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동편제 맥을 잇는 김소현·박정선·김새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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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을 울리는 동편제… 섬진강 물결이 춤을 추네
'부창부수' 이어 딸까지… 우린 '소리 가족'
'판소리 동편제'
애절한 서편제와 달리 강하게 끊어지는 곡조 "툭하면 따로따로 '실종' 산속 들어가 '獨功'하는거죠"

매화(梅花)가 볼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간 전라남도 구례는 벚꽃 천지였다. 예로부터 이 땅에는 벚꽃만큼이나 기인이사(奇人異士)와 장인(匠人)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이 그들을 품기에 알맞았고 칠백리 섬진강 구비구비는 예혼(藝魂)의 자양분이 됐다.

구례 땅은 판소리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인 동편제(東便制)의 고장이다. 오정해가 주연한 영화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서편제(西便制)는 전남 보성, 강진, 해남 쪽 소리다. 애절하고 부드럽고 호흡이 길다. 동편제는 구례, 남원 쪽 소리다. 강하고 호방하며 호흡이 짧다.

동편제는 가왕(歌王) 송흥록(宋興錄)부터 송만갑(宋萬甲) 유성준(劉成俊) 임방울 박초월(朴初月) 김소희(金素姬)로 이어지다 남원 출신 강도근(姜道根)이 1996년 사망한 뒤 맥이 끊길 뻔했다. 수제자를 두지 않은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내 소리 하는 놈이 제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봄바람 속에 동편제가 울려 퍼진다. 저 멀리 지리산 자락과 벚꽃 터널, 섬진강의 푸른 물결이 어우러졌다. 북을 두드리던 김소현이“소주 한잔 생각나지요?”라고 했다. 봄날은 간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위기를 맞은 동편제의 맥은 강도근의 제자 부부가 잇고 있다. 섬진강 판소리학교 김소현(金小鉉·50) 교장과 한국판소리문화재단 박정선(朴貞宣·48) 이사장이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혈육 새아(구례고 2)는 뱃속에서부터 판소리와 가야금을 익혔다고 한다.

세 가족은 지리산 맞은편 백운산 골짜기 옛 간문초교 중대분교(分校)에 살고 있다. 2300평 학교는 숙사(宿舍), 공연장으로 개조한 교실만 빼면 옛 모습 그대로다. 세종대왕상과 반공소년 이승복상(像)이 녹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맞은편에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새겨진 소녀 석고상이 있었다.

◆입문(入門)

전남 영광에서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김소현은 13살 때 접신(接神)한 것처럼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가사(歌詞)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루 종일 판소리를 흥얼대던 그는 몇 달 뒤 부모에게 말도 하지 않고 봇짐을 싸 전북 남원으로 갔다. 강도근의 집이었다.

50여명 사이에 끼어 청소해주고 나무해주고 심부름해주는 값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판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철가, 백발가 같은 짧은 단가(短歌) 2~3개를 익힌 뒤 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로 구성된 다섯 마당을 구전(口傳) 암기한다.

다섯 마당을 한바탕이라 한다. "한바탕을 배우려면 젊음이 간다"는 말이 있다. 짧게 3시간 반에서 길게 8시간 반이 걸리는 춘향가를 일일이 외워야 하는 것이다. 200명이 배우면 절반은 소리를 내기에 앞서 가사를 외우지 못해 중도 포기한다고 한다.

가사 암기에서 천부적이었던 김소현을 스승은 타박하기 일쑤였다. "조선팔도에서 네놈처럼 목이 나쁜 놈은 처음 봤다" "판소리를 할 수 있는 목이 아니다"는 구박은 양반이었다. 나중에는 "그 정성이면 밖에 나가 다른 일을 해라. 부자로 살 것이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어린 제자는 스승에게 대들었다. "선생님보다 소리 잘할 테니 부디 오래나 사십쇼!" 스승은 계속 제자의 부아를 돋웠다. "내 무슨 수로 오래 산다는 말이냐. 나 죽어 잘해봐야 소용없다." 그 말에 제자는 짐을 싸들고 지리산으로 갔다. 짧게 100일, 길게는 1년을 독공(獨功)하다 내려왔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다 남원으로 돌아오면 스승은 사나흘을 일부러 못 본 체했다. 그러곤 불쑥 제자의 소리를 청해 들은 그의 입에서는 두 마디만이 나올 뿐이었다. "어이구, 목이 그래가지고…. 똥이나 퍼먹어라." 김소현은 30년을 그렇게 살았다.

