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높은 ‘美 인권침해 상징’ 없앤다

ㆍ2002년 설치 관타나모 마구잡이 압송 빈발
ㆍ현재 265명 수감…기소 20여명·유죄는 1명

미국 반인권 정책의 상징인 관타나모 수용소가 드디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16일(현지시간) 방송된 대선 뒤 미국 언론과의 첫 회견에서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관타나모는 이라크 바그다드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기지 내 수용소와 함께 미국의 대 테러전에서 발생한 악명높은 인권침해의 상징이 돼왔다. 오바마가 당선 뒤 첫 인터뷰에서 관타나모 문제를 거론한 것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크게 실추된 미국의 이미지를 바꿔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리더십을 다시 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이날 오바마는 테러 용의자 고문 수사도 금지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AFP통신, BBC방송 등 유럽 언론도 관타나모 수용소의 문을 닫고 “미국의 도덕적 위상을 다시 세우겠다”는 오바마의 발언에 크게 의미를 부여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아프간 전쟁 이듬해인 2002년 1월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내에 설치한 수감 시설이다. 1970년 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이 기지는 아이티 난민 수용소로 쓰였다. 부시 행정부는 90년대 이후 비어 있던 이곳을 이른바 ‘테러 용의자 수용소’로 만들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캠프 델타, 캠프 이구아나, 캠프 X레이 등 3개 단지로 이뤄져 있다. 초반에 쓰였던 캠프 X레이는 인권침해 논란 뒤 폐쇄됐고, 2002년 완공된 612명 수용 규모의 캠프 델타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해군기지 안에는 ‘캠프 7’이라는, 최고 수준의 경비 태세를 갖춘 특별 수용소가 있다”고 보도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캠프 이구아나는 18세 이하 소년들을 가둬두는 곳이다. 미군은 16일 유엔에 “관타나모에 수용됐거나 수용돼 있는 18세 이하 소년은 12명”이라고 보고했으나, 국제앰네스티 등은 40명 이상이 소년 수용시설에 갇혔던 것으로 보고 있다.

관타나모에는 연인원 770여명이 수감됐고 2008년 8월 현재 265명이 남아 있다. 수감자 대부분은 아프간·파키스탄에서 미군에 잡혀온 사람들이지만 위구르족 분리독립운동가 등 9·11 테러와 관련없는 이들도 많아 논란이 일었다. 420명가량은 무혐의로 석방돼 미군의 ‘마구잡이 압송’을 입증했다. 지금까지 기소된 사람은 20여명에 불과하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오사마 빈라덴의 운전기사였던 살림 함단 1명뿐이다.

미 국방부는 아프간, 파키스탄 등지에서 잡아온 이들을 전쟁포로가 아닌 ‘적 전투원’으로 분류, 제네바 협약의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 기준을 무시해왔다. 유엔 특별조사위원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미국변호사협회 등의 조사에서 인권침해 사실이 속속 확인됐다. 2005년 국제앰네스티는 “관타나모는 우리 시대의 굴라그(옛 소련의 강제수용소)”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최소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외부로 알려진 자살시도만 40여건이다. 2005년에는 미군의 ‘코란 모독’ 파문으로 이슬람권 전역에서 반미 시위가 일어났으며 수용소 폐쇄를 요구하는 세계적인 캠페인이 벌어졌다.

수감자들 중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프간에서 미군에 수류탄을 던진 캐나다인 오마르 카드르와 알카에다 간부 할리드 셰이크 무하마드 등이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가 설치한 특별군사법정을 없애고 수감자들의 혐의를 검토, 이른 시일 내 기소 대상을 정한 뒤 미국 내 민간 법정으로 옮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법적 절차가 복잡해, 뒤처리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