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밟히는 -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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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10-08 12:51 조회3,1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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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몽유도원도 신드롬'이네요! 이 늦은 밤까지 관람객이 장사진을 치는 건 박물관 전시 역사상 처음입니다."
7일 밤 10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보기 위해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박물관 관계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몽유도원도 전시 마지막 날인 이날은 폐장 시간이 원래 밤 9시였지만, 박물관은 8시 이전에 줄을 선 관람객은 모두 입장시켰고 전시는 자정 가까이 돼서야 끝이 났다.
이날 하루 1만4000여명이 몽유도원도를 찾았고, 개막 이후 총 6만1123명이 관람했다.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온 특별전에서 유독 한 작품에만 줄이 늘어선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조선전기 최고 걸작 그림이 해외로 반출돼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는 안타까움과 짧은 전시 일정, 그리고 '이번 아니면 평생 못 볼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빚어낸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9일간의 고국 나들이를 끝낸 그림은 이날 밤 포장돼 8일 오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앞으로 '몽유도원도'를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소장자인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은 상설 전시도 없고 대여도 거의 하지 않는다. 덴리대는 이번에 몽유도원도를 빌려주면서 '더 이상의 전시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 보존이 물론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덴리대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아무리 귀한 유물이라도 수장고 속에 모셔만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중한 문화재일수록 보다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그 가치를 공유할 때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인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은 평상시엔 유물을 공개하지 않지만, 매년 가을 20일간 엄선한 보물을 전시합니다. 덴리대도 최소 1년에 한 번은 그림을 공개해야 해요." 한 70대 관객은 몽유도원도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7일 밤 10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보기 위해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박물관 관계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몽유도원도 전시 마지막 날인 이날은 폐장 시간이 원래 밤 9시였지만, 박물관은 8시 이전에 줄을 선 관람객은 모두 입장시켰고 전시는 자정 가까이 돼서야 끝이 났다.
이날 하루 1만4000여명이 몽유도원도를 찾았고, 개막 이후 총 6만1123명이 관람했다.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온 특별전에서 유독 한 작품에만 줄이 늘어선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조선전기 최고 걸작 그림이 해외로 반출돼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는 안타까움과 짧은 전시 일정, 그리고 '이번 아니면 평생 못 볼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빚어낸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9일간의 고국 나들이를 끝낸 그림은 이날 밤 포장돼 8일 오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앞으로 '몽유도원도'를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소장자인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은 상설 전시도 없고 대여도 거의 하지 않는다. 덴리대는 이번에 몽유도원도를 빌려주면서 '더 이상의 전시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 보존이 물론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덴리대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아무리 귀한 유물이라도 수장고 속에 모셔만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중한 문화재일수록 보다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그 가치를 공유할 때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인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은 평상시엔 유물을 공개하지 않지만, 매년 가을 20일간 엄선한 보물을 전시합니다. 덴리대도 최소 1년에 한 번은 그림을 공개해야 해요." 한 70대 관객은 몽유도원도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을 계기로 우리는 한국미술사 불후의 명작인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또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재개관할 때 보름간 전시된 것이 국내를 떠난 뒤 처음 공개된 것이고,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전기 국보전' 때 두 달간 전시된 것이 두 번째이며, 이번이 세 번째인데 9일간만 전시된다고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남의 유물을 가져가 놓고 빌려주는데 뭐 그렇게 인색하냐고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장처인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은 이 작품 보존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상설전시는 절대로 하지 않고 대여해 주는 일도 거의 없다.
세종 때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청을 받아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447년이었다. 그러니까 560년이 넘은 작품이다. 무생물도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 흔히 '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이라고 해서, 비단은 500년 가고 종이는 1000년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몽유도원도'는 신기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완벽해서 마치 어제 그린 그림 같다.
덴리대 도서관은 1980년대에 이 '몽유도원도'의 정밀한 복제본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화승(畵僧) 담징(曇徵)이 그린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가 불타버렸지만 다행히 복제본이 남아 있었던 것을 예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10년 전 필자는 국제교류재단의 위촉으로 해외문화재를 조사할 때 덴리대 도서관 수장고에서 '몽유도원도'의 진본과 복제본을 한자리에서 배관(拜觀)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도서관장이 두 점을 동시에 펴놓고 보여주는데 어느 것이 진품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귀신 같은 복제술이었다.
다만 시축(詩軸)에서 신숙주(申叔舟)의 시 중 제8행에 '요지로 가는 길(路走瑤池)'이라는 글귀를 보니 원본은 종이를 덧붙이고 땜질한 자국이 남아 있으나 복제본은 땜질을 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덴리대 도서관은 웬만한 전시회에는 이 복제본을 대여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9일간의 진품 대여가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가 알 만한 일이다. 이 '몽유도원도'는 10월 7일까지만 전시되고 다시 소장처로 돌아간다.
세종 때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청을 받아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447년이었다. 그러니까 560년이 넘은 작품이다. 무생물도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 흔히 '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이라고 해서, 비단은 500년 가고 종이는 1000년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몽유도원도'는 신기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완벽해서 마치 어제 그린 그림 같다.
덴리대 도서관은 1980년대에 이 '몽유도원도'의 정밀한 복제본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화승(畵僧) 담징(曇徵)이 그린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가 불타버렸지만 다행히 복제본이 남아 있었던 것을 예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10년 전 필자는 국제교류재단의 위촉으로 해외문화재를 조사할 때 덴리대 도서관 수장고에서 '몽유도원도'의 진본과 복제본을 한자리에서 배관(拜觀)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도서관장이 두 점을 동시에 펴놓고 보여주는데 어느 것이 진품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귀신 같은 복제술이었다.
다만 시축(詩軸)에서 신숙주(申叔舟)의 시 중 제8행에 '요지로 가는 길(路走瑤池)'이라는 글귀를 보니 원본은 종이를 덧붙이고 땜질한 자국이 남아 있으나 복제본은 땜질을 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덴리대 도서관은 웬만한 전시회에는 이 복제본을 대여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 9일간의 진품 대여가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가 알 만한 일이다. 이 '몽유도원도'는 10월 7일까지만 전시되고 다시 소장처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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