남편보다 두 살 어린 박정선은 남원에서 2남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타고난 한량(閑良)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가 북치고 단가하고 판소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그 시끄럽기 그지없던 판소리가 어느 날 몸에 들어왔다.

판소리 용어 중 '아니리'라는 게 있다. 창자(唱者)가 한 대목에서 다른 대목으로 넘어가기 전에 자유로운 리듬으로 사설을 엮어가는 것이다. 박정선은 아니리뿐 아니라 춘향가 LP판에서 이도령과 방자가 주고받는 가사를 사진 찍듯 외우기에 이르렀다. 주생초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사설을 흥얼대고 판소리를 할 때면 대견한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스승을 모시고 소리를 해보겠다고 할 때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냥 시집이나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정선은 나이 서른이 돼서야 스승을 모실 수 있게 됐다. 스승은 강도근이었다.

그가 소리를 할 수 있게 된 건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큰 미곡상(米穀商)을 했던 아버지는 박정선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갔다. 그런데 쫄딱 망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은 2년 만에 남원으로 낙향했다. 낙향은 박정선과 소리가 만날 기회를 줬다.

강도근의 집에서 두 사람은 몇 년을 함께 배웠다. 서로 마주치긴 했지만 별일이 없었다. 김소현이 걸핏하면 짐을 싸 들고 지리산 계곡으로 소리 공부하겠다며 사라진 탓이었다. 그런 두 사람은 몇 년 뒤 꽃피는 봄날, 남원 육모정 계곡에서 인연을 맺는다.

훗날의 남편과 달리 박정선은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내 제자 중에 목이 제일 낫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동편제에는 '목으로 우긴다'는 말이 있다. 목이 쉰 상태에서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서편과 달리 웅장하고 강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 경지다.

◆기연(奇緣)

1992년 3월 김소현은 남원 육모정 계곡에서 독공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한창 고함을 내지르고 있는데 처녀가 낀 한 가족이 근처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그 처녀가 "이 산, 저 산…"으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고수(鼓手)가 장단까지 맞춰줬다.

예사롭지 않은 소리에 놀란 김소현도 흥보가의 한 대목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다시 처녀가 수작을 걸어왔다. 소리로 노닐다 보니 어느덧 밤이 하얗게 밝았다. 두 청춘 남녀는 먼동 터오는 새벽을 보며 눈이 맞아 버렸다. 소설 속 이몽룡과 성춘향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1년쯤 사귀다 둘은 살림을 차렸다. 1993년 4월 18일이다. 양가의 반대가 극심했다. 특히 박정선 쪽에서 더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산에서 소리나 하는 놈을 어떻게 사위로 맞겠느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남원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 초가집 한 채를 얻었다.

박정선 부모의 걱정은 사실로 드러났다. 김소현은 아이 하나를 덜렁 박정선의 뱃속에 남겨놓고 산으로 잠적했다. 김소현이 집으로 돌아와보니 세 살이 된 딸 아이가 물끄러미 그를 보더니 "아빠!"라고 불렀다. 그때 그는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역마살을 이길 순 없었다.

한 번은 아이와 엄마가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김소현은 하릴없이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부부는 길거리에서 조우했다. 박정선의 말에 따르면 "어디선가 안면 많은 사람이 지나가길래, 혹시 제 남편 분 아니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괴상한 부부의 행각에 나중에 딸도 동참했다. 셋이 흩어졌다가 우연히 마주쳐 나눴다는 대화가 판소리의 한 대목 같다. "아니, 혹시 제 따님 아닙니까?(박정선)" "아! 어머니시군요(김새아)" "그런데 저기 오는 저분은 남편 님 같은데…(박정선)" "여보!!(김소현)".

◆독공(獨功)

소리꾼들은 누구나 독공을 한다. 독공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하루 세끼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소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산속에서는 밤이 빨리 온다. 오후 다섯시면 어두워져 잠자고 새벽 세시쯤 일어나 텅 빈 산속에서 악을 쓰는 게 영락없이 산짐승이다. 독공할 때면 양식 약간만 지닌 채 산속의 빈 집을 찾는다. 집이 없으면 움막을 친다. 나무를 직접 베 땔감 만들고 움막의 천막도 직접 친다. 부부의 스승 강도근도 송만갑에게 판소리 다섯 마당을 사사한 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7년 독공 끝에 득음(得音)했다. 김소현에게 물었다.

