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여자에 빠져살다… 몰락한 오바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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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07-19 15:14 조회5,747회 댓글0건본문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는 오바마가 두살 때 하버드대로 떠난 뒤 열살이 되던 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왔다. 오바마 대통령(사진 속 아이)은 당시 아버지(사진 왼쪽)와 만났던 일을 자신의 회고록에서 비통한
분위기로 묘사했다. /AP 연합뉴스
전기 '또 다른 버락'출간
케냐 나이로비의 청년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수학에 재능이 있었다. 오바마의 명민함을 눈여겨본 미국 출신 영어 교사 엘리자베스 무니는 그에게 미국 유학을 권하며 학비를 조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959 년 8월 오바마는 둘째를 임신 중이던 아내를 뒤로한 채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제학자의 꿈을 안고 케냐를 떠난 젊은 오바마의 삶은 그러나 46세이던 1982년 만취한 채로 차를 몰다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여성 편력과 음주로 일그러져만 갔다.
버 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버지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삶을 다룬 전기 '또 다른 버락(The Other Barak)'이 12일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을 쓴 보스턴글로브 기자 샐리 제이콥스는 '아버지 오바마'의 이민 기록을 열람하고 그와 만났던 여성과 가족을 인터뷰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오바마의 삶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하버드대, 사생활 이유로 비자 연장 거부
하와이대 학생 시절 오바마는 빼어난 춤 솜씨와 화려한 옷차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와 종종 데이트를 했다는 한 여성은 "버락이 춤을 출 때면 모두가 그의 아름다운 몸짓에 매혹됐다"고 회고했다.
오 바마는 사람들에게 케냐인 부인과 이혼했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다녔다.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그는 대학 재학 2년차인 1960년, 17세 동기생 스탠리 앤 던햄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결혼했다. 당시 뱃속에 있던 아기가 훗날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던햄과 이혼한 오바마는 하버드대 석사과정 지원 서류에 "케냐에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고만 썼다. 미국에선 중혼(重婚)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진학 후 학업 성적은 좋았지만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여성 관계가 복잡했고 술을 달고 살았다. 하버드대는 석사과정을 마친 오바마의 학생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 유산 상속 포기
오바마의 새 여자 친구 루스 베이커는 상심해서 케냐로 돌아간 오바마를 따라 몇 주 후 나이로비로 향했다. 4개월 후 오바마와 결혼한 베이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주 사고로 입원한 오바마를 찾았다가 그의 케냐인 아내와 맞닥뜨린다.
베이커는 "오바마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내 목에 칼을 대기까지 했다. 그는 매우 불안정했으며 끊임없이 위스키를 들이켜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오 바마는 평생 4번을 결혼했고 아이 6명을 낳았다. 그가 술에 취해 트럭을 몰고 가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들이받아 사망한 후 가족들은 유산 문제로 법적 공방을 벌였다. '누가 진짜 부인인가'를 가리는 재판 과정에서 미국 시카고에 산다는 둘째 아들의 이름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가 등장했다. 당시 일리노이주(州) 상원의원이었던 '아들 오바마'는 5만7500달러(약 6100만원)의 유산을 포기하겠다는 서류를 케냐로 보냈다.
전기 '또 다른 버락'출간
케냐 수재의 복잡한 사생활 - 빼어난 춤솜씨·언변으로 인기, 여성 편력에 술 달고 살다 하버드大 비자연장 거부당해
사후 유산문제로 법적 공방도 - 평생 4번 결혼에 자녀만 6명, 음주운전 사망 후 유산분쟁… 오바마, 6100만원 상속 포기
케냐 나이로비의 청년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수학에 재능이 있었다. 오바마의 명민함을 눈여겨본 미국 출신 영어 교사 엘리자베스 무니는 그에게 미국 유학을 권하며 학비를 조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959 년 8월 오바마는 둘째를 임신 중이던 아내를 뒤로한 채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제학자의 꿈을 안고 케냐를 떠난 젊은 오바마의 삶은 그러나 46세이던 1982년 만취한 채로 차를 몰다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여성 편력과 음주로 일그러져만 갔다.
버 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버지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삶을 다룬 전기 '또 다른 버락(The Other Barak)'이 12일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을 쓴 보스턴글로브 기자 샐리 제이콥스는 '아버지 오바마'의 이민 기록을 열람하고 그와 만났던 여성과 가족을 인터뷰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오바마의 삶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하버드대, 사생활 이유로 비자 연장 거부
하와이대 학생 시절 오바마는 빼어난 춤 솜씨와 화려한 옷차림,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와 종종 데이트를 했다는 한 여성은 "버락이 춤을 출 때면 모두가 그의 아름다운 몸짓에 매혹됐다"고 회고했다.
오 바마는 사람들에게 케냐인 부인과 이혼했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다녔다.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그는 대학 재학 2년차인 1960년, 17세 동기생 스탠리 앤 던햄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결혼했다. 당시 뱃속에 있던 아기가 훗날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던햄과 이혼한 오바마는 하버드대 석사과정 지원 서류에 "케냐에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고만 썼다. 미국에선 중혼(重婚)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진학 후 학업 성적은 좋았지만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여성 관계가 복잡했고 술을 달고 살았다. 하버드대는 석사과정을 마친 오바마의 학생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 유산 상속 포기
오바마의 새 여자 친구 루스 베이커는 상심해서 케냐로 돌아간 오바마를 따라 몇 주 후 나이로비로 향했다. 4개월 후 오바마와 결혼한 베이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주 사고로 입원한 오바마를 찾았다가 그의 케냐인 아내와 맞닥뜨린다.
베이커는 "오바마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내 목에 칼을 대기까지 했다. 그는 매우 불안정했으며 끊임없이 위스키를 들이켜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오 바마는 평생 4번을 결혼했고 아이 6명을 낳았다. 그가 술에 취해 트럭을 몰고 가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들이받아 사망한 후 가족들은 유산 문제로 법적 공방을 벌였다. '누가 진짜 부인인가'를 가리는 재판 과정에서 미국 시카고에 산다는 둘째 아들의 이름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가 등장했다. 당시 일리노이주(州) 상원의원이었던 '아들 오바마'는 5만7500달러(약 6100만원)의 유산을 포기하겠다는 서류를 케냐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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