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 광고 줄었다고 10년 인기프로를 단번에…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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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 앞에서 만나요. 거기서 여섯 시에 연극 미팅을 갖기로 했으니까.” 배우 신구(申久·73)씨는 인터뷰 장소를 명동예술극장으로 정했다.
 
지난 4월 24일 오후 4시, 명동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사진기자는 “밖에서 찍어야 그림이 좋은데 어떡하지”라며 초조해 했다.
 
명동예술극장은 마무리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동예술극장! 신구씨가 아니었다면 기자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이 바로크양식의 건축물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 국립극장은 1973년 남산 기슭 장충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명동에 있었다.
 
명동이 문화예술의 메카이던 시절. 유치진과 이해랑 등 극작가와 연출가를 비롯해 김동원, 장민호, 백성희, 김진규, 박노식, 최무룡, 허장강, 김금지 등의 유명 배우들이 명동 거리를 활보했다. 유네스코회관 맞은편의 술집 은성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작가, 배우,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로 북적거렸다.
 
국립극장이 이전한 뒤 공연예술의 중심지는 대학로로 옮겨갔다. 이후 국립극장은 한때 대한종합금융 사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1994년부터 명동 국립극장 복원운동이 시작됐고 2003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극장 건물을 사들여 예술극장 복원에 들어갔다. 명동예술극장은 오는 6월 5일 34년 만에 재개관한다. ‘맹진사댁 경사’가 재개관 기념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신구씨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맹진사 역(役)을 맡는다.
 
취재진은 극장 측의 양해를 얻어 명동예술극장 객석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신씨는 얼마 전 TV드라마 ‘가문의 영광’과 ‘사랑과 전쟁’을 끝냈다. 현재 촬영 중인 TV드라마는 ‘선덕여왕’.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10년간 지속된 인기 드라마. 신씨는 이 드라마에서 가정법원 조정위원장을 맡았다. 이혼 위기에 놓인 수많은 부부에게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두 분 다 심사숙고 하시고 그럼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유명한 멘트를 남기곤 했다.
 
‘사랑과 전쟁’이 폐지되는 걸 그날 녹화장에서 들었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현실로 있잖아요. 방송 편성은 우리 권한 밖에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폐지가 당일 날 결정된 것도 아니잖아요. 사전에 교감이 있었다면 덜 서운했을 텐데….”
 
담당 부서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요즘 KBS의 전체적인 분위기 문제입니까.
 
“KBS 전체 문제라기보다는 담당 부서의 문제겠죠. 부장이든 이사든 (그 사실을) 미리 알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런 귀띔도 없이 ‘다음부터는 녹화 없습니다’라고 말하니 그게 서운한 거죠.”
 
10년간 지속된 인기프로그램을 그런 식으로 끝냈다는 게 시청자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0년 된 프로건, 20년 된 프로건 끝내는 것은 방송사의 고유권한이에요. 26년 된 허참의 ‘가족오락관’도 끝났지요. 나도 10년 한 프로그램은 ‘사랑과 전쟁’밖에 없었어요. 나는 중단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 안 해요. 광고가 줄어들어 수입이 줄었다는 게 폐지 이유 중의 하나라고 들었어요. 한때 ‘사랑과 전쟁’이 잘나갈 때는 광고가 풀(full)로 붙었어요. 제작비가 가장 적게 드는 드라마가 광고가 잘 붙는다고 사장이 ‘효자 프로그램’이라고 칭찬도 했어요. 그런데 광고 사정이 나빠진다고 아무런 귀띔도 없이…. 한마디쯤은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허허.”
 
배우 생활 47년째인 원로배우에게조차 그렇게 했다는 게 도무지….
 
“나만이 아니고 거기 고정 출연자도 많잖아요. 세상사가 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 사는 맛이 나겠어요?”
 
가정법원 조정위원장으로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시죠’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남이 만나 같이 살며 한 곳을 바라보고 가는 게 결혼 생활이죠.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그때마다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돌아보고 참고 기다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기본이고요.”
 
