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이무원난(
貧而無怨難)하고,
부이무교이(
富而無驕易)니라.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기는 쉬우니라"
조선대 평생교육원 1층 강의실. 낯 익은 왕년의 스타가 단상에 섰다. 벌써 11년째다.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등 숱한 유행어를 낳으며 한때 국내 개그계를 주름잡았던 김병조씨(58).
건강문제 등으로 홀연히 방송계를 떠난 지 근 10여년이 된 지금, 인기 개그맨이던 그는 어느샌가 ´스타 강사´로 거듭나 있었다. 검은색
서류가방에 눈 아래로 걸친 안경, 깔끔한 감색 재킷에 희끗한 머리, 그리고 거침없는 강의…. 영락없는 대학 교수다.
퇴직 공무원에서 유망기업 CEO, 전직 교장, 전업 주부에 이르기까지 100㎡ 남짓한 강의실은 50여 수강생들로 넘쳐났다. 서당식 고전강좌다보니 딱딱하지 않을까하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왕년에 한가락했던 특유의 입담에다 알기쉽게 재해석한 ´김병조식 뜻풀이´ 덕분에 강의는 시종 흥미롭고도 유쾌하게 진행됐다. 자리를 뜨는 이 하나없이 두시간동안 이어진 강의는 노장 학생들의 성화에 15분 가량 더 진행하고서야 ´다음 시간´을 기약했다.
´김병조의 명심보감´은 1995년 평생교육원이 개설된 이후 가장 성공한 강좌로 인정받고 있다. 올 1학기(26기)에도 문화, 경제.법률, 건강레포츠 등 총 208개 강좌 중 첫 손에 꼽힌다. 정원이 다른 강좌보다 2-3배 많은 점도 이 때문이다.
´명심보감 전도사´인 그의 스케줄은 연예인 못잖다. 정부,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물론 군 부대, 경찰, 시민아카데미 초청강연, 교육방송 출연 등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정도다.
6.25 발발 두달 전 종가집 장손으로 태어나 한학자 부친 아래 엄한 교육을 받은 그는 중앙대를 나와 어린이 프로그램인 ´뽀뽀뽀´의 단막극 코너에 출연하며 방송계에 첫 발을 내디딘 뒤 1988년 코미디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강의에는 각박한 세태와 인간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진하게 배어 있다.
"쾌심지사(
快心之事)는 실패신 상덕지매(
悉敗身 喪德之媒)니, 오분(
五分)이면 변무회(
便無懷)니라. 마음에 유쾌한 일은 몸을 망치고, 덕을 잃게 하는 매개물이니, 반쯤에서 그치면 곧 후회가 없을 것이다"
연예계 후배들에 대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은 떠날 때도 알아야 한다"며 "덧없는 인기와 환호성에 취하다 보면 자기를 잃게 된다"고 조언했다.
"바를 정(
正)에서 한 획만 떼면 그칠 지(
止)가 된다"며 "지위와 돈, 명예, 인기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는만큼 그칠 때를 아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도 말했다.
금융 위기와 잇단 연예인 시련 등에 대해서도 "가치관을 사람이 아닌 돈에 두기 때문"이라며 "자아 상실의 거대한 물결이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전(古典)은 어려운 구절이 많다 보니 현대적 의미로 읽으면 고전하게 된다"며 "앞으로 명심보감 798구절 전체를 알기 쉽고 읽기 쉽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명심보감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며 강연 초창기 5만원을 벌기 위해 15만원을 지출했다는 김씨. 희끗희끗한 ´배추머리´로 방방곡곡 누비며 쓴소리를 마다 않는 그는 ´걸어다니는 명심보감´이자 ´신세대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