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배기 술 막걸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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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12-26 08:27 조회5,2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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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최근 막걸리의 놀라운 인기에 주목하게 된다. 오랫동안 막걸리를 즐겨온 ‘막거홀릭스(Makoli+Alchoholics)’의 입장에서는 분명 희소식이다. 매달 4만3000원으로 의식주뿐만 아니라 유흥(?)까지 감당해야 했던 평화봉사단 시절 맥주나 양주를 마시는 일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끝내면 늘 소주와 막걸리로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1970년대 소주는 마시고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전날의 ‘소중한’ 기억을 담은 ‘테이프’를 끊기게 하는 주범임을 곧 알게 됐다. 몸도 곤죽이 됐다. 그러나 막걸리는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았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나는 기네스 맥주가 몸에 좋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다(아일랜드 출신들은 기네스 맥주를 ‘잔으로 먹는 식사’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충북 음성의 시골 어르신들로부터 “막걸리만 마셔도 보름은 끄떡없다”란 말을 전해 들었을 땐 그 기쁨이 두 배로 컸다.
30년 넘게 즐겨 마신 크림 빛 도는 그 걸쭉한 술에는 몸에 좋다는 유산균과 각종 영양소가 가득하다. 농촌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농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진짜배기 사람들이 진짜배기 일을 하면서 진짜배기 술을 마셨기에 더욱 그랬다. 내게 소주는 거의 ‘독약’이나 마찬가지지만 막걸리는 사나이가 진정으로 즐길 만한 술이었다.
웬만큼 마셔도 고주망태가 될 일이 없고 몸을 뒤로 젖히고 느긋하게 마실 만한 술이다. 남자답게 트림도 하고 방귀를 뀌어도 허물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국을 찾은 내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할 때 몸 안의 가스를 양쪽 끝으로 동시에 배출하는 세계 유일의 술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여성을 앞서 가는 여성이라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평화봉사단 시절부터 친구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는 수십 년 동안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녀는 대사관저(하비브 하우스)에서 열리는 만찬 때도 종종 막걸리를 내놓는다. 물론 막걸리를 좋아해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막걸리를 마시는 여성은 어떤 일을 맡겨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최근 스티븐스 대사가 막걸리를 와인 잔에 따라서 건배하는 사진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것은 막걸리에 대한 ‘모독’ 아닐까? 막걸리는 화려한 분위기에 맞는 고급 술이 아니라 진짜배기 서민을 위한 ‘정직한’ 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막걸리가 요즘 한국에서 한창 잘나간다.
막걸리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변화를 맞아 막걸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만 해도 쌀이 부족한 탓에 밀가루 막걸리로 ‘허기’를 때워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쌀이 남아돌아 쌀막걸리가 대세가 됐다.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일이다. 이제 쌀막걸리를 넘어서 품질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일보를 기대한다. 그러나 막걸리가 성공적으로 변신하려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 아직도 손님들은 식당에서 막걸리를 주문할 때 특정 막걸리를 달라고 하지 않고 대부분이 그냥 막걸리를 주문한다.
그만큼 막걸리의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막걸리 잔도 거의 획일적으로 플라스틱 세라믹 잔뿐이다. 따라서 보다 치밀한 브랜드 전략과 보다 다양한 잔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벌써 일부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지만 막걸리를 브랜드화해서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
브랜드화가 이뤄지면 양조업자는 일관된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마련이다. 아울러 막걸리를 담는 용기도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막걸리 자체의 품질향상이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막걸리의 발효 속도를 더디게 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 판매되는 기간을 더욱더 늘려야 한다. 한때 한국에는 일반소주와 그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관광소주’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경제는 그런 차별화가 필요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따라서 막걸리 업체들이 전반적으로 품질이 더 우수한 막걸리를 개발한다면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게 된다.
송년회에서 가까운 벗들을 만나거든 첫 잔은 막걸리의 변신을 축하하며 건배하면 어떨까? 그리고 두 번째 잔은 ‘막거홀릭스’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막걸리의 출현을 희망하며 건배해 보자. 전 세계에 사는 진짜배기 인간을 위한 진짜배기 술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필자인 톰 코이너는 미국인으로 컨설팅회사인 ‘소프트랜딩 코리아’ 대표이자 법무법인 주원의 수석 경영고문이다.]
