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은 못따라가는 최양락식 풍자개그

 

월요일 밤 SBS-TV ‘야심만만’에서 왕년의 개그맨 최양락이 큰 웃음 한 방을 ‘빵’ 터뜨렸다. 스타 시절 목욕탕서 때를 밀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 뻔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그의 유머에 누워 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데굴데굴 구르며 속 시원하게 웃어댔다. 그러니까 살짝 야하기도 하고 약간 공포스러운 요소도 있는 데다 순진한 진심이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기막힌 반전, 그리고 “연예인 젖꼭지를 그렇게 해놓다니”라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 추임새까지 곁들이는 그의 유머감각 때문에 “웃다 기절할 뻔했다”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노력해서 웃기는 개그맨도 많지만 타고난 감각으로는 첫손에 꼽히는 최양락의 오래 묵은 개그 내공이 터진 순간이었다. 그 시대를 지내온 개그맨이 많지만 최양락은 그래도 줄곧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웃기기’에 몰두해 왔기에 그런 유머 감각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의 코미디 정수는 오후 8시20분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MBC 표준 FM)에 있다. 배칠수와 최양락이 쏟아내는 시사와 정치 풍자는 듣기에 즐거우면서도 그 신랄함 역시 속을 콕콕 찌르며 엄청난 쾌감을 안겨 준다. 1980년대 말부터 ‘네로 황제’ 등으로 정치 풍자 개그를 시도했던 최양락과, 성대모사로는 거의 입신의 경지에 오른 배칠수가 죽을 척척 맞춘다. 이들은 ‘3김 퀴즈’ ‘대충토론’ 등 다양한 코너에서 3김·MB·이회창 등 정치인부터 손석희·차인표·차범근·배철수 등 유명 인사를 총망라하면서 이런저런 사안들을 꼬집어댄다.

듣다 보면 확실히 그동안 TV에서 엉성하게 목소리만 따라 내던 정치인들 흉내와는 차원이 다른, 제대로 된 풍자가 이 프로에서는 이루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빈틈없이 흉내 내는 배칠수의 장기에 정치인 각각의 캐릭터를 꿰뚫으며 각종 사안을 뚜렷한 시각을 가지고 비틀어내는 날렵한 원고들이 합쳐져 수준 높은 패러디가 이뤄진다.

수년간 인기를 얻고 있는 ‘3김 코너’의 경우 하이라이트는 말끝마다 박식함을 자랑하는 DJ, 우기다가 삐치기 마련인 YS, 느물느물 눈치 보는 JP의 캐릭터를 희화하는 요절복통 퀴즈쇼다. 말끝마다 “에… 그카고”와 “마… 그런 확신을 가꼬있습니다…” 하면서 ‘긍정적인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MB 흉내에는 정말 ‘뒤집어진다’. 캐릭터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 제대로 된 모사, 그리고 사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입장 같은 것들이 정치 풍자의 핵심임을 알게 해준다.

아쉽게도 TV에서는 이런 시사 개그들이 제대로 커오지 못한 때문일까. 지난주 또 하나의 화제는 KBS-2TV ‘개그 콘서트’ ‘도움상회’의 정치 개그에 대한 비난이었다. 난장판 국회를 풍자하고자 한 의도였지만 기껏해야 국회를 ‘K-1 경기’로 묘사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정치인들에 대한 막연한 냉소와 염증만을 묘사한 이 코너의 풍자 수준은 ‘초딩’ 수준이었다. 치밀한 흉내도, 예리한 시각도, 아무런 태도도 없는 이런 패러디는 하나마나다.

예능 프로의 독설 수준은 나날이 높아가는데, 연예인에 대한 비난이나 사생활에 대한 공격 말고는 발전하지 않는 풍자 개그의 한계는 확실히 그 부분을 ‘근엄한’ 무언가로 여겨야 한다는 사회의 강박관념과도 관계있다. 자국 대통령이 이라크 기자에게 신발을 맞을 뻔했는데도 “그 기자, 몇 달 동안 준비했다더니 그거 하나 똑바로 못 맞히나?” “어쨌든 부시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군요. 피구 말입니다”라며 쏘아대는 미국 심야 쇼의 여유로운 유머 풍토가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