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기고, 정치에서 진 이스라엘

관리자 0 8,112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줄곧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이 ‘국제사회의 인정’이란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군사력에 의존할수록 정치적으론 인정받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 인용문은 최근 작성된 게 아니다. 76년 프랑스의 지성 레몽 아롱이 『전쟁의 철인, 클라우제비츠』에서 했던 말이다. 아롱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어서 이런 말을 했던 게 아니다. 그는 67년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문제 삼아 이스라엘과의 전략적 연대를 끊어버리는 데 반대했었다. 하지만 아롱은 10년 후 이스라엘이 안보를 목적으로 군사력을 증강시켰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군사력이 안보환경을 악화시켰다는 모순을 깨닫게 됐다. 군사적으로 강한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시기는 없었던 것이다.

같은 논리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최근 전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게 되면 좁은 지역인 가자지구의 특성상 그곳에 사는 일반 시민들도 폭격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덕적 논란을 일단 제쳐두더라도, 이스라엘은 폭격으로 당초 노렸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는가?

폭격은 하마스를 약화시키고, 온건 협상파인 마무드 압바스 지지자를 돕기 위해 이뤄졌다. 목표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대부분의 유럽과 아랍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폭격이란 방식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2005년 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된 압바스는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얻어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그에게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경제적 또는 사회적 진전이 이뤄진 것도 없다.

압바스가 팔레스타인인에게 눈에 보이는 구체적 성과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하마스를 키운 것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탄생케 한 오슬로 협정을 줄곧 비난해 왔다. 물론 하마스가 더 훌륭한 업적을 냈다는 건 아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로 로켓탄을 쏘아대는 것보다 좀 더 평화적인 항의 방식을 택하는 게 옳았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거나 팔레스타인인을 가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분리장벽을 철폐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그런 방식들 말이다.

그러나 하마스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가자를 폭격하는 방식이 하마스를 약화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을 때는 거세게 저항하기 마련이다. 또 폭격받는 피해자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폭격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게 일반적이다.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 다수는 폭격당한 가자의 주민들 편이다. 그러므로 압바스가 이끄는 파타당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것으로 비춰져 결국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전체 아랍세계 온건 협상파의 입지를 약화시킨다.

이 지역에서 막강한 이스라엘군에 맞설 세력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강한 군사력으로 전략적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이스라엘은 장기적으로 이웃 국가들과 평화를 유지하고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런 목적에 비춰보면 이번 전쟁은 반대의 길로 갔다. 하마스를 해체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목적은 민간인 사상자를 늘려 평화를 원하는 아랍세계에 분노와 반대, 증오를 불러일으켰다.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 측 협상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온건파인 파타당은 약화됐다. 하마스는 군사적으론 패배했지만 2006년 헤즈볼라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전쟁에서 확실히 이겼다. 하지만 이런 군사적 선택은 이스라엘이 원하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연구소장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Hot
성숙해진 김연아
관리자 7764회    0
Hot
7단의 위력, 인피니티 G37 세단
관리자 7101회    0
Hot
▲ 원.달러 환율이 4거래 일간 200원가량 폭등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1,380원대로 상승한 8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원달러 환율변동의 추이를 살피며 죽으로 점심식사를 때우고 있다. /연합뉴스
환율, 10년만에 1,380원대
관리자 7909회    0
Hot
“환상적인 한국 작가 많다”
“환상적인 한국 작가 많다”
최고관리자 8219회    0
2024년 06월 우수회원 순위 (1위~10위)
순위 닉네임 06월 적립
포인트
총 적립
포인트
korea999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00 35,300
글쓰기, 댓글달기, 코멘트,
로그인만 하셔도 포인트가 올라갑니다.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지금 투자하세요!
광고를 이용해 주시면 싸이트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Poll
결과

New Ser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