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시는 사우스,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통틀어 가장 번영에 찬 도시이다. 새로운 남부주 건설을 위한 대담하면서도 용감한 역할 수행이 샬롯시가 미국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도시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1740년 확립되어 1768년 인가된 이 도시는 조오지 3세의 아내였던 샬롯 왕비의 이름을 그리고 멕클렌버그 카운티는 독일에 있는 그녀의 고향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여왕에 대한 충성심은 신실한 것이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콘윌리스 경은 재임 당시 샬롯인들의 애국심을 보고 "말벌 둥지"로 비유하곤 했는데 이것이 샬롯이의 별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샬롯시는 1755년 당시 선두를 달리는 도시로서 멕클렌버그 헌장을 조인하고 샬롯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음을 선포했는데 이것은 독립헌장이 만들어지기 1년 전이었다.
1836년 미국 민트담배회사가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곳도 샬롯이었다. 1799년 황금이 발견되어 1849년 캘리포니아주에서의 황금러시가 일어날 때까지 샬롯은 미 전국에서 가장 큰 황금생산지였다.
남북전쟁과 노예폐지 이후 샬롯시는 노예력에 기반을 둔 경제에서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로 쉽사리 자리바꿈을 하였다. 이것은 주로 산업단지들과 방직공장들의 연료를 제공하는 강력한 수력을 제공하는 카토바 강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샬롯시는 세련되면서도 진보에 찬 걸음걸이로 21세기를 나아가고 있다. 100마일 반경 이내에 600개 넘는 섬유공장이 유치되어 있는데다 편리한 지역적인 위치로 인해 수송 및 금융, 교육, 의학 등 전 분야에 걸쳐 남부주들을 선도하는 지도자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여왕의 도시" 샬롯은 강력한 힘과 슬기로움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역사와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도시이다.
최근에는 First Union Bank가 Wachovia Bank를 흡수 합병하면서 그 이름을 Vachovia Bank로 변경하고 본사를 계속 샬롯에 유지함으로써 명실공히 미국 제 2의 금융도시로 발돋움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