―소리의 매력이 어느 정도기에 그리 어려운 수련을 합니까.

"처음에는 노래를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신기함이 있지요. 나이 들어서는 잘 안 되는 게 또 소리의 매력입니다. 유창하게 안 되니까 더 해보고 싶은 그런 게 있지요."

―판소리 얼마나 수련을 해야 합니까.

"20~30년은 해야지요. 판소리는 재능에 관계없이 세월이 필요합니다. 남녀 할 것 없이 절정기를 50대로 봅니다. 그 전에는 성음(聲音)이 양에 차지 않지요. 나이를 더 먹으면 기력이 쇠합니다."

―자기 소리에 언제 만족합니까.

"내 귀에 들리는 소리에 콧등이 시큰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주변에서도 '소리가 시원하다'는 평이 나옵니다. 사람 귀는 똑같지요."

―스승이 항상 '네가 소리 잘하기는 손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지요. 그럴 때는 독공으로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스승께서 자주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똥을 먹으라'는 겁니다."

―스승이 왜 그런 이야길 했다고 생각합니까?

"모르겠어요. 그분은 입버릇처럼 '똥을 먹어라, 똥을 먹어'라고 했어요."

―그걸 왜 먹습니까.

"소리를 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려 몸이 붓지요. 열(熱)도 배꼽 위로 몰립니다. 그럴 때 인분이 몸의 부기를 빼주고 열을 내려주는 데 특효가 있다고 하지요. 지금이야 좋은 약이 많으니까 안 먹어도 되지만."

―진짜 먹었나요?

"먹었지요. 처음에는 한 바가지 가득, 둘째 날은 반 바가지쯤 퍼서 세 모금을 먹다 도저히 못 먹고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득음을 했나요?

"웬 걸요, 스승님께 '미련한 놈! 우리 집 똥은 구더기가 들끓어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핀잔만 들었지요. 인분은 먹는 법이 있어요. 아무 데 있는 거나 퍼먹는 게 아니라 대나무 같은 것으로 잘 내려서 먹어야 하지요."

―소리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첫째가 인물이 잘생겨야 하고요, 둘째가 사설을 잘해야 합니다. 셋째가 득음이요, 넷째가 너름새지요. 너름새는 마음속의 '끼'를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벚꽃 속에 어머니와 딸은 창(唱)을 하고 아버지는 북을 두드린다. 흥에 겨웠는지 벚꽃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무도 없는 폐교에, 햇살 밝은 날이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김소현은 2001년 경남 하동 악양면에 '청학문화체험학교'를 만든 뒤부터는 산에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다. 청학문화체험학교 역시 폐교(廢校)된 매계초등학교 터에 연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5년을 지내다 2006년 3월 이곳으로 왔다.

김소현이 산에 가지 않자 이번에는 아내 박정선이 산속으로 독공하러 들어갔다. 기자가 간 날도 박정선은 산속에 있다 나왔다. 사진촬영에 한복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 한복 산 속에 놓고 왔는데"라고 말하더니 산으로 사라졌다. 그는 1시간 반 뒤에야 다시 나타났다.

김소현은 '왜 아내가 산으로 가는 걸 막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도 남에게 지고 싶지 않아 산에서 살았지요. 아내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잖아요. '집사람도 나처럼 남에게 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딸은 제가 맡아 키웠지요."

박정선에게 물었다.

―남편이 인분을 두 바가지나 마셨다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열두 바가지나 먹었는데요."

―예?

"소리를 하는 것은 그만큼 필사적인 겁니다. 쥐약이라도 먹으라면 먹을 정도가 됩니다. 스승님은 제게는 '남의 똥 먹지 말고 네 똥을 먹으라'고 했어요."

―산속에 있다 보면 별일이 다 있겠지요.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저는 지리산 천불사 계곡에서 딸아이를 데리고 독공을 하고 있었어요. 태풍이 온 날 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천둥 번개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새벽이 깜빡 잠이 들었는데 천지개벽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 나가보니 제가 머물던 집의 절반이 불어난 계곡 물에 휩쓸려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요.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급히 자는 딸을 깨워 장화 신게 하고 저는 지갑만 든 채 밖으로 나왔어요. 50m쯤 앞에 비탈이 있고 그 위에 산장(山莊)이 있는데 거기로 가면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50m 가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온몸이 땀투성이가 됐어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머리가 주뼛하고 곤두서요."

―독공은 주로 어디서 합니까.

