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모든 이를 위하여` 목자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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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2-16 09:45 조회5,6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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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소년 김수환은 속이 탔다. 1940년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등학교) 졸업반 수신(修身 지금의 윤리)시험 시간. '천황의 칙유(勅諭)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는 시험문제 때문이었다.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고민하던 김수환은 종료 종이 울리기 직전 답을 썼다."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 그는 이튿날 교장실로 불려가 "너는 위험해서 신부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말과 함께 따귀를 맞았다.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성직자로, 시대의 양심으로, 겨레를 이끈 그는 일제 식민지배, 한국 전쟁 등 근대사의 굴곡을 더 절실하게 겪어야 했다.
▶빼앗긴 들에서 싹 튼 신앙= 김 추기경은 22년 5월 8일 김영석(요셉)과 서중하(마르티나) 사이의 5남 3녀 중 막내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순교한 집안의 후손으로 일찍부터 종교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사제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의 권유였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옹기와 포목을 팔아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는 군위보통학교에 다니던 김 추기경 형제에게 "이 다음에 커서 신부가 되라"고 당부했다.

소년은 이 때부터 길을 바꿨다. 예전의 꿈은 장사를 배워 25세에 가정을 꾸리고 30세에는 어머니에게 인삼을 사드리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소년은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서울 동성상업학교(소신학교)를 거쳐 41년 일본 죠치(上智)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사제가 될 자격이 있는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동성학교 시절엔 반일(反日) 내용의 일기를 들켜서 곤욕을 치렀다.

유학 시절 일생의 스승 게페르트 신부를 만나는 기쁨을 맛봤지만 결국 44년 학병으로 끌려간다. 일제가 대구 가족에게 "식량 배급을 끊겠다"고 협박한데다, 학병에 지원하라는 당시 대구교구장의 전보에 '순명'한 결과였다. 한때 만주로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군사훈련을 마치고 유황도 부근 섬에서 배치되었다. 추기경은 거기서 해방을 맞아 일본을 거쳐 46년 귀국한다.

▶광야에서 양떼를 끌고= 청년 김수환은 신학교에 복학하기까지 형님 김동한 신부의 부산 성당에 9개월 간 머물렀다. 한 여성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신부가 되어 사랑의 봉사를 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를 거절한다.
47년 서울 혜화동 신학교에 복학했다.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신학공부에 몰두하던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로마 유학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총급장(학생회장)이던 추기경은 소신학생 너댓명을 데리고 부산까지 피란길에 나선다. 부산에서는 신학공부를 하다가 전쟁통인 51년 9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는다. 당시 그의 사목 모토는 "하느님, 저는 죄인이오니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였다.

첫 임지인 안동 본당에서 추기경은 교구민들을 "영혼은 물론 가난까지 구제"하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미국 주교회의 구호사업 한국지부장을 직접 만나 구호금을 타왔다. 성당보수 품삯 형식으로 주기도 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어려운 사정을 알게된 신자들을 돕기도 했다. 추기경이 성직 생활 50여 년 중 가장 행복한 기간으로 꼽은 시기였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대구교구장 비서로 발령이 났다. 이후 해성병원 원장, 김천 본당 신부, 성의 중고등학교장을 지낸 뒤 56년 10월 배움의 열망을 안고 독일로 떠난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게페르트 신부의 권유에 따라 회프너 신부에게 그리스도 사회학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다. 하지만 7년 동안 머물고도 학위는 따지 못했다. 서정길 주교의 병구완을 하느라 2년 간 공부를 뒷전으로 놓은 탓도 있다. 입소문이 나서 당시 독일에 와 있던 광부, 간호사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 요한 23세가 주도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까이서 접한 것은 지식보다 값진 소득이었다. 이 경험은 이후 추기경의 행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변화와 쇄신, 그리스도교 일치, 세상 및 타종교와 대화 등 공의회의 논의 내용은 이후 추기경의 행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도교수가 뮌스터 교구장을 맡아 떠난 것을 계기로 추기경은 64년 귀국한다. 가톨릭시보사(현 대구대교구 가톨릭신문) 사장직을 맡게 된다. 언론인 김수환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공의회 정신을 알리는 데 매진했다. 그러면서 재소자들을 인도하기 위해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들었다. 당시 한 사형수가 형장에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 것이 훗날 사형 폐지운동에 헌신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제품을 받은 지 15년 만인 66년 주교품을 받고 마산교구장에 오른다. 그 무렵 노동현장 복음화를 위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총재주교를 겸임하던 추기경은 67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이 터지면서 또 다른 전기를 맞는다. 기업주와 권력이 합작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짓밟는 실상을 현장 방문에서 확인한 것이다. 막바로 임시 주교회의 소집을 건의했다. 그 자리에서 주교단은 "…인간 기본권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수호되어야 하기에 주교들은 부당한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다"란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교회의 첫 대(對) 사회 발언이자 김 추기경이 '시대의 양심'으로 첫 발을 내디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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