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족_그들은 왜 혼자이고 싶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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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3-19 10:08 조회2,3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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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촌의 일본식 라면집에서 한 여성이 1인용 칸막이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여행 가고…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9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이정재(29)씨는 홀로 야근을 하게 되면 찾는 식당이 있다. 혼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신촌의 라면집 ‘이찌멘’이다. 자판기에 메뉴를 입력하고 결제를 마치면 도서관 자리를 예약하듯 자리가 지정된다. 식권을 내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독서실같이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식탁에서 홀로 라면을 즐기면 된다. 이찌멘 신촌점 책임자 이명재씨는 “전체 23석 중 1인용 식탁은 11개로, 하루 250명 정도의 손님 중 절반가량인 110명 정도가 혼자 식사를 하고 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밥 먹는 풍경이 익숙해지고 있다. 서울 신촌의 라면집 ‘이찌멘’은 벌써 나홀로족뿐 아니라 혼자 밥 먹는 체험을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인기다. 서울 강남 일대에는 혼자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부쩍 늘었다. 벽을 마주 보고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코피스족(Coffice族·커피와 오피스의 합성어로 사무실 대신 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도 부지기수다.

영화, 공연관람 등 문화활동을 하거나 카페에서 여가를 즐기는 등의 나홀로 생활이 늘어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뭉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식사만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무래도 눈치 보이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서양과 달리 집단이 중요시되는 동양 문화권에서 혼자 있는다는 것은 속할 단체가 없거나 있어도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홀로 밥 먹기’는 새로운 세대일수록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고 이들이 점차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주 혼자 밥을 먹는다는 대학생 김유나(21·서울산업대)씨는 “다른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며 “영화를 보거나 쇼핑할 때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대화도 하고 신경도 써야 해서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이런 ‘혼자 밥 먹는 문화’는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울 신촌의 연세대 공학원에는 혼자 식사할 수 있게 칸막이가 쳐진 테이블이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연세대 공학원 지하 2층 학생식당에는 2008년 7월 리모델링을 하면서 일부 공간에 칸막이가 설치됐다. 요즘 혼자 밥 먹는 풍토가 자연스러워지면서 그곳을 찾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 여자대학에서는 이것이 더욱 익숙하다.

이른바 ‘스펙 싸움(취직에 유리한 경력을 쌓기 위한 싸움)’이 공과대학에 비해 더욱 치열하다는 여대에선 서로가 경쟁자다. 때문에 인간관계는 더 고립되고 필요에 의한 만남이 증가한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가까운 친구와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홀로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 전병욱(25·광운대)씨는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 함께 영화를 보게 되면 밥을 먹거나 차도 마시는 등 지출이 늘어나 비효율적”이라며 “나홀로 스타일은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에 대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결혼식 올 친구가 없다? 알바 쓰면 되지! 
나홀로족 출신의 신랑 신부가 늘어나면서 이색 아르바이트도 출현했다.

대학생 A씨는 지난 2월 2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을 찾았다. 그는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다.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러 갔다.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는 문자 그대로 하객이 돼주고 수고비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가리킨다. 하객이 너무 없는 경우 예식장이 썰렁해지는 걸 염려한 신랑신부 측에서 하객을 대신해서 예식장 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찾은 것이다. A씨는 신랑신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처음에는 하객인 양 연기하는 것도 쑥스럽고 힘들었는데 금방 익숙해졌다. 신부가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눈여겨볼 수도 있고 간혹 특급호텔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데다가 일당 2만~3만원도 나쁘지 않다.

최근에는 관련 산업까지 등장했다. 결혼식 하객대행업체 ‘하객프렌즈’는 결혼식에 찾을 친구나 친인척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객을 대준다. 최근 직장 동료나 친구가 적은 나홀로족 신랑신부를 위한 하객 아르바이트 업체가 부쩍 늘어났다. 하객프렌즈 이미영 실장은 “주말에는 20~30건씩 하객 동원 예약이 들어오고 4~6월, 9~11월 등 결혼식이 잦은 때는 특히 주문이 폭주한다”며 “친구 대행은 다들 연기력이 좋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했다.

나홀로족의 증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주거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나홀로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독립된 주거공간이다. 나홀로족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붙박이가구 등을 갖추고 있는 오피스텔이나 호텔식 원룸을 선호한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몸만 움직이면 되기 때문이다. 넓지는 않지만 이런 공간은 주로 월세 형태인 데다 이사할 때도 옮길 것이 적고 부담이 없어 인기가 많다. 이런 ‘이동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나홀로족은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말한 ‘유목민(nomad)’의 개념과 통하는 바가 있다. 그는 2005년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이란 저서에서 ‘유목민(nomad)’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곳에 정체돼 있지 않고 아이폰이나 미니 노트북 같은 휴대물품들만 가지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1인주택·레지던스… 부동산 정책 변화  
이렇게 혼자 사는 싱글족의 증가는 부동산 정책의 변화를 유도했다. 1인 주택, 1인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이 부쩍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싱글족을 겨냥해 맞춤형, 도시형 생활주택을 건설하면서 1인 원룸은 물론 싱글용 레지던스(숙박용 호텔과 주거용 오피스텔이 합쳐진 개념으로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거 시설)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북아현동에서 원룸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현정(27)씨는 “처음에는 학교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야 했지만 차차 익숙해졌다”며 “남의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전시회나 쇼핑을 할 때도 옆에 누가 있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홀로 사는 사람이 적어 외로움을 느꼈지만 요즘엔 독립하는 젊은층이 늘어나 외로움보단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생일날 집에서 혼자 조각 케이크 양초에 불을 붙이고 친구도 애인도 없이 홀로 4인용 자리에 앉아 꽃등심을 시켜먹는다.” 40세 나홀로족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는 지난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나홀로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책도 인기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역시 서른 중반의 세 여자가 싱글로 살아가는 모습을 다뤘다. 고영주·조희숙씨가 쓴 책 ‘혼자살기 가이드’는 내가 정말 독립생활에 적합한 사람일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는 ‘나홀로족’ 가이드북이다.

