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 올라 가속 페달을 밟자 차는 화살처럼 내달렸다. 등과 머리가 좌석에 달라붙었다. 요란한 엔진 소리도 없다. 조수석에 앉은 테슬라 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경찰이 시속 80마일(128㎞)까지는 잡지 않아요. 더 밟아봐요." 추월 차로로 갈아타 속도를 내니 순식간에 다른 차들이 백미러 뒤편으로 사라졌다. 2년 전 미국에서 테슬라의 모델S 전기차를 몰아봤다. 테슬라는 운전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무료 시승을 시켜준다. 가장 놀라웠던 건 가솔린 차 뺨치는 가속력이었다.
▶직원은 시속 100㎞에 다다르는 데 5초밖에 안 걸린다고 했다. 차 안엔 장비 조작, 내비게이션, 인터넷, 동영상, 음악 재생을 하는 17인치 만능 터치 스크린이 있었다. 엔진이 없어 차량 앞머리가 트렁크였다. 직원에게 "값이 비싸다"고 했더니 무료 고속 충전소가 표시된 미국 지도를 펼쳐 보였다. "기름값 한 푼 안 들이고 미국 일주를 한다 생각해봐요. 차값이 비싸도 나중엔 이득이라니까요.
▶엊그제 테슬라가 모델S 중에 최고급 'P100D'를 공개했다. 값이 1억5000만원으로 이전 모델보다 5000만원 이상 비싸지만 한 번 충전하면 500㎞ 넘게 달린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초가 안 걸린다. 가속력만 따지면 10억원 넘는 포르셰 918스파이더와 비슷하고 페라리나 BMW 최고급 모델보다 빠르다. 수퍼카 뺨치는 '수퍼 전기차'의 등장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세계 전기차 회사들이 성능 개량에 사활을 걸지만 아직도 해결할 부분이 많다. 가장 큰 문제가 배터리다. 테슬라는 소형 리튬전지를 차량 바닥에 수천 개 이어 붙여 승차감을 개선하고 가속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충전을 반복하면 성능이 급속히 떨어지곤 한다. 배터리 교체비가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이어서 기름값 부담이 없다고 전기차가 낫다 말하긴 어렵다. 게다가 전기차가 불편 없이 다니려면 주유소만큼 많은 충전소를 세워야 한다. 아직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이유다.
▶미국은 5조원 이상을 들여 5년 안에 고속 충전소 1만6000곳을 짓겠다고 한다. 뒤질세라 중국은 전기차 한 대에 보조금 2000만원을 주고 있다. 당장 적자나 손해는 안중에도 없다. 일본과 독일이 장악한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신 차세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행보다. 6년 전 시속 30~40㎞의 서울대공원 코끼리 열차를 차세대 전기차로 홍보했던 정부는 뒤늦게 충전소를 만들고 보조금을 늘린다며 법석이다. '수퍼 전기차'를 보니 이번에도 우리가 몇 걸음 늦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