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그 이름,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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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6-03-25 23:48 조회3,021회 댓글0건본문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義士) 순국 106주기다.
안중근 의사는 '국권이 회복되면 나의 유해를 고국에 묻어 달라'고 했지만 그는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후대에 와서 기념관이 세워지고 추모 행사들이 매년 진행되고 있다. 그 전에 먼저 안 의사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義士)의 마지막 유언-
우리가 알아도 잘 몰랐던, 안중근
어린시절 · 청년시절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안태훈이며 할아버지는 안인수로 진해현감을 지냈다. 할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여 집안은 부유하였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안태훈이 사병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하였으며,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의병 활동
동의단지회 결성
이토 히로부미 저격
순국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
안중근의 뿌리
안중근 의사는 1879년 7월 황해도 해주 수양산에서 순흥 안씨인 안태훈 진사와 배천 조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무반 직의 진해 현감을 지낸 안 의사의 조부 안인수는 도내에서 재산이 많고 재물을 아끼지 않는 호걸 형의 자선가로 유명했다. 안 의사 부친 안태훈은 학문에 뛰어나고 신학문에 뜻이 있어 개화파 박영효가 선발한 외국 유학생 명단에 올랐었다.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박영효는 일본으로 피신했고 안태훈은 유학을 못 가고 체포 대상이 되었다. 그는 고향으로 피신해 재산을 정리하고 황해도 신천군 청계산 속으로 들어가 살았는데 이때 안 의사가 6-7세였다.
부인과 아들
안 의사는 부인 김아려와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순국 후 가족은 중국 흑룡강 성으로 이주했는데 거기서 12세의 장남 분도가 일본 밀정에 의해 독살당하는 비극을 당했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는 청년 안 의사가 신부로 양육하라고 유언할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둔 장남이었다. 그 후 안 의사 가족은 러시아령 우수리스크로 가서 고생하며 살다가 1919년 이후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 프랑스령 조계지에 가서 살게 되었다.
상하이에서 김구 등 독립 운동가들이 안 의사 가족을 도와 장녀 안현생과 차남 안준생은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거사 이후 상하이를 탈출하지 못해 일제의 감시와 탄압 대상이 되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장녀 안현생과 차남 안준생이 일제의 모진 술수와 강압에 못 이겨 서울에 와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에서 이토의 명복을 빌었다. 안준생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망부(亡父)를 대신해 속죄한다"고 사과함으로써 평생 '변절자' 시비에 휘말렸다.
김구와의 인연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 안정근과 안공근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는데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안정근의 딸 안미생은 김구의 장남 김인과 결혼했다. 김구가 19세 때 동학의 접주가 되어 동학군을 지휘할 때 안 의사 부친 안태훈 진사는 김구가 비범한 인재임을 파악하였다.
후에 안태훈 진사는 김구를 불러 자신의 집에서 공부하게 하여 김구는 안 의사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구는 우리 민족의 최고 악질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를 평생 존경하고 안중근 의사를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삼았다.
후대의 노력
각종 추모행사·집회
기념관
▶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
안 의사는 의거에 성공 후 뤼순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 유해가 아직까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그의 사상과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다. 남산공원을 지나 남산도서관 방향으로 산을 오르면 안중근의사의 동상과 함께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2010년 새로 건립된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의사의 출생부터 순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가 전시돼 있다.
▶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기념관은 2013년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안 의사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이라도 설치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설립이 검토됐다. 일본이 반대했지만 중국 정부가 결단을 내려 표지석 정도가 아니라 기념관을 만들기로 하고 2014년 1월 개관했다. 비용은 전액 중국 정부가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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