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리더에서 세계의 리더가 된 '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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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6-04-25 09:21 조회8,7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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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금융 위기와 난민 문제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보다 대담한 독일을 만들어냈다" - 파이낸셜타임스
어린 시절
겁많던 아이…
3m 다이빙대에서 벌벌
딱히 용감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홉 살 때 수영시간에 3m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45분이나 그 위에서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이 일화를 두고 누구는 메르켈이 우유부단하고 의사 결정이 느리다고 비판한다. 메르켈은 이에 대해 “나는 항상 나에게 닥칠 일을 미리 알고, 그 위험을 계산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메르켈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두 달 전부터 준비하던 아이였다. 그는 “내 삶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위험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열 네살 때 서독의 선거 결과를 화장실에 숨어 라디오로 듣기도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신학대학에서도 정치적 의견을 주고 받았다. 메르켈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아버지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종교적 신념은 공산주의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신학대학은 항상 동독 정보기관이었던 슈타지(Stasi)의 감시 대상이었다.
▶ 관련기사: 총리 메르켈은 겁쟁이였다
일상
그녀의 밤은
슈퍼마켓에서 시작
이곳에서 22년째 메르켈 총리를 봐 왔다는 직원 헬가 마쿠아스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로 퇴근길에 들러요. 그럴 때면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정장 차림이지요. 쉬는 날에는 청바지를 입고 오기도 합니다. 뭘 사는지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지만, 오렌지는 꼭 사요. 그녀는 모든 종류의 물건을 삽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일반 시민과 별 다를 게 없다는 뜻입니다."
마쿠아스씨는 "그녀가 총리가 된 후 달라진 점은 원래 혼자 오던 사람이 경호원과 함께 온다는 것뿐"이라며 "총리도 본인의 공간을 원하기 때문에 경호원들이 달라붙어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우리와 똑같은 일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아주 친근하지요." ▶ 관련기사: 낮엔 難民 위해 회견하고, 밤엔 한 남자 위해 장을 봤다
영락없는 가정주부
사람 냄새나는 메르켈의 모습
獨은 총리연임에 제한 없어…
국민 절반 이상이 연임 찬성
타임지가 2015년 올해의 인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선정했다. 타임지는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 위기와 유럽 난민 사태 때 메르켈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여성이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1986년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이래 29년 만의 처음이다.
17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12일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을 위한 휴전협정이 타결되자, 이번 협상을 주도한 앙겔라 메르켈(61) 독일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의 총리'라고 평가했다.
어려운 문제를 풀 때
파이낸셜타임스(FT)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
메르켈의 정치 스타일
일주일 동안 독일 베를린, 우크라이나 키예프, 러시아 모스크바, 독일 뮌헨, 미국 워싱턴DC, 캐나다 오타와, 벨라루스 민스크, 벨기에 브뤼셀을 오가며 7개국 8개 도시를 이동한 거리만 2만㎞, 순수 비행시간만 30시간이 넘었던 그의 여정을 보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총리 재임 기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메르켈은 전에 없이 열심히 분투했다"고 보도했다.
강행군을 견디는 비결에 대해 메르켈은 "낙타 같은 기질이 좀 있다"고 말했다. 밤에도 잠을 잘 자지 않고, 험난한 사막에서 긴 여행을 하는 낙타에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실제 메르켈은 이동 중 자동차나 비행기에서 쪽잠을 깊게 자며 수면을 보충하곤 한다.

그는 난민 포용 반대론자를 겨냥해서는 "마음에 냉소와 증오를 지닌 사람들을 따라서는 안된다"며 사회를 세대나 빈부, 거주기간에 따라 분열 시키고자 하는 시도에 굴복하지 말고 단합할 것을 촉구했다.
2015년 독일로 유입된 난민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다섯배에 이르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독일은 그동안 포용적 이민 정책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독일 정부의 난민 포용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해맞이 행사 중 독일 서부 도시 쾰른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독일 내 반(反)난민 정서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이념 갈등도 커지고 있다. 독일 정부는 "12월 31일 밤 새해맞이 행사 때 쾰른 중앙역 광장과 대성당 주변에서 발생한 범죄는 추행·폭행·절도 등 379건이었으며 이 중 40%가 성폭력 사건이었다"고 말했고, 메르켈 총리는 범죄를 저지른 난민에 대해 해외 추방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쾰른 집단 성폭력 파문에 反난민 시위 격화
난민들의 엄마, 사실은 계산이 빨랐다
중동 난민(難民) 수만명을 끌어안고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행보는 단순히 '인도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냉철한 '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독일이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이유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8일 보도했다. WP는 '늙어가는 나라'일수록 난민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을 원하고 있고, 이것이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행보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최근 독일 연방통계청은 "앞으로 독일이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돼 유럽 1위 경제 대국에서 물러날 날이 25년 내에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경영자총협회(BDA)는 올해 엔지니어 등 기술 인력 14만명이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난민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당장 난민들에게 투입해야 할 막대한 비용보다 이들이 독일의 경제성장과 인구문제 해결에 주는 도움이 더 클 거라는 판단에서다. 통 큰 난민 포용정책으로 '난민들의 엄마'로 불리는 메르켈 총리의 냉정한 계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기사
난민 포용 逆風, 집권 10년만에 최대 위기
메르켈이 2017년 총선에서 승리해 4선(選) 연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난민 포용 정책을 발표한 뒤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메르켈은 작년 8월 "내전 상태인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에 한해 무제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그리스·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들이 대거 독일로 몰려들었고 독일에선 반이민 여론이 급등했다. 그동안 '뚝심' 있는 정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던 메르켈이지만 난민 정책과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채권단 협상안 수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7월 5일 실시했고 '반대 결과'가 나오자 그의 '벼랑 끝 전술'이 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5년 7월 7일 유로존 정상회의에 나타난 메르켈은 "그리스 부채 탕감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스 부채는 스스로 상환해야 한다'는 원칙을 위해 협상 카드를 스스로 포기하며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메르켈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그리스'라는 치프라스의 약점을 간파했다.
"적당히 타협하라"는
오바마도, 올랑드도 48시간
마라톤 협상 이끈 그녀 못말려
메르켈 총리의 뚝심에 그리스는 무릎을 꿇었다. 오히려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하는 대가로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던 채권단의 기존 구제금융안보다 더욱 혹독한 긴축정책을 수행하게 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대화와 긴축 카드를 번갈아 꺼내 들며 강온(强穩)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는 원칙만은 한결같이 유지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했다.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독일이 2차대전 동안 유대인 약 100만명을 살해한 곳이다. 이곳에 수용됐던 유대인들은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70주년 기념식에서 "아우슈비츠는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라며 "이는 오늘 같은 기념일뿐 아니라 항상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아사히신문사 주최 강연회에 참석했다. 메르켈 총리는 "일본이 동아시아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라며 전후 유럽이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이 독일이 과거와 씨름하는 것에 대단한 중요성을 부여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전후 70년을 맞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세계 질서 속에 국제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과거사 정리는 화해의 전제"라며 "독일은 과오를 정리했기에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고 밝혔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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