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간 숨겨졌던 석굴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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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3-18 11:06 조회2,464회 댓글0건본문
▲ 국보 24호 경주 토함산 기슭에 있는 석굴암 본존불상
"우리 조상들이 천년 전에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
"석굴암 내부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니 정말 신기해요."
"석굴암 내부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니 정말 신기해요."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역사과학관을 찾은 지분성(43·전남 보성)씨와 박혜린(서울 서교초 3)양은 문화해설사가 들려준 석굴암 과학의 비밀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자리한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해 774년 혜공왕 10년에 완공됐다.
석굴암은 지금도 조각하기 힘들다는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건축, 수리, 기하학, 예술이 종합적으로 어울려 완성된 작품이다.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순수 인공 석굴인 석굴암 내부는 철저한 좌우 대칭으로 이뤄졌다. 사각형인 전실에는 양쪽에 각각 4개의 입상이, 원형인 주실에는 15개의 입상이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을 둘러싸고 있다.
석굴암은 12당척(1당척은 29.7㎝)을 기본으로 설계됐다. 주실은 반지름이 12당척인 원형이며 참배자의 위치는 본존불에서 12당척의 두 배 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거리는 참배자가 본존불을 보는 이상적인 거리다.
본 존불상은 얼굴 너비가 2.2자(1자는 약 30㎝), 가슴 폭은 4.4자, 어깨 폭은 6.6자, 양 무릎의 너비는 8.8자로 1:2:3:4의 비율이다.
신라역사과학관 권지협 학예연구사는 "석굴암은 정사각형과 대각선, 정삼각형과 수선, 원에 내접하는 정 6각형의 사용 등 수학적 기법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예술“이라며 ”1000년 이상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눈여겨 볼 점"이라고 말했다.
석굴암의 비밀은 바닥 밑을 흐르는 지하수에 있다. 지하수는 바닥의 온도를 벽면의 온도보다 낮게 유지하게 만들어 불상 표면의 결로현상을 막았다.
또 석굴암 주실에 상층부에 위치한 10개의 감실과 감실을 받치고 있는 돌 사이에는 작은 틈이 존재해 공기를 순환시킨다. 출입구의 아치형 천장 위 광창은 햇빛을 잘 받게 하고 원활한 통풍이 이루게 했다. 석굴암 천년의 비밀은 이 같은 자연 과학 원리들에 의해 유지됐다.
하지만 일제 시대부터 시멘트를 이용한 두 번의 보수공사 과정에서 서리와 이끼가 끼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현재는 기계에 의해 냉방과 온방, 습도조절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석굴암 불당에서 유리 너머로 본존불을 구경할 수 있다.
1960년대 유네스코와 함께 석굴암의 원리를 밝혀낸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는 "20세기 들어 일제가 1913년 콘크리트를 사용해 석굴암의 외벽을 시멘트로 싼 이후부터 석굴암의 비극은 시작됐다"며 "섣부른 지식을 가지고 복원사업을 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대인이 범한 큰 잘못"이라고 아쉬워했다.
1988년 10월 경주 민속공예촌에 개관한 신라역사과학관은 '석굴암의 신비, 그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석굴암 5분의 1 모형부터 제작과정, 과학적 원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역사과학관 전시실은 석굴암 외에도 주제별 6개로 나뉜다. 1층에 있는 제1전시실은 총 첨성대를 포함 7개의 주제로 전시되고 있다. 지하에 있는 제2전시실에서는 석굴암의 문제점을 모형으로 재조명한다. 2층 서쪽에 있는 제3전시실에서는 오대산 상원사 동종의 실물 모형과 종의 주조과정을 알 수 있다.
신라역사과학관 석우일 관장은"과거의 역사문화 속에는 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내일의 문화도 내재되어 있다"며 "경주를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민족 과학의 뿌리를 알리고 심어주는 교육현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라역사과학관의 관람시간은 3~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다. 11~2월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문의는 (054)745-4998번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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