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괴롭힌다면 맞받아쳐" 가르친 강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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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11-03 21:22 조회5,793회 댓글0건본문
▲ 상원의원이던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당시 한 행사장에 어머니 도로시 로댐 여사(오른쪽)를 모시고 나와 지지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힐러리 美 국무장관 모친 로댐 여사 92세로 별세]
1951년 미국 일리노이주(州) 파크릿지의 주택가. 네 살인 힐러리 로댐이 "앞집 여자 아이에게 맞았다"며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새집으로 이사한 후 벌써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이었다. 힐러리의 어머니 도로시 로댐은 우는 딸의 등을 떠밀었다. "힐러리,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누군가 다시 너를 괴롭힌다면 맞받아쳐!" 힐러리는 복수를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통쾌하게 맞펀치를 날린 후 의기양양 돌아오는 힐러리를 커튼 뒤에서 바라봤다.
미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여성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길러낸 어머니 도로시 로댐 여사가 92세의 나이로 1일 워싱턴DC 의 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빌 클린턴재단이 이날 발표한 성명에 사인(死因)은 공개되지 않았다. 힐러리는 지난달 31일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영국 출장을 취소했고 침대맡에서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외롭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스스로 개척하며 자란 로댐 여사는 힐러리의 멘토이자 조력자였다. 로댐 여사는 8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여동생과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조부모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14살 때 집을 뛰쳐나온 로댐은 다른 집 유모로 들어가 주당 3달러를 받고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시카고의 한 여행사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만난 휴 로댐과 결혼한 후엔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힐 러리는 로댐 부부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태어났다. 이어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났다. 로댐 여사는 공화당 골수 지지자인 보수적인 남편 때문에 힐러리가 남동생들에 비해 기회를 누리지 못할까봐 늘 걱정했다고 한다. 딸의 '확실한 교육'을 위해 로댐 여사는 딸이 미국의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하도록 독려했다. 1학년 때 학업에 지친 힐러리가 전화를 걸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하자 "네가 시작한 일이라면 네가 견뎌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대학을 다니지 못한 로댐 여사는 평생 배움을 갈구하며 대학 공개 강좌를 찾아다녔다. 자녀들에게는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 댐 여사는 남편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힐러리는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에 "어머니는 사회적 정의의 신봉자로 조용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집안에선 때때로 논쟁이 벌어졌으며 나는 이를 통해 한 지붕 아래서도 두 개의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배웠다"고 적었다. 1993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백악관에서 주로 생활했던 로댐 여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성 스캔들로 괴로워하는 딸을 옆에서 위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추모사에서 "로댐 여사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강하고 단호하며 재능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과 해온 일들을 돌아볼 때 정부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딸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힐러리 美 국무장관 모친 로댐 여사 92세로 별세]
여덟살 때 부모 이혼으로 외롭고 가난한 어린시절… 14세 때부터 스스로 돈 벌어
학업에 지친 힐러리에게 "네가 시작한 일… 견뎌라"
평생 배움 갈구하며 대학 공개강좌 찾아다니기도
1951년 미국 일리노이주(州) 파크릿지의 주택가. 네 살인 힐러리 로댐이 "앞집 여자 아이에게 맞았다"며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새집으로 이사한 후 벌써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이었다. 힐러리의 어머니 도로시 로댐은 우는 딸의 등을 떠밀었다. "힐러리,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누군가 다시 너를 괴롭힌다면 맞받아쳐!" 힐러리는 복수를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통쾌하게 맞펀치를 날린 후 의기양양 돌아오는 힐러리를 커튼 뒤에서 바라봤다.
미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여성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길러낸 어머니 도로시 로댐 여사가 92세의 나이로 1일 워싱턴DC 의 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빌 클린턴재단이 이날 발표한 성명에 사인(死因)은 공개되지 않았다. 힐러리는 지난달 31일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영국 출장을 취소했고 침대맡에서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외롭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스스로 개척하며 자란 로댐 여사는 힐러리의 멘토이자 조력자였다. 로댐 여사는 8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여동생과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조부모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14살 때 집을 뛰쳐나온 로댐은 다른 집 유모로 들어가 주당 3달러를 받고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 시카고의 한 여행사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만난 휴 로댐과 결혼한 후엔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힐 러리는 로댐 부부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태어났다. 이어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났다. 로댐 여사는 공화당 골수 지지자인 보수적인 남편 때문에 힐러리가 남동생들에 비해 기회를 누리지 못할까봐 늘 걱정했다고 한다. 딸의 '확실한 교육'을 위해 로댐 여사는 딸이 미국의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하도록 독려했다. 1학년 때 학업에 지친 힐러리가 전화를 걸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하자 "네가 시작한 일이라면 네가 견뎌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대학을 다니지 못한 로댐 여사는 평생 배움을 갈구하며 대학 공개 강좌를 찾아다녔다. 자녀들에게는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 댐 여사는 남편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힐러리는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에 "어머니는 사회적 정의의 신봉자로 조용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집안에선 때때로 논쟁이 벌어졌으며 나는 이를 통해 한 지붕 아래서도 두 개의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배웠다"고 적었다. 1993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백악관에서 주로 생활했던 로댐 여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성 스캔들로 괴로워하는 딸을 옆에서 위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추모사에서 "로댐 여사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강하고 단호하며 재능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과 해온 일들을 돌아볼 때 정부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딸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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