경기고를 나오셨는데 동기생 중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한국타이어 조양래, 대림산업 이준용, 화가 김종학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죠. 김우중씨도 다시 움직이는 것 같고. 이종찬씨, 고건씨도 다 1950년에 입학한 52회 동기생이죠.”
 
서울대 상대를 시험 봤다가 떨어지고 후기인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만일 서울대 상대에 합격했다면 배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 안 됐지. (기업하는) 동기들이 얼마나 많아. 아마도 그 언저리에 가 있었겠지. 그 쪽에 비비고 들어가 호구(糊口)하고 있을 거요. 이쪽은 거들떠도 안 봤겠지. (웃음) 여긴 퇴직금도 없잖아요. 하지만 매일 시간 맞춰 출근할 필요가 없는 건 (배우가) 좋지. 또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것도 안 해서 좋고. 명절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건 나쁘지만.”
 
신씨는 1960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기로 들어가 동랑 유치진(柳致眞·1905~1974) 밑에서 배우 수업을 받았다. 이후 그는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에 배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저희 세대는 유치진의 이름만 기억합니다. 직접 겪어본 동랑은 어떤 사람입니까.
 
“평상시엔 무척 자상해요. 조곤조곤 얘기하길 좋아하고요. 하지만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허튼짓이 용납이 안 됩니다. 특히 공연 중에 어떤 배우가 한눈을 팔다가 들키면 ‘저 자식 밟아 죽여’라는 욕이 튀어나옵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자상하고 말씀도 조용하게 하시는 분이 무섭게 변하곤 했죠.”
 
동랑 유치진에게서 뭘 배웠습니까.
 
“연극에 대한 자세를 배웠지요. 일단 하면 절대 틈이 없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의 본명은 신순기(申淳基). 동랑이 ‘신순기’가 촌스럽다며 ‘신구’라는 예명을 지어줬다는 얘기는 많이 알려졌다.
 
“지금도 궁금한 게 왜 이름을 외자 구(久)로 썼는지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동랑 선생을 어렵게 생각하던 때라 물어볼 수도 없었죠. 그 다음에라도 물어볼 수 있었는데 여쭤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궁금해요. 이 양반이 왜 신구라고 지어주었을까.”
 
배우로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 다녀와서 국립극단 단원이 되고부터였죠. 대단치는 않지만 단원은 월급이 있으니까. 국립극단에 수입이 생기면 소속 단원들에게 나눠줬죠. 간간이 라디오와 TV에 출연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죠. 그땐 대학로가 없었을 때야.”
 
지금도 ‘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란 말이 있는데 그때는 더했겠죠.
 
“그땐 버스비는 없어도 술 먹자는 사람은 많았어.(웃음) 요즘은 살림살이가 차이가 나지만 그땐 빈부 격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어요. 외형적으로는 빈부 차이로 인한 박탈감이나 괴리감이 지금보다 덜했어요.”
배우를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까.
 
“배우한 지 6년쯤 되었을 때였지. 참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아. 그때 집이 왕십리에 있었어요. 누이들은 다 시집가고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드라마센터까지 타고 갈 버스비가 없었어. 어머니한테 버스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드라마센터까지 걸어도 가봤지만 그건 너무 멀고. 그때가 정말 어려웠어요. 모르긴 몰라도 연극지망생 다 비슷할 거예요. 외국도 초기는 다 비슷할 거야. TV나 다른 것 안 한다면….”
 
배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배우가 되려면 10년을 묵히라고 말하죠. 고생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면 배우로 성공할 수 있어요. 물론 고생 안 하면 더 좋지만…. 근데 10년을 참는 게 참 어려워요. 내가 이윤택극단의 단원들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니들 10년만 참으면 다 배우된다’고요.”
 
1968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는 무슨 자격으로 갔습니까.
 
