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할 때 술을 안 마시는 사람에게 우린 굳이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술이라도 채워. 입만 대."
이 때, 아무리 술이 아까워도 대신 물을 붓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아마도 이런 '건배'의 주도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듯하다.
우리는 회식이라며 '건배 제의'같은 걸 하겠다고 일어나서 '20억 매출 달성, 영업 본부, 아자!' 같은 걸 외치고는 '아이고, 부장님'하면서 먼 거리를 달려가 잔을 부딪친다. 일부 유럽과 영미권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토스트'를 할 때는 보통 일어나서 한마디를 하고 '치어스'를 제창하고 잔을 살짝 위로 치켜든다. 다만 멀리 달려가 잔을 부딪치지는 않고 바로 팔이 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과 '짠'을 할 뿐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절대 '물'을 채운 잔으로는 짠을 해서는 안 된다.
허핑턴포스트 US 'The Daily Meal'의 블로그에 따르면 물을 채운 잔으로 건배를 하는 건 에티켓에 벗어난 행동이며 오히려 '빈 잔'으로 건배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이 블로그에 따르면 이러한 믿음의 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이는 지하에 흐르는 망각의 강 '레테'의 물을 마시고 과거를 잊는 의식을 거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 인들은 죽은 이를 보낼 때 잔에 물을 채우고 건배를 하며 사자가 다른 세상으로 무사히 가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연원으로 잔에 물을 채워 건배하는 것은 상대방의 불행 또는 죽음을 비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또한 물에 자신의 미래의 무덤이 보인다는 신앙 때문에 건배 제의자의 죽음을 상징하는 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절대 산 사람에게 두 번 절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배의 기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은 건배가 바이킹의 풍습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오래전 바이킹들이 사업하다가 거래가 성사되면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는 이야기. 건배하는 순간 술잔에 넘쳐 흐른 술이 섞이기 때문에 서로의 잔에 '독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식으로 기능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투데이아이파운드아웃'에따르면 바이킹의 건배 문화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오디세이'의 시절부터 건배는 있었기 때문이다. '투데이아이파운드아웃'에 따르면 술잔을 하늘로 치켜드는 행위는 신에게 자신의 잔에 든 음료 일부를 바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물로 채운 잔을 하늘로 치켜든다면?
당연히 하늘의 신은 화를 낼 것이다. 장담하건대, 신(이 있다면)은 물보다는 맥주를, 맥주보다는 와인을, 와인보다는 위스키를 좋아하실 테니까. 오늘은 위스키로 건배를 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