나오는데,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있어요.” 작가는 덕훈의 입장을 부연한다. “인아가 수퍼우먼처럼 되는 건 두 번째 결혼을 한 이후예요. 남자 입장에서는 심술스러운 마음이 안 들 수 없죠. 그래서 일부러 어지럽히기도 하고, 아무 집안일도 안 하죠. 사실 남자들이 그렇게 쪼잔하거든요.”

손예진은 인아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해석을 많이 더했다. 예컨대, 연애시절 밤늦도록 연락이 닿지 않던 인아를 만나 덕훈이 ‘술마셨냐, 남자랑 마셨냐, 잠도 잤냐’고 다그치는 장면이다. “저는 그날은 안 자고도 ‘잤어’라고 답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간섭받기 싫어하고 집시 같은 인아가, 덕훈만큼은 한국 남자 중에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마찬가지구나, 하고 반발하는 거라고 해석했어요. 저 혼자서, 인아는 외국에서 살다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작가는 원작 소설에 대해 “사랑, 좀 다른 사랑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1:1이나 남자:여자의 구도를 바꾸고, 기왕에 결혼까지 하면 더 이야기가 많아지겠다 싶었죠. 그래서 첫 줄(‘아내가 결혼했다’)을 썼는데, 감이 안 잡혀서 2년을 묵혀뒀어요. 한참 썼다가, 아닌 것 같아 다시 썼고요.” 그는 원작에 대해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다. “저도 페미니스트가 아니고요. 저는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런 다른 사랑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의 가장 새로운 점이 여기 아닐까. 일부다처의 남성적 욕망과 관습에 대한 여성판 데칼코마니를 찍는 대신, 조금 다른 가족·결혼 구도를 그려낸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너 정말 무서운 여자구나” 하는 덕훈의 대사가 실감난다. 인아는 지극히 일상적인 작은 세계, 그러나 강력한 사회적 통념이 지배하는 가정이라는 세계를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다. 어쩌면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이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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