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 기억'시대에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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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5-05-06 13:49 조회4,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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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소크라테스의 두상(위키피디어).

문명의 발달은 중요한 지식을 기억하고 대를 이어 전승하면서 가능했다. 구성원들의 기억에 의존하던 지식이 문자의 발명을 통해 축적되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삶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문자와 필기의 대중화가 인간능력을 퇴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당시 그리스의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신기술인 글쓰기가 영혼에 건망증을 만들고 사람들이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전한다. 소크라테스는 필기와 글을 통한 기억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도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있는 지식을 자랑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자의 발명이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획기적으로 고양시킨 것처럼, 스마트폰도 비슷한 영향을 끼쳤다. 늘 휴대하는 또 하나의 두뇌인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상당량의 기억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지도나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날마다 자세하게 알고 있던 '오늘 해야 할 일'도 이제는 일정관리 소프트웨어가 알려주지 않으면 지나치는 경우가 흔하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기억과 검색의 보조도구로 쓰이는 것을 넘어 우리가 기억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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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해로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포스터.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1980년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들은 공통된 경험에 대해서도 특정한 기억을 분담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에 착안한 연구였다. 가족들의 생일은 아내가, 가족여행의 구체적 경로에 대해서는 남편이 기억을 맡는 방식이다. 부부가 함께 있으면 아는 게 많아지지만 혼자 있을 때는 지식이 크게 줄어드는 이런 현상을 웨그너는 '친밀한 짝의 사유 절차'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분산 기억'은 부부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무리를 이뤄서 기억을 분산해 처리하면 그 집단의 능력은 크게 확장된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과 검색에 의존하는 것도 인류에게 익숙한 '분산 기억'의 일종이다.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베치 스패로 교수는 2011년 <사이언스>에 실은 '기억에 대한 구글 효과' 논문에서 하버드·컬럼비아대 학생 168명을 상대로 한 분산 기억을 실험한 결과를 소개했다. 학생들은 컴퓨터에서 삭제할 것이라고 알려준 정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기억했지만, 컴퓨터에 저장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면 쉽게 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검색서비스에 익숙한 학생들은 정보 자체보다 정보가 저장된 파일이름을 더 잘 기억했다.

오랜 세월 많은 경험을 함께 하며 산 부부가 함께 있을 때처럼 우리도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때 유식해지고 지혜로워진다. 우리 두뇌에서 이뤄져온 기억과 판단을 외부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기술 발달과 그에 적응하려는 자연스러운 인지적 변화다. 기계를 통한 분산 기억을 잘 활용하려면,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찾아낼 줄 아는 새로운 능력이 요구된다. 지난 시절 한문이나 영어를 스스로 학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전 찾는 법을 익혀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맞춤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정보를 선별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정보 감별력이 더 중요해진다. 사전찾기만큼, 똑똑한 검색 활용법 학습이 필요한 이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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