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고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자가진단은 질환을 치료하는 중요한 시발점이다. 이번 주 건강한 당신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증상과 변화를 중심으로, ‘뇌가 착각하는 통증’(1면), ‘신체 변화와 질병’(4면), ‘떨림으로 알아보는 질환’(6면)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커버스토리 오진 부르는 ‘연관통’
중소기업 임원인 이모(55·서울 서초구)씨는 몇 달 전부터 등이 아프기 시작했다. 특별히 다친 것도 아니고 그곳이 아플 이유도 없었다. 정형외과에 가서 X선을 찍어봐도 별문제가 없었다. 스테로이드 주사나 침을 맞아도 그때뿐,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되면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췌장암 3기였다. 강남세브란병원 외과 윤동섭 교수는 “췌장과 등의 신경이 이어져 있어 깊숙한 장기 쪽보다 피부에 먼저 통증이 나타난 경우”라고 설명했다.
여럿 짝 이룬 신경, 뇌는 하나만 인지
통증은 흔히 문제가 생긴 부위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연관통(聯關痛)’ 때문이다.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장기의 통증이 전혀 다른 쪽 피부에 전달돼 나타나는 통증이다.
문동언 마취통증의학과의원 문동언 원장은 “우리 몸에는 구석구석 수많은 말초신경(1차 신경)이 분포돼 있다. 이 신경들은 2~4개씩 짝을 이뤄 몸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인 척추 안에 있는 척수에서 모인다”고 말했다. 짝을 이룬 신경들은 한 가닥으로 척수를 빠져나와 뇌로 이어진다. 이때 뇌는 2~4가지 신경 중 가장 익숙한 신경 하나만 선택해 통증을 인지한다. 배아에서 다리·팔·손 등이 분화될 때 같은 줄기에서 발생한 것끼리 동일한 신경 줄기를 형성하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 원장은 “연관통 때문에 어느 장기의 질환을 놓치거나, 만성통증이라고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의학교과서에는 연관통이 간단하게만 설명돼 있어 통증을 전문으로 하지 않은 의사는 제대로 진단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간은 오른쪽 어깨, 폐는 왼쪽 어깨 통증
연관통으로 놓치기 쉬운 대표적인 질환은 심장·간·쓸개·췌장·폐·신장·요도·방광 질환이다(그림 참조). 해당 장기가 있는 부위에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신경 다발로 묶인 다른 쪽 피부에 먼저 통증이 나타날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심장은 실제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 부위 대신 왼팔 안쪽과 왼쪽 새끼손가락 부분이 아프다. 심장이 이곳 피부 신경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목·어깨와 연결된 장기는 간, 쓸개, 폐 등이다. 실제 장기가 몰려 있는 가슴 밑 부분보다 다른 부위가 먼저 아프기 시작한다. 간·쓸개는 목·어깨의 오른쪽 부위, 폐는 목·어깨의 왼쪽 부위에 연관통이 생긴다. 노폐물을 거르는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신장이 위치한 배 부분이 아니라 허리가 많이 아프다. 경우에 따라 양 허벅지 바깥쪽이나 안쪽을 따라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밖에 위장에 문제가 생기면 등 가운데(날개뼈 사이 중앙 부분)가, 요로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타구니 부분이, 방광 질환이 있을 땐 엉덩이 아래쪽과 허벅지 뒷부분이 먼저 아플 수 있다.
목 디스크 튀어나올 때 눈만 아플 수도
장기와 피부뿐 아니라 근육과 다른 근육 사이 신경이 연관돼 생기는 통증도 있다.
한양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는 “목 근육은 이마와 귀, 정수리 부분 근육과도 연결돼 있다. 목 근육을 삐끗했는데 엉뚱하게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호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갈비뼈 부근 근육은 팔 안쪽과 손목과 연관돼 있다. 헬스장에서 역기를 들어올리는 운동을 한 뒤 갈비뼈 쪽 근육에 염좌가 생긴 경우 손목에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럴 때는 손목에 아무리 파스를 붙이고 다녀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엉덩이 근육은 종아리까지 연관돼 있다. 엉덩이 근육을 다쳤는데 허벅지나 종아리만 계속 아플 수 있다.
척추 디스크가 튀어나온 경우에도 전혀 관계 없는 곳이 아플 수 있다. 심 교수는 “골반에서 목까지 이어져 있는 기다란 척추 속에는 큰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데, 한 부분에서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면 이것과 이어진 다른 쪽 신경에 영향을 미쳐 해당 부위가 아프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허리 디스크가 튀어나왔는데 다리만 저린 경우다. 디스크 탈출로 인한 다른 부위 저림증은 비교적 흔하기 때문에 일반 정형외과에서도 진단이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다리나 팔이 아픈 게 아니라 눈이나 고환 등이 아플 때는 진단이 잘 안 된다. 문 원장은 “목뼈 1·2·3번 부위에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염증이 생겼다면 해당 부분 대신 눈이 먼저 아픈 경우가 많다. 또 허리 디스크 때 고환이 있는 쪽이 아프기도 하다. 척추에 문제가 생긴 줄 모르고 안과나 비뇨기과만 다니다 불치병이라며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건강한 당신] 등이 왜 이유 없이 아프지? 췌장암 걸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