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대의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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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2-15 11:36 조회3,819회 댓글0건본문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뭘까? '사고방식'? 옳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문제인 걸까?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례가 의외로 많다. 물론 전자가 많다. 한국인 중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빈국 국민과 비교하면 '교육, 식생활, 환경, 및 여러 부분'에서 훨씬 나은 조건에서 산다고 하겠다. 과연 이들 중에 자신의 조건에 나름대로 만족, 아니 '감사하면서' 남들에게 베풀고 봉사하고, 더 훌륭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반면 자기보다 조건이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그들의 단점과 결점을 들춰내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않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려 하기보다 '좋은 조건 덕분'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들이 좀 더 부자가 되고, 더 좋은 조건에서 살게 되면 행복해질까? 그러면 더 이상 불평 불만 느끼지 않고 만족해하고, 감사해하며,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게 될까? 어쩌면 '돈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적어지니 한결 살기 쉬워지리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정말 그런가?
당신은 전자가 되고 싶은가, 후자가 되고 싶은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나는 후자가 되고 싶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후자를 고를 테다.
자, 과연 이 둘을 갈라놓는 차이가 뭘까? 어떤 생각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까?
이 차이를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피해의식>이다. 조건과 무관하게, 피해의식이 강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 절대로다, 절대로. 결단코. 죽었다 깨어나도. 피해의식이 뭔가? '난 피해자야, 저 놈 때문에, 그 놈 때문에, 부자들 때문에, 부모 때문에,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 "때문에" 피해자가 되었어.'라는 생각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수로 행복할까? 그 수많은 '때문에' 때문에 행복할 틈이 어디 있겠나?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는데도 행복할 도리가 있을까? 피해의식이 강하면 바로 이런 상태가 된다. 마치 모두가 적이라도 되는 양 생각한다. 모두 꺾어 눌러야 하고, 모든 걸 힘의 논리로 생각하기도 쉽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하면, '이 사람이 날 이용하려고 하나' 하고 생각해서 경계한다. 친절을 순수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비꼰다. 잘나 보이는 사람을 보면 배가 뒤틀려 참을 수가 없다. 뭔가 단점을 찾아내야 속이 시원하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적'이고 '가해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수로 행복할 텐가?
후자를 보라. 이 사람은 분명 매우 힘들게 살아가리라. 그런데도 피해의식이 없기(혹은 거의 없기)에 그리 불행하지 않다. 힘든 삶이 '누구 때문'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그저 더 나아지려 노력할 뿐. 누군가 도와주려 하면 선뜻 받아들인다. 감사해하며 나중에 보답하겠다고 생각한다. 잘 사는 사람을 보면 그의 부지런함을 배우려 하고, 경쟁하고 싸우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피해의식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보호'받으며 큰 사람은 그 본능을 활용할 일이 많지 않다. 충분히 이완하고, 긴장을 푼 채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보호는커녕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공격'을 받으면, 자기 방어 본능이 극도로 민감하게 발휘된다. 이렇게 발달된 자기 방어 본능이 결국 '피해의식'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사실 돈이나 교육 같은 외형적인 조건보다는, 주변에 자기를 보호해줄,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는가가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자기 보호 본능을 점차 이완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나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지내기 십상이다.
이런 까닭에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은 일면 정말로 피해자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겼더라도, 절대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1차적인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도 발생한다. 내가 없으면 문제가 생길래야 생길 도리가 없다. 세상에 태어난 게 내 잘못이냐고? 물론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신이나 악마의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부모님의 음모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
이 말을 믿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안 그러면 문제 해결은 물 건너간 이야기요 떠나버린 버스다. 남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결정해버린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무엇하러 힘들게 노력하겠는가. 이제 더 이상 사는 의미가 없어지고, 더더욱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에게 1차적인 책임이, 원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곳이 출발선이다.
일단 이렇게 하고 나면, '때문에'라는 생각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원인이었으니까. 이런 조건에서 태어난 것도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자기를 괴롭힌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실수한다. 몰라서도 하고, 알고서도 한다. 그게 보통 사람이다. 남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우리도 저지른다. 그런 까닭에 용서해야 한다. 용서받으려면 먼저 용서해야 한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용서받기를 바라겠는가.
다른 글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했지만, 용서는 상대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자신을 위한 행위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용서란 '당연지사'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건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었든 누구 탓할 생각 말고, 현실이 힘들더라도,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성급하게 굴지 말자. 이미 20년간 무예를 갈고 닦은 사람과, 이제 막 자세 잡기 시작한 사람이 같아지기를 기대한다면 순전히 도둑놈 심보다. 남들의 조건과 상황과 능력 등이 부럽다면, 자신도 그에 마땅한 노력을 하면 되지,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 능력이 많아서 내 능력이 줄어들거나, 그 사람 돈이 많아서 내 돈이 적어지는 일 따위는 없다. 다 각자 자기 몫을 가져왔을 뿐.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자.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은 잠재의식에 숨겨진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들춰내서 없애버려야 한다. 습관적으로 하는 나쁜 생각들을 뿌리 채 뽑아내야 한다. 어떻게? 좋은 습관을 조금씩 들이면서.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남 탓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곧바로
라고 생각을 고쳐먹는 연습을 하면 된다. 이런 습관이 뿌리를 내리면, 반대 되는 습관은 저절로 사라져가리라.
피해의식은 진정 무서운 적이다.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까지 괴롭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도 붙어 있기 어려워 결국 떠난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악순환이다. 점점 외로워지고, 점점 도와줄 이가 없어지고, 점점 고립되면서, 점점 원망하고 탓하는 생각으로 가득해지고, 점점 절망적으로 살 수밖에. 이러다 끝내 자살하기도 한다. 피해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 적이기에 더욱 무섭다. 그렇기에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항상 자기 생각을 점검해야 한다. 언제 무시무시한 적이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늘 가장 무서운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지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때문에'라고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남의, 남에 의한' 삶을 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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