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시리아의 폭격 현장에서 피범벅에다 먼지투성이인 채로 구조된 다섯 살 아이 사진이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소년은 희망을 잃었는지 아무 표정이 없었다. 하긴 도망을 가봤자 작년 9월 터키 해변에서 모래에 코를 박고 죽은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현실 인식이 어린 생명에게서 희망의 빛을 앗아간 것이다.
흔히 자연은 무자비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라고 한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도 어른들이 어린 생명을 목숨 걸고 지킨다. 심지어 종(種)이 달라도 작은 동물이 위험에 처하면 보호하려고 나서는 동물도 있다. 어른 인간이 부끄러워 고개 숙이게 하는 자연의 스승들이다.
2009년 1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로버트 피트먼 박사는 남극 바다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바다를 떠다니는 빙판 위에 웨델 바다표범 새끼가 앉아 있고 그 주변을 범고래들이 돌고 있었다. 범고래들은 파도를 일으켜 새끼 바다표범을 물에 빠뜨리려고 했다. 그 순간 거대한 혹등고래 두 마리가 나타났다. 혹등고래는 새끼 바다표범을 배 위에 얹은 채 거대한 지느러미로 물을 내리쳐 범고래들을 쫓았다.
혹등고래는 심지어 어린 동물의 주검까지 지켰다. 2012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몬테레이만(灣)에서 쇠고래 새끼가 범고래들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범고래들이 막 새끼 고래를 뜯어먹으려는 순간, 혹등고래들이 몰려와 가로막았다. 혹등고래들은 먹이도 먹지 않고 무려 6시간 반 동안 불침번을 섰다고 한다.
피트먼 박사는 자신이 목격한 혹등고래들의 행동이 우연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본능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62년간 혹등고래가 범고래의 사냥을 방해한 사례가 115건이나 보고됐음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해양 포유동물 과학'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자연은 약육강식이 판친다지만
범고래가 작은 동물 사냥할 때
혹등고래가 나타나 목숨 구해줘
구조 대상 90% 다른 種 새끼들
內戰 중 방치되는 시리아 어린이들,
어른들이 나서서 구출해야
혹등고래는 몸길이 12~16m에 몸무게가 30t을 넘는다. 아무리 사나운 범고래라도 몸집이 두 배나 되는 혹등고래는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새끼 혹등고래는 범고래의 사냥감이다. 그렇다면 혹등고래가 범고래를 막아선 것은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115건 중 범고래가 새끼 혹등고래를 공격한 사례는 11건에 그쳤다. 혹등고래가 지켜준 사례의 90% 이상이 바다표범이나 바다사자, 참돌고래 등 다른 해양 포유동물의 새끼들이었다. 혹등고래는 대부분 다른 종의 어린 동물을 지키기 위해 범고래를 막아선 것이다. 심지어 개복치 같은 어류도 혹등고래의 보호 목록에 들어 있었다.
혹등고래의 행동은 자신을 희생해 다른 개체에게 이득을 주는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전형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지상과제인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이타주의 행동은 손해이다. 그럼에도 이타주의적 행동을 하는 이유를 과학자들은 우선 '친족(親族) 선택'으로 설명한다. 자신과 유전자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친족을 도우면 그들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퍼뜨리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암컷인 일개미가 직접 알을 낳지 않고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여왕개미의 알을 보살피는 것이 바로 친족 선택이다. 또 내가 상대를 도우면 상대도 내가 위급할 때 나를 도울 것이란 '상호 혜택' 원리로 설명하기도 한다. 흡혈박쥐가 배고픈 동료에게 자신의 피를 빨도록 허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친족 선택이든, 상호 혜택이든 같은 종족 간의 사회적 유대관계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혹등고래와 바다표범 사이에 그런 유대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돌고래가 물에 빠진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피트먼 박사는 혹등고래의 이타적 행동은 자기 새끼를 지키려는 이기적 행동이 다른 종에게까지 도움을 주는 행동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고래가 사냥에 나서면 공격 대상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기보다 일단 막아서고 보는 것이 자기 새끼를 살릴 '골든 타임'을 확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혹등고래라면 시리아에서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일단 몸을 던져 지켰을 것이다. 범고래를 막아서는 혹등고래는 피부에 흉터가 많았다고 한다. 어릴 때 범고래의 공격을 받았던 기억이 훗날 이 고래들이 커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동물을 지키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동족(同族) 간 전쟁의 기억을 가진 우리가 내전의 고통을 받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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