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라가 단일통화 쓰는 날… 상상만 해도 즐거워요

관리자 0 8,013
'유로貨의 아버지' 로버트 먼델 美 컬럼비아대 교수
 
76세의 이 대학자(大學者)는 '전망(展望)'과 '견해(見解)'를 확실히 구분했다. 요약하자면, 그는 "당장 국제 금융 시스템이 확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쉽지 않더라도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는 공동 통화(common currency)를 도입하거나 아시아 통화기금을 설립하는 게 유익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199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먼델(Mundell)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유로의 아버지(Father of the Euro)'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가 소개한 '최적 통화 지역(optimum currency areas) 이론'이 1990년대 유럽 통화 통합과 단일 경제권 출범의 이론적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최적 통화 지역 이론'이란 '각국 경제가 어떤 규모에서 통화를 통합시키면 가장 큰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이론이다.

그는 이탈리아에 큰 성(城)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면, 미국 유명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후의 10가지 변화' 같은 조크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낭만적 학자'이기도 하다. 이 조크는 "나의 모든 주장을 '당신 노벨상 받아봤어?'라고 끝낼 수 있게 됐다"거나 "내가 어떤 허튼 소리를 해도 다음날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다"는 내용으로, 미국인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膾炙)됐다.

'2008 서울국제금융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12일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만났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원시원하고 단호하게 응답했다. 첫 질문으로 "달러의 시대는 끝나는가"라고 묻자 그는 껄껄 웃었다.

"달러의 시대는 앞으로 100년은 더 갈 것입니다. 유로화 세력이 커지긴 했지만 유럽에는 단일 정부가 없어요. 또 유럽의 인구 증가율이 낮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란 점도 부정적이고요. 중국 위안화는 태환성이 없습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정치력과 군사력의 뒷받침도 있어야 하고, 안정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만 달러화 이외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전세계가 달러에 분노하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동성이 경색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달러를 찾고 있지요."

―이번 주말에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세계 금융 시스템에 변화가 올까요?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 지도자들은 정확히 뭘 하겠다는 것인지 확실한 공감대가 없고, 구체적 실행 계획이나 대안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저 유로화로 달러화를 대체하고 싶어할 뿐이지요. (두 손을 턱 앞으로 올린 후 입술을 모아 바람을 내뿜으며) 마술처럼 달러화를 증발시킨다면 모를까… 현재의 달러화 중심 체제를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금융 감독 시스템을 바꾸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물론 적절한 규제는 도입해야지요. 하지만 규제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엔론 사태가 터지자 장부의 '시가 평가제(자산·담보 등의 가치를 시장의 현 시세에 맞춰 장부에 바꿔 기입하는 회계 시스템)'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생겼지요? 그게 그 당시에는 좋은 규제 같았지만, 결국 이번 위기 국면에서는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재(惡材)가 됐지요."

먼델 교수는 환율 급등락에 따른 손실을 매우 불필요한 해악으로 보는 학자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가 '단일 통화(single currency·유로화 같은 공동통화를 쓰면서 위안화, 마르크화, 파운드화, 엔화 같은 현지 통화는 완전히 없애는 것)'를 쓰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삼는다.

―단일 통화는 실질적으로 가능한가요?

"역설적이지만, 유로가 생기면서 단일 통화라는 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더 어려워졌어요. 이제는 달러화뿐 아니라 유로화까지 생겼으니 없애야 할 큰 통화가 둘이 된 셈이니까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당장 취해야 할 조치는 달러화와 유로화의 환율을 안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달러화와 유로화로 통화 바스켓을 만들고 점차 엔·위안·파운드로 확대시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많은 혼란이 가라앉을 겁니다. 원래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고정환율제 아니었습니까?"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아시아는요?

"아시아에서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위안화나 엔화를 포기하지 않겠지요.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안보도 중요한데, 동아시아는 전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요. 그래서 현지 통화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공동 통화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아시아 통화기금(AMF)을 만드는 것도 적극 검토할 만 하지요. 물론 미국은 동아시아가 블록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한·중·일은 이런 방향으로 나가는 게 유익합니다. 풍부한 외환을 보유한 중국과 일본이 있고 한국도 그 파트너로서 적합하니 시점도 좋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한·중·일의 환율을 안정화시켜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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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환율제를 포기하면(다시 말해 고정환율제로 가면), 교수님이 소개하신 '3원 체제 불가능성 이론(impossible trinity·자본시장 개방과 고정환율제와 독립적 통화정책 중 최소한 하나는 가질 수 없다는 경제학 이론)'에 따를 경우 독립적 통화 정책이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그 이론은 정확히 말해 '2원 체제 불가능성(impossible duality)'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본시장 개방 여부와 상관 없이, 어차피 고정환율제와 독립적 통화정책은 양립되지 않으니까요. 고정환율제 하에서도 단기적으로야 외환보유고를 사용해 통화정책을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외환보유고를 소진(消盡)하고 난 후에는 독립적 통화정책을 쓸 수 없잖아요?

결국 고정환율제와 독립적 통화정책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 정부처럼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ting)를 실시한다면 어차피 통화정책의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아요. 그러니 변동환율제를 포기하는 대가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결론이지요."

먼델 교수는 세금을 내리면 더 열심히 일할 동기가 생겨 소득이 늘고 저축과 투자도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공급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감세(減稅)를 주장하시는데, 나중에 재정 적자의 부작용이 크지 않을까요?

"지금은 재정 적자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지킬 것인가, 경제 성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게 관건입니다. (펜을 들고 종이에 세율과 세수 곡선을 그리며) 그리고 원론적으로 감세, 특히 법인세 감세는 경제에 활력을 줘서 세수(稅收)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증세를 주장하는데, 정말 큰 걱정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의 정책 실수와 비슷한 실책이 될 수 있어요."

―세계 경제는 공황으로 가는 건가요?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고 봅니다. 여러 지표를 종합하면 실물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증세 정책 같은 실책이 없어야지요."

―한국도 감세를 둘러싼 논의가 많은데요.

"미국이 현재 35%인 법인세율을 15~20%로 낮추면 경제 활력이 되살아날 겁니다. 그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예요.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이 각국의 법인세 동시 감세를 제안하면 아주 시의 적절할 겁니다."
 

브레턴우즈 체제 (Bretton Woods)

2차 대전 직후에 형성된 국제 통화 체제를 가리킨다. 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서방 44개국 지도자들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입안했고, 그 운영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만들어졌다.

이 체제에서는 미국의 달러만 금(金)과 고정 비율로 태환(兌換)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통화들은 금 태환 대신에 달러와 고정 환율로 교환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러는 기축통화였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대외 준비금으로 금이나 달러를 보유했는데, 금의 공급 증가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증가했다. 이 체제는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확고한 경제적 우위와 달러 가치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등으로 미국의 국제수지가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자 미국은 1971년 달러화의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선언했고, 1973년에는 주요국들이 금과의 고정 환율을 포기함으로써 엄격한 의미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공식적인 국제 합의는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기능하고 있어 사실상 브레턴우즈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입력 : 2008.11.14 13:39 / 수정 : 2008.11.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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