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쓴 58편 이야기 … 10년 걸렸네요

관리자 0 6,481
남들은 손으로 글을 쓰지만, 황원교(49·사진) 시인은 입으로 쓴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톡톡 건드려 한자 한자 쳐넣는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 4, 5번 사이의 척수가 끊어졌다.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단 5분간, 한 손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체없이 목에 칼을 꽂고 싶었단다. 그러나 1996년 등단한 데 이어 시집을 두 권 냈다. 이번엔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바움)를 펴냈다. 58편의 이야기로 270쪽을 채우기까지 그는 몇 번이나 고갯짓을 했을까.

충북 청주 시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직접 받았다.

“집에 혼자 있을 땐 헤드셋을 항상 끼고 있어요. 손은 못 쓰지만 어깨 힘으로 손목을 움직여 후크를 눌러 전화를 받지요.”

그렇게 되기까지 피눈물 많이 흘렸다. 죽는 게 낫겠다며 곡기를 끊었다가 병세가 악화돼 공연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도 했다.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하던 어머님이 병수발 7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인생관이 달라졌다.

“세상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며 자포자기하듯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나도 정말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가겠구나….”

컴퓨터를 들여놓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었다. 어머님을 여읜 이듬해인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0년엔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머님 무덤에 시집을 놓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관절염을 앓는 칠십대 중반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밥을 떠먹인다. “목구멍에서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마세요.’란 말이 곧장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145쪽)

그에겐 아내가 있다. 10여 년 전 자원봉사자로 찾아와 그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유승선씨. 그녀는 7년의 봉사 끝에 수녀가 되겠다던 꿈을 접고 그에게 왔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결혼 후 유방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한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를 위해 유방암에 좋다는 방울토마토를 손수 기른다. 제 몸도 성치 않은 아버지와 아내이건만, 그를 위해 자다가도 두세 번은 일어나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제가 아버지나 아내라면, 버리고 도망갈 것 같아요.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면서는 많이 울었어요. 전부 다 힘든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산문집은 어둡지 않다. 아내에게 이를 꼼꼼히 닦아달라며 투정부리고, 조카들에게 ‘한 장에 10원씩’이라며 책장 넘기는 심부름을 시키는 그의 모습에선 그늘보단 빛이 읽힌다.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힘들지만 아직까지 밥은 굶지 않고 잘 견뎌왔어요.”

내년쯤엔 소설을 한 편 내어 놓을 요량이다. 산문집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또 기나긴 시간, 그의 입은 자판을 콕콕 누르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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