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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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9-10 10:48 조회4,4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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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일본과 특수한 감정을 가지는 나라도 드물다.
인접국이지만 36년간의 식민지배, 그래서 가깝고도 먼 나라.
그동안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한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할 사회학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딱히 유별난 반일감정은 없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비슷한 부분도 많기에, 이 곳 호주에 와서도 딱히 일본을 의식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일본과의 미묘한 경쟁의식을 느끼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 곳 호주인들이 보이는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를 느끼니 더더욱 그렇다.
나는 한국 고려대학교 - 호주 뉴캐슬 대학교 1년 교환학생이다.
이 곳 학교에서 얼마 전 교환학생 박람회를 연 적이 있다.
자기 학교 학생들에게 타국 교환학생들과의 만남을 도모하여 교환학생 대상교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나는 고대 자리에 앉았고, 내 좌측에는 일본 나고야 대학생, 우측에는 세이조 대학생이 앉았다.
박람회가 시작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호주 학생들은 대체로 미국이나 유럽 쪽의 교환학생을 선호한다.
그나마 아시아에 관심을 보이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내 양 옆의 일본대학교들 앞에 섰다.
아무런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양 옆 일본 대학교 자리 앞엔 학생들이 북적였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도 좋다고 권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는 드물었다.
서로간 대학순위가 어찌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우리 대학도 나쁘진 않은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이 야속했다.
게다가 일본 대학교들은 모두 거금의 장학금까지 조건으로 걸고 있으니,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러는걸까. 은근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묵묵히 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제. 호주 친구가 데려간 자그마한 술집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복수전공한다는 호주학생을 만났다.
'아시아에 관심많은 녀석인가보군'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어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도 궁, 커피프린스, 꽃보다 남자 등 한국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대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없기 때문이란다.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정말 배우고 싶었지만, 한국어는 유튜브에서 보는 한국드라마로 만족해야만 했다고.
호주 내 몇 학교에 한국어과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어나 중국어 과정이 압도적으로 많다는건 장담할 수 있다.
그래. 그건 이해할 수 있다.
두번째 이유에서 나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일본어와 중국어는 배우면 취업에 도움이 되지만, 한국어는 상대적으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아시아 언어를 전공하면 중국어 혹은 일본어를 선택한다고.
학과 과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이유가 더 크다고 했다.
나는 사실 민족주의에 심취한 사람도 아니고, 미칠듯한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열혈애국청년도 아니다.
민족주의나 맹목적 애국심이 주는 위험성은 잘 알고 있다.
사회학적 입장에서 이런 류의 감성은 객관성을 잃은 치기 어린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몹시 속상했다.
교환학생 박람회에서 양 옆 일본 대학교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도 없고,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는게 더 낫다는 그 호주친구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88 올림픽, 2002 월드컵 개최국에다 OECD가입국이라는 자부심은 한국인들만의 것이었나.
2005년에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머리를 스쳤다.
1위, 시위(Demonstration). 2위, 핵(Nuclear). 3위, 북한(North Korea).
같은 시기 미국인 대상 일본의 이미지 조사 결과는 1위, 사무라이. 2위, 전자제품, 3위,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국문화를 알리는 소소한 일들이겠지만,
언젠간 내 이 작은 날갯짓이 이 이미지들을 날려버리는 나비효과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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