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일신 3대 종교가 탄생한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이 3대 종교의 공동 성지입니다. 그것도 ‘올드 시티’로 불리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좁은 공간에 몰려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팩트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교 성지인 이유는 현재 ‘통곡의 벽’이 있는 곳이 언약의 궤가 모셔진 ‘하느님의 성전’(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성지인 이유는 황금사원(바위의 돔)으로 불리는 알 하람 알 샤리프 모스크(알 아크사 사원)이 세워져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지인 이유는 그 바로 뒤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엔 이유가 다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셋은 밀접한 연관관계를 지닙니다. 그 연원은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제의에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해 모리아산 위에 올라가 한 평평한 바위 위에서 진짜로 아들을 죽이려 합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순간 이를 제지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라 하며 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동조상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그 아들이 누구냐를 두고 엇갈립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팔순을 넘겨 정실부인인 사라에게서 낳은 적자 이삭이라고 믿습니다. 아랍인은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 이쉬마엘이라고 믿습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이쉬마엘은 기독교 문명에선 ‘저주 받은 자’이지만 이슬람 문명에선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조상으로 ‘축복 받은 자’입니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모리아산이 예루살렘의 시온산(성전산)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모세가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석판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40년 방황하면서 먹었던 ‘맛나’가 든 항아리, 모세의 형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보관한 ‘언약의 궤’를 모신 성전으로 솔로몬 왕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신전을 지은 자리가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희생시키려 했던 그 바위가 있던 자리에 세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성전은 로마 침공으로 무너집니다. 로마인들은 본보기로 삼기 위해 성전의 서쪽 벽만 남겨뒀는데 이게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재밌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훗날 이슬람세력이 7세기말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바로 그 희생제의 바위가 있던 자리에 알 아크사 사원을 세웁니다. 자 이제 이 사원의 이름이 왜 ‘바위의 돔 사원’인지는 눈치 채시겠죠? 엄밀하게는 이 장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말을 찬 채 날아와 문제의 바위를 박차고 승천해 옛 예언자들을 만났다는 전설에 따라 메카 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곳까지 날아와야 했을까요? 그건 누가 아브라함의 적손이냐는 정통성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문제의 바위가 있는 뒤에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고행의 길을 걸은 골고다 언덕이 있어 기독교 성지가 됐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민족종교였던 유대교를 세계 보편종교로 전환시킨 혁명아였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기독교도냐 이교도냐가 구원의 중요한 증표가 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4세기 예수의 십자가가 발견되는데 그걸 발견한 사람이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정통성을 위한 정치적 조작의 냄새가 물씬 나지 않습니까?
이처럼 예루살렘 올드시티를 보면 종교분쟁의 본질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결코 신들의 전쟁이 아닙니다. 세 종교의 신앙의 대상은 동일한 존재입니다. 유대교의 여호와, 기독교의 더 로드, 이슬람의 알라는 모두 같은 신의 이칭입니다. 오늘날 종교분쟁은 그 동일한 신과 관련해 누가 더 정통성이 있느냐는 인간들의 전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