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온 식구 얼어붙게 만든 - 전설 따라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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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9-06 14:18 조회2,746회 댓글0건본문
1960년대 라디오 드라마 ‘전설 따라 삼천리’ 제작 현장에서 한 여자 아나운서가 기절했다. 긴장이 고조되는 대목을 녹음하고 있을 때 옆 부스에서 지켜보다가 겁에 질려 그만 쓰러져버린 것이다. 시그널 음악인 드뷔시의 ‘조각배(En Bateau)’만 들어도 간이 졸아들던 이 연속극은 66년 5월부터 방송됐다. “한국 여귀(女鬼)의 기준을 세웠다”는 호평을 받은 67년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도 이 드라마가 촉매 역할을 했다. 68년엔 장일호 감독의 영화 ‘전설 따라 삼천리’가 개봉됐다.
드라마의 인기에는 해설자 유기현씨의 산신령 같은 말투가 큰 몫을 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 맘씨 고약한 시어머니와 곱디고운 며느리가 살고 있었으니… 하늘이 감동하여 도왔던 것이었습니다그려.” 시골 노인들이 버스를 대절해 방송사로 유씨를 만나러 왔는데 30대인 그를 보고는 “진짜 유기현이 불러와”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78년 10월 마지막 녹음 때 해설하던 유씨가 비통하게 흐느꼈다. 알고 보니 폐암 말기였다. 유기현씨는 그해 방송대상 연기상을 탄 뒤 곧 세상을 뜬다. 드라마는 4408회라는 장수 기록을 세웠지만 막판엔 소재가 바닥 나 비슷한 얘기들이 반복됐다. “날마다 용이 승천하니 하늘이 꽉 차서 용이 더 들어갈 자리도 없겠다”는 핀잔도 들었다.
77년엔 TV가 ‘전설의 고향’을 내놓는다. 최고 히트작은 그해 만들어진 ‘덕대골’ 전설이었다. “내 다리 내놔라!”는 절규는 안방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덕대는 널에 시신을 놓고, 초가 지붕에 쓰던 짚으로 덮은 허술한 무덤이다.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인육(人肉)을 고아 먹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생각 끝에 덕대골에 가서 갓 죽은 이의 신체를 절단한다. 빗속에 다리를 들고 뛰는 여인 뒤에서 주검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며 앙감질로 추격해오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작고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한(恨)’(67년)이 모태가 되었다고도 하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으스스한 효과음을 들으며 상상을 펼치던 라디오의 귀신에 비해 TV의 ‘비주얼 귀신’은 왠지 싱겁다는 얘기도 나온다. 흑백 귀신보다 컬러 귀신이 못하다고도 한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전설의 고향’은 돌아왔으나 납량(納凉) 효과는 왠지 옛날 같지 않은 듯해 안타깝다.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드라마의 인기에는 해설자 유기현씨의 산신령 같은 말투가 큰 몫을 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 맘씨 고약한 시어머니와 곱디고운 며느리가 살고 있었으니… 하늘이 감동하여 도왔던 것이었습니다그려.” 시골 노인들이 버스를 대절해 방송사로 유씨를 만나러 왔는데 30대인 그를 보고는 “진짜 유기현이 불러와”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78년 10월 마지막 녹음 때 해설하던 유씨가 비통하게 흐느꼈다. 알고 보니 폐암 말기였다. 유기현씨는 그해 방송대상 연기상을 탄 뒤 곧 세상을 뜬다. 드라마는 4408회라는 장수 기록을 세웠지만 막판엔 소재가 바닥 나 비슷한 얘기들이 반복됐다. “날마다 용이 승천하니 하늘이 꽉 차서 용이 더 들어갈 자리도 없겠다”는 핀잔도 들었다.
77년엔 TV가 ‘전설의 고향’을 내놓는다. 최고 히트작은 그해 만들어진 ‘덕대골’ 전설이었다. “내 다리 내놔라!”는 절규는 안방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덕대는 널에 시신을 놓고, 초가 지붕에 쓰던 짚으로 덮은 허술한 무덤이다.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인육(人肉)을 고아 먹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생각 끝에 덕대골에 가서 갓 죽은 이의 신체를 절단한다. 빗속에 다리를 들고 뛰는 여인 뒤에서 주검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며 앙감질로 추격해오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작고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한(恨)’(67년)이 모태가 되었다고도 하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으스스한 효과음을 들으며 상상을 펼치던 라디오의 귀신에 비해 TV의 ‘비주얼 귀신’은 왠지 싱겁다는 얘기도 나온다. 흑백 귀신보다 컬러 귀신이 못하다고도 한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전설의 고향’은 돌아왔으나 납량(納凉) 효과는 왠지 옛날 같지 않은 듯해 안타깝다.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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