"소리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어요. 저는 처음에 공주 마곡사 뒤편에서 했지요."

―왜 독공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과 지내면 아무래도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자기 공부를 하려면 독공이 최고입니다."

―독공이 중요합니까, 스승이 중요합니까.

"둘 다 중요하지요. 저만 해도 강도근 선생님 밑에 있다가 나중에는 전북 익산의 오정숙(吳貞淑) 선생님 댁에서 10년 동안 숙식을 했지요. 판소리는 스승을 찾아다닙니다."

―부부가 독공할수록 부부관계는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둘째가 안 생기고요,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싸움이 되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습관이 돼서요."

스승이 저세상으로 간 후 부부는 스승이 독공을 했던 장소를 두루 돌았다고 한다. 쌍계사 국사암부터 악양을 다니다 그곳에 터를 마련했다. 그는 "공부도 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판소리의 깊은 맛을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 그때 들었다"고 했다.

◆지도(指導)

장소를 바꿔 8년째 이어지고 있는 판소리학교를 김소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육기관"이라고 했다. 짧게 거쳐가는 체험학습에는 지금까지 수천명이 다녀갔고 전문 이수자만 50여명이 된다. 그중에서 올해 판소리 꿈나무 2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판소리학교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부부가 판소리와 민요를 맡고 동양화, 도자기, 천연염색, 전각, 다도(茶道), 서양화, 대나무공예, 전통예절, 풍물(風物)부터 별자리까지 가르친다. "그 많은 강사를 어디서 섭외했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섬진강 곳곳에 예술가들이 모여있다"고 했다.

부부는 작년 11월 한국판소리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고 판소리에 애정을 지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사는 5명이며 이사장은 박정선이 맡고 있다. 그들이 이 재단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부동산투자가들 사이에 유망한 투자 아이템으로 폐교가 꼽히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무는 옛 학교 터도 3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데 최근 몇몇 투자가가 큰돈을 싸 들고 와 매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폐교의 소유자인 교육청에서 솔깃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소현은 "며칠 전까지도 집을 빼라고 해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구례군에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이 있고 국창(國唱) 송만갑 선생, 박봉래·박봉술 선생 추모비도 있어요. 그런데 학생을 가르치는 곳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구례가 명색이 동편의 본향(本鄕)인데 이곳을 없애겠다니요."

김소현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높아졌다. 3년간 재계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는 매년 1000만원씩의 세(貰)를 내야 한다. 1박2일 체험학습에 1인당 3만원씩 받으면 남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픽 웃으며 "밥 먹이고 잠 재우지요, 프로그램을 한번 보세요"라고 했다.

◆시연(試演)

지금은 없어졌지만 기자가 어릴 적만 해도 김소희 박초월 박동진 안비취 조상현 같은 이들이 매주 TV 전파를 탄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뿐인 기자 일행이 촬영을 시작하자 이 동편제의 맥을 잇는 판소리 가족은 2명뿐인 관객 앞에서 정성을 다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비나이나 비나이다, 하나님 전(前)에 비나이다'로 시작되는 춘향가 중 춘향모(母) 월매(月梅)가 변 사또에 의해 감옥에 갇힌 딸을 위해 비는 대목이었다. 김소현은 동편과 서편의 차이를 느껴보라며 두 가지 스타일로 불렀다. 서편 때 멀쩡했던 그의 핏대가 동편 때 불끈 솟았다.

두 소리는 확실히 달랐다. 서편은 애절하고 감정이 풍부했다. 동편은 호흡이 빠르고 장중했으며 거침이 없었다. 이른바 하드보일드한 소리였다. 뒤이어 아내와 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성주풀이부터 '내 고향의 봄' 같은 단가 10여 곡을 불러 젖혔다.

세 소리꾼의 목소리가 텅 빈 폐교를 울렸다. 벚꽃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들은 가뭄에도 수량 풍부한 학교 뒤편 계곡에서도 불렀다. 지리산의 웅장한 산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사이를 눈보다 더 흰 벚꽃이 메우면서 다시 푸른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에서도 불렀다.

북을 들고 모녀의 소리에 추임새를 넣던 김소현이 일행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소주 한잔 생각나지요?" 바로 그랬다. 치마폭을 쉴 새 없이 뒤집어 놓는 봄바람의 심술 아래 햇볕은 밝고 하늘은 투명했다. 눈의 호사(豪奢)요, 귀의 사치에 겨운 가슴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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