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막걸리 들이켜자 다들 토끼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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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3-19 14:01 조회2,0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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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렸을 때 
한국인 친구가'약주'라며 막걸리를 권했다
이제는 한국인 직원보다 내가 더 잘 마신다…
막걸리와 한국인은 여로모로 닮았다 
언제나 잘 어울리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함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情에 취한다

프랑스인인 내가 한국에 온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프랑스와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부터 솔직하고 매사에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파리와 서울의 날씨 또한 비슷하지만, 한국의 겨울이 좀 더 시리고, 바람이 매서운 날들이 많다. 내가 한국에 처음 온 2007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때 나는 회사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기였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배우고 싶었던, 그야말로 한국에 대한 학습 의욕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도 내가 프랑스 본사에 직접 건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눈에 비친 한국은 작지만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였다.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망설이는 본사 경영진을 설득하여 결국 한국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나는 이왕 한국에 온 김에 한국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한국의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국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집도 일부러 전통이 살아 있는 인사동으로 정했다. 주말에는 서울의 거리를 혼자 하루 종일 걷기도 했다.

평소처럼 서울의 이곳저곳을 거닐고, 저녁에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파리의 날씨를 생각하며 옷을 얇게 입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감기 기운까지 겹쳐, 만나자마자 오들오들 떠는 내 모습을 본 한국인 친구는 나를 집에 보내는 대신 감기를 한 번에 떨어뜨릴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바로 한국의 전통주였다. 감기에 걸렸는데 술을 마신다? 당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친구는 한국인들은 때론 술을 약으로 마실 때가 있다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가진 한국어 사전에 '약주'라는 단어가 정말로 있었다. 놀랍게도!) 같이 가자고 계속 종용했다. 결국 나는 친구의 꾐에 빠져 인사동 근처 한 전통주점에 들어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금방이라도 옹기가 넘칠 만큼, 한가득 담겨 나온 막걸리를 처음 보며 나는 우선 그 하얀 색깔에 매료되었다. 하얗게 보이면서도 때론 투명해 보이는, 진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은 그 색깔은 마치 어렸을 때 수채화를 그릴 때, 물감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합되었을 때 도화지에 펼쳐지던 바로 그 색깔이었다.

먹는 방식도 아주 독특했다. 한국의 전통 옹기에 국자가 둥둥 떠있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사발에 떠먹는 식이었다. 술이란 당연히 병에 담겨 있고, 잔에 따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이 특이한 한국 전통주의 맛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사발을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이럴 수가! 입에 댄 순간 톡 쏘는 느낌이 너무나 입에 맞는 것이 아닌가.

와인의 천국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독특한 느낌을 주는 술은 경험한 적이 없다. 내친김에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어느새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위에 얼었던 몸이 금세 녹는 것을 느꼈다. 한 잔, 또 한 잔. 어느새 나를 괴롭혔던 감기 기운도 느낄 수 없다. 몇 시까지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열렬한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는 한국 음식 중에서 족발을 즐겨 먹는데, 족발에 가장 어울리는 술이 막걸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도 서울 장충동에 있는 나의 단골집을 찾아가 막걸리와 족발을 시켜 먹곤 한다. 회사 직원들과 저녁에 회식 자리를 가질 때,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는 술 역시 막걸리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나는 이 하얀 색깔의 전통주가 한국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막걸리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술이다. 도수가 높지 않아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나 여성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막걸리는 그 자체로도 맛이 좋지만 김치·파전·보쌈 등 다른 한국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린다. 막걸리는 주변의 다른 음식들과 한바탕 어우러질 때 더욱 맛을 내는 그런 술이다.

여러모로 한국 사람들과 닮았다. 개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공동체를 우선하고,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즐길 줄 아는 사람들. 항상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작은 것 하나도 나눌 줄 아는 넉넉함이 있는 사람들.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실 때마다 나는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한국의 정에 취한다.

이렇게 막걸리를 즐겨 마시다 보니 이제는 한국 직원들 가운데서도 나보다 막걸리를 잘 마시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한번은 직원들과 막걸리 많이 마시기 대회를 했는데 내가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서양인인 내가 거침없이 막걸리를 들이켜는 것을 바라보던 우리 직원들의 놀란 토끼 눈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이 글은 필자가 프랑스어로 쓴 것을 한국인 비서가 번역한 것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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