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TV의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며 자란 세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프로는 봐야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구봉서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라고 하거나 '비실이' 배삼룡과 함께 '양반 인사법' 같은 코미디를 하면 동네 부잣집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배꼽 잡기 바빴다.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시작한 '웃으면 복이 와요'는 1985년까지 16년간 국민을 웃겼다. 1970년대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라면 광고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그제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서영춘, 곽규석 그리고 배삼룡까지 한국의 제1세대 코미디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 배삼룡 부음을 듣고 구봉서는 "이제 내 차례인가 싶다"고 했다. 구봉서는 1960~80년대 코미디 황금기를 이끌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 삶을 위로했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개그맨, 가수, 프로그램 진행자, 예능 기획자를 겸했다. 1956년 데뷔해 영화 400여 편에 출연한 연기자이기도 했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막둥이'라는 별명도 영화에서 얻은 것이다. 1958년 히트작인 '오부자'에서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였다. '오부자'는 당시 관객이 몰려 상영 극장이 부서질까 걱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65년엔 영화 '광야의 결사대'를 찍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다.
▶구봉서는 바보스럽고 망가지는 연기를 해야 하는 코미디언이었지만 그 스스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구봉서는 작가 역할까지 맡았다. '김~수한무' 같은 코미디 소재도 책을 읽다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97년엔 '코미디 위의 인생'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웃음이 깔려 있는데, 그걸 딱 제치면 거기서 슬픔이 나와야 해요. 코미디가 그런 거야." 구봉서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코미디는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은연중 비꼬고 비판하는 풍자여야 한다고도 했다. 구봉서는 1990년대 한 후배 개그맨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코미디언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시원한 한 방 웃음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은 여러 의학 연구의 공통적 결론이다. 그가 1945년 악극단 생활을 시작으로 70여 년 국민에게 선사한 웃음은 국민 수명을 늘려주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