“아마 그때 동랑 유치진 선생한테 1년간 공부할 학생을 보내달라고 의뢰가 온 모양이에요. 그래서 무대미술에 양정현, 봉산탈춤에 제가 선발되었죠. 그때 제가 봉산탈춤을 꽤 잘 춘다는 얘기를 들었죠. 거기 가서 탈춤도 소개하고 현대무용도 배우고 무대공연에 대해 공부하라며 보내줬어요. 가보니까 아시아의 친미(親美) 국가들에서 공연예술관계자들이 전부 와 있었죠. 동서문화센터에서 ‘봉산탈춤’ 공연하고 연극도 참여하고 그랬죠.”
 
그때는 외국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 때였는데요.
 
“동서문화센터에서 현대무용을 배웠어요. 연기자는 현대무용을 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봐요. 배우는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이잖습니까. 현대무용은 그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로서 가장 닮고 싶은 배우는 누구였습니까.
 
“난 말론 브란도가 (가슴에) 와 닿았어요.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영화 ‘워터프론트(waterfront)’를 보고 나서 감동을 받았지요. ‘대부(God father)’에도 말론 브란도가 나왔지요.”
 
요즘 한류스타라고 하는 사람들의 출연료가 회당 수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얘길 들으면 솔직히 어떤 생각이 듭니까.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도 이렇게 줄 수가 있구나’ 하고 부럽기도 하고요. (출연료가)그렇게만 유지될 수 있으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작품에서 받는 만큼 비중있게 해내느냐는 별개죠.”
신 선생님은 회당(回當) 얼마를 받고 있습니까.
 
“허허. 내 또래 배우에게 주는 개런티 정도죠. 섭섭하지는 않아요. 이순재씨, 최불암씨 받는 정도죠.”
 
어느 인터뷰에선가 한 번도 사랑하는 청춘 배역을 맡아본 일이 없다고 했던데.
 
“한 번도 그런 역할을 맡아본 일이 없어요. 그런 역을 주지 않으니까 못하는 거지. 연출 녀석이 줄 만도 한데, 안 줘. 배우인 내가 배역을 선택할 수 없잖아. (연출이) 줘야 하지.”
 
연극으로 시작해 TV, 영화, 가극, 뮤지컬, 그리고 CF까지 배우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를 해봤습니다. 어떤 장르가 가장 매력적입니까.
 
“(웃음) 이걸 왜 이 나이에 와서 하겠어요? 나뿐만이 아니에요.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가슴에 응어리 같은 게 있어요. TV 하느라 틈이 안 나니까 연극을 못할 뿐이지. 연극무대에 서면 관객과 호흡할 수 있죠. 내가 말하고 움직일 때 객석에서 반응이 나오잖아. 관객과 교감하면 그게 희열이고 기쁨이야. 그러니까 이거를 하는 거지. 막 올리고 내릴 때까지 일관되게 간섭 없이 관통하잖아. 여기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지. 여기에 들어오면 모든 근심이 없어져.”
 
그는 실제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 나이 70 넘어서 행복해지는 일을 갖고 있다는 것처럼 축복 받은 인생이 또 있을까.
 
배우로 47년째인데 지금도 연극이 다 끝나고 나면 허탈함과 쓸쓸함이 밀려옵니까.
 
“허전하죠. 연극은 땀 흘려 연습해 무대에 올리지만 연기하는 순간 다 날아가 버리잖아요. 뭐가 남아요? 허망하죠. 그러니까 다음 기회가 되면 더 좋은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허망함을 극복하려고 하죠.”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겁니까.
 
“아, 배우가 좋아요. 나는 태생적으로 정시 출근하고 넥타이 매고 하는 걸 싫어해요. 나는 배우 말고 다른 걸 못해.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어.(웃음) 다른 재주가 있어야지, 세상 살려면 다른 재주가 있어야 하는데. 평생 다른 직업에 종사해 본 일도 없어요. 내가 소심해서 구멍가게라도 내볼 생각을 못했어요. 엄두가 나야죠.”
 
흔히 연극무대는 인생살이와 비교되는데요.
 
“무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울이죠. 크건 작건 간에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거야.”
인터뷰가 끝났을 때 그는 텅 빈 무대를 쳐다보며 독백(獨白)처럼 이렇게 되뇌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어떻게 이 극장을 사서 재개관할 생각을 했을까. 정말 고마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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