즉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살아갈 준비가 돼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집에서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멋지고 낭만적인 독립만을 꿈꾸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해석까지 들어 있다. 그 외에 싱글도 하나의 스타일이고 한번 익숙해지면 더없이 매력적이라 말하는 전지영씨의 ‘싱글은 스타일이다’와 함께 여자의 미래 싱글을 미리 준비하라는 우에노 지즈코의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도 눈길을 끈다.

 나홀로족을 겨냥한 상품들. 기존 상품보다 크기나 용량이 작다.

나홀로족 잡아라… 불붙은 미니 마케팅

이런 흐름 때문에 싱글 마케팅 업계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른바 ‘미니 마케팅’이 그것이다. 나홀로족은 4~6인용으로 많이 나오는 일반 가정용 식재료가 부담되기 때문에 적당한 양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1인용 반조리제품’과 ‘소포장 식품’을 선호한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업체들의 경우 소포장 제품을 확대하며 나홀로족을 겨냥하고 있다. 250mL짜리 미니 와인이나 맥주, 60~80g짜리 소형 김치팩 등이 대표적인 인기 상품이다.

공간 활용도가 좋은 소형 전자제품도 인기다. 핸디형 청소기, 46L짜리 소형 냉장고, 1∼3㎏ 내외 미니 세탁기, 1∼2인용 전기밥솥 등이 대표적이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한 직원은 “최근 출시한 쿠쿠미니는 작은 사이즈에 프리미엄 기능을 담은 3인용 압력 밥솥”이라며 “쾌속취사(13분) 기능으로 1인분 밥도 빠르게 지어 먹는 편리함이 장점”이라고 했다. 혼자 사는 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형 전자제품들은 나홀로족에겐 안성맞춤이다. 

더 작고 더 가볍게, 넷북 인기
최근엔 ‘무인셀프빨래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싱글족이 늘고 있는 데다 오피스 상권이 들어서면서 간편한 셀프빨래방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코인워시24’는 동전으로 작동되는 전자동 상업용 세탁기와 의류건조기 시스템, 무인관리 시스템을 갖춘 신개념 셀프빨래방이다. ‘코인워시24’의 영업본부장 유동근씨는 “혼자 살면서 빨래하기가 번거로운 싱글족이 자주 애용한다”며 “세탁기가 있지만 빨래부터 건조까지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어 편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입맛에 딱이다”라고 말했다. 

여행업계 역시 혼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나홀로족을 위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동행자 없는 1인 호텔 숙박의 경우 싱글차지(Single charge)를 지불하거나 비싼 싱글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웹투어’를 비롯한 몇몇 여행사들은 홀로 여행을 즐기는 싱글족을 위한 숙박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제는 동행 없이 혼자 여행을 할 때도 추가비용의 부담을 들일 필요가 없어져 솔로 여행자들로부터 호응이 크다.

대학생들 사이에 넷북(미니 노트북)이 인기를 끈 것도 나홀로족의 증가와 관련지을 수 있다. 혼자 생활하고 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 이동형 PC라고 볼 수 있는 노트북이 더 작고 가볍게 진화하는 것이다. 카페나 공공장소, 학교 내에서 넷북을 가지고 인터넷을 즐기는 이들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학생 김정은(26)씨는 혼자서 홍익대 앞 카페를 자주 찾는다. 김씨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혼자 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넷북 외에 휴대용 멀티플레이어나 MP3처럼 혼자 즐길 수 있는 디지털기기가 발달을 거듭하는 것도 나홀로족이 늘어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외국의 나홀로족

나홀로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일찍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나홀로족을 지칭하는 외국의 용어들을 살펴보면 우선 코쿤(Cocoonㆍ누에고치)족이 있다. 코쿤족은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용어로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이 ‘Cocooning’이란 말로 처음 소개했다.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바깥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나만의 안식처에 머물려는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 최근 이 코쿤족들이 경제 불황기의 합리적인 소비패턴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나홀로족은 중국에도 있다. 중국의 ‘소황제(小皇帝)’는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시작한 독생자녀제(獨生子女制·1가구 1자녀 원칙)에 의해 1980년대에 태어난 외둥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가진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성장하여 사회적 활동량과 소비수준이 높아 중국의 떠오르는 주류 소비계층으로 대두됐다. 때문에 중국 내 기업이나 해외 진출 기업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경쟁에 열올리고 있다.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도 중국의 소황제들을 주목해 타깃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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