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언론이 바라본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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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사 탄신 100주년 학술대회 17일 개최
 
1932년 1월28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이뤄진 윤봉길 의사 의거를 바라보는 중국과 일본의 시선은 어땠을까.

17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열리는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 등 근현대사 전문가들이 윤 의사의 의거를 조명한 중국과 일본의 보도 내용을 비교 고찰해 눈길을 끈다.

한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제문 '윤봉길 의거에 대한 중국신문 보도'를 통해 윤 의사는 의거 후 주변 일본인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으나 일본 헌병에 체포당할 당시 너무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각 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은 대체로 체포 당시 윤봉길 의사의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 혹은 '태연자약'했다는 것이며 윤 의사 자신이 범인임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의사는 체포 당시부터 자신이 폭탄을 투척한 사실을 시인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모진 고문을 받아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윤 의사의 의거로 부상한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일왕이 백포도주를 하사하고 남작 작위를 수여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윤 의사가 체포된 지 한달이 지나지 않아 사형이 선고된 것은 "보복성이 짙다"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이 비교적 윤 의사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한 반면 일본 언론은 윤 의사의 의거 의미를 축소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김상기 충남대 교수는 발제문 '윤봉길 의거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를 통해 일본 언론은 윤 의사의 의거를 "일본 국민을 격분시킨 사건"으로 묘사했으며 피해자 가족에게 "최대한 동정심을 표하는 논조"를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의 외무부장관 사이먼 등 각국 대표들이 일본을 위문한 사실을 토대로 우방국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일본을 피해자로 인식시키는 선전효과도 노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 신문들은 '범인'을 처음에는 '괴중국인' 또는 '광동인'으로 소개했으나, 점차 '○○人'이라고 하며 '조선'이라는 명칭을 피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연행 당시 폭행당한 흔적인 핏자국이 없어 '진위 논란'에 휘말렸던 윤 의사의 연행 사진(대판조일신문 1932년 5월 1일자)과 관련해 "사진을 확대하면서 핏자국을 숨기려고 했다는 의심이 간다"며 "이는 상하이 의거 이후 (조선에서) 격화되는 반일감정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의 역사적 의의(신용하.이화여대), 윤봉길 의사의 농민운동(박용옥.성신여대),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와 독립운동(윤병석.인하대) 등 모두 5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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