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金)은 무슨?… 대통령은 2김(金)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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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9-13 13:57 조회3,467회 댓글0건본문
3김(金)은 무슨?… 대통령은 2김(金)만 했는데
김종필 자민련 前 총재, 뇌졸중 퇴원후 첫 인터뷰
"난 내각제하다 망했지만 대통령제 빨리 바꿔야 DJP연합 후회는 안해"
"세종시, 과천 등 4곳에 행정부 나누는건 문제지만 대통령이 한 약속 지켜야"
현재 건강상태는… "오른손이 조금 불편한 정도 봄 되면 골프 칠 수 있을것"
"난 내각제하다 망했지만 대통령제 빨리 바꿔야 DJP연합 후회는 안해"
"세종시, 과천 등 4곳에 행정부 나누는건 문제지만 대통령이 한 약속 지켜야"
현재 건강상태는… "오른손이 조금 불편한 정도 봄 되면 골프 칠 수 있을것"
작년 12월 뇌졸중 증상으로 입원한 뒤 외부 접촉을 피해오던 김종필(83) 전 자민련 총재가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퇴원 후 그의 근황을 듣기 위해 인