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푸른눈 외국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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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학 자료 수집가인 로버트 네프와 함께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푸른역사 펴냄)를 펴냈다. 사진은 엄청난 양의 땔감을 나르는 조랑말. 구한말 당시 조랑말은 시골에서 서울로 땔감을 나르는데 있어 수단의 하나였다. /푸른역사 제공/연합뉴스▲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학 자료 수집가인 로버트 네프와 함께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푸른역사 펴냄)를 펴냈다. 사진은 조랑말의 네다리를 기둥에 고정시킨 후 편자를 박는 모습. 1904년. 로버트 네프 소장. /푸른역사 제공/연합뉴스▲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학 자료 수집가인 로버트 네프와 함께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푸른역사 펴냄)를 펴냈다. 사진은 1913년 미국인이 소유한 운산 지역 금광 회사의 한 자동차. 로버트 네프 소장. /푸른역사 제공/연합뉴스
구한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학 자료 수집가인 로버트 네프와 함께 쓴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푸른역사 펴냄)에서 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1882년 조ㆍ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때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기간에 주로 서울에 거주했던 서양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잠시 스치는 이방인이 아닌 이 땅에서 직접 생활했던 서양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에 살던 서양인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1880년대 서양인이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식료품은 극히 제한됐고 가격도 비쌌다.

주한미국공사를 역임한 호레이스 알렌은 “우리는 단지 쌀과 사냥감 그리고 약간의 작은 과일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이곳의) 고기는 많지만 도살하는 방법이 나쁘고 노쇠한 황소나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암소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질이 아주 나쁩니다. 채소가 없어 우리 스스로 이것을 길러야 하며 남부에서 재배되는 저질의 감자는 그나마 이곳까지 오지 않습니다(하략)”같은 기록을 남기도 했다.
 
이렇듯 열악한 식료품 환경 때문에 서울에 살던 외국인들은 정원에 채소를 심고 닭과 소를 키웠으며 일상적인 생활용품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와야 했다. 간혹 서양인들이 일 년에 한 두 번씩 필요한 물품을 미국이나 유럽에 한꺼번에 주문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이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점차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외국인 상대 상점도 생겨났다. ’신선한 캘리포니아 버터와 치즈, 밀가루, 햄, 베이컨, 과일통조림’을 판매한다는 일본인 상점의 광고 기록이 남아있으며 서울 정동의 외국대사관이 몰려있던 공사관거리에는 외국인 고객에게 외국에서 들여온 식료품과 저장품을 외상으로도 파는 ’서울 그로서리’라는 한국인 상점도 있었다.

서울은 당시 외국인들에게는 ’범죄의 도시’이기도 했다. 30~90명까지 떼를 지어 약탈하는 바람에 해가 진 이후 후미진 거리는 통행할 수 없을 정도라는 기사도 있었고, 1897년 7월 ’디 인디펜던트’에는 “경찰관이 노상 강도에게 털렸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묘지에서 시신을 탈취하고 나서 돈을 요구하는 묘지도굴범의 기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프리메이슨 한양지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885년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 겸 의사 윌리엄 스크랜턴과 이화학당을 세운 윌리엄의 아내 메리,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네스트 베델도 역시 메이슨으로 활동했다.

’이상한’ 외국인들도 한국을 찾아왔다. 1886년 6월 서울에 부임한 한국 주재 미국공사 윌리엄 파커는 미국에서 매릴랜드대 전신인 메릴랜드 농과대 학장을 역임하기도 한 인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신임장은 맑은 정신으로 고종에게 제출하긴 했지만 곧 술잔치를 벌였고 아무에게나 욕을 하는 등 ’술주정뱅이’였던 파커는 결국 부임 3개월 만에 해임돼 한국을 떠났다.

또 1897년 시작된 경인철도 부설작업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전기기술자 중에도 이상한 사람의 기록이 남아있다. 1897년 8월 제물포에 도착한 필립이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남성은 100m 거리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상투를 총으로 쏘아 떨어뜨리는 등의 엽기적 행각을 일삼았다.

황당한 기록은 또 있다. 1903년 11월29일 미국의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 신문에는 에밀리 브라운이라는 여성이 고종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1879년 오하이오 태생이고 피터 브라운이라는 성공한 의사의 딸이며 결혼식에는 3개국 대표를 포함해 외국인이 참석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여성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고 기사는 완전 오보였지만 미국에서는 1912년까지 이 여성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책에는 1912~1914년 한국에 거주했던 미국인 광부가 찍은 항공기 사진과 구한말 교통수단이었던 조랑말에 편자를 박는 모습 등 한국인들과 서양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사진 자료들도 함께 실려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간행된 대부분의 관련 서적들은 서양인이 한국을 방문해서 느낀 점이나 여행 중에 보고 들은 내용들 즉, 주로 관찰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돼 구한말 서양인들의 진정한 삶의 궤적을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며 “그에 비해 이 책은 서양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한국에서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368쪽. 1만6천원.
입력 : 2008.12.09 17:00 / 수정 : 2008.12.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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