TOM COYNER
그래서 하루 일과를 끝내면 늘 소주와 막걸리로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1970년대 소주는 마시고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전날의 ‘소중한’ 기억을 담은 ‘테이프’를 끊기게 하는 주범임을 곧 알게 됐다. 몸도 곤죽이 됐다. 그러나 막걸리는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았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나는 기네스 맥주가 몸에 좋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다(아일랜드 출신들은 기네스 맥주를 ‘잔으로 먹는 식사’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충북 음성의 시골 어르신들로부터 “막걸리만 마셔도 보름은 끄떡없다”란 말을 전해 들었을 땐 그 기쁨이 두 배로 컸다.
30년 넘게 즐겨 마신 크림 빛 도는 그 걸쭉한 술에는 몸에 좋다는 유산균과 각종 영양소가 가득하다. 농촌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농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진짜배기 사람들이 진짜배기 일을 하면서 진짜배기 술을 마셨기에 더욱 그랬다. 내게 소주는 거의 ‘독약’이나 마찬가지지만 막걸리는 사나이가 진정으로 즐길 만한 술이었다.
웬만큼 마셔도 고주망태가 될 일이 없고 몸을 뒤로 젖히고 느긋하게 마실 만한 술이다. 남자답게 트림도 하고 방귀를 뀌어도 허물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한국을 찾은 내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할 때 몸 안의 가스를 양쪽 끝으로 동시에 배출하는 세계 유일의 술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여성을 앞서 가는 여성이라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평화봉사단 시절부터 친구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는 수십 년 동안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녀는 대사관저(하비브 하우스)에서 열리는 만찬 때도 종종 막걸리를 내놓는다. 물론 막걸리를 좋아해서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막걸리를 마시는 여성은 어떤 일을 맡겨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최근 스티븐스 대사가 막걸리를 와인 잔에 따라서 건배하는 사진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것은 막걸리에 대한 ‘모독’ 아닐까? 막걸리는 화려한 분위기에 맞는 고급 술이 아니라 진짜배기 서민을 위한 ‘정직한’ 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막걸리가 요즘 한국에서 한창 잘나간다.
막걸리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변화를 맞아 막걸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만 해도 쌀이 부족한 탓에 밀가루 막걸리로 ‘허기’를 때워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쌀이 남아돌아 쌀막걸리가 대세가 됐다.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일이다. 이제 쌀막걸리를 넘어서 품질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일보를 기대한다. 그러나 막걸리가 성공적으로 변신하려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 아직도 손님들은 식당에서 막걸리를 주문할 때 특정 막걸리를 달라고 하지 않고 대부분이 그냥 막걸리를 주문한다.
그만큼 막걸리의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막걸리 잔도 거의 획일적으로 플라스틱 세라믹 잔뿐이다. 따라서 보다 치밀한 브랜드 전략과 보다 다양한 잔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벌써 일부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지만 막걸리를 브랜드화해서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
브랜드화가 이뤄지면 양조업자는 일관된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마련이다. 아울러 막걸리를 담는 용기도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막걸리 자체의 품질향상이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막걸리의 발효 속도를 더디게 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 판매되는 기간을 더욱더 늘려야 한다. 한때 한국에는 일반소주와 그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관광소주’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경제는 그런 차별화가 필요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따라서 막걸리 업체들이 전반적으로 품질이 더 우수한 막걸리를 개발한다면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게 된다.
송년회에서 가까운 벗들을 만나거든 첫 잔은 막걸리의 변신을 축하하며 건배하면 어떨까? 그리고 두 번째 잔은 ‘막거홀릭스’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막걸리의 출현을 희망하며 건배해 보자. 전 세계에 사는 진짜배기 인간을 위한 진짜배기 술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필자인 톰 코이너는 미국인으로 컨설팅회사인 ‘소프트랜딩 코리아’ 대표이자 법무법인 주원의 수석 경영고문이다.]
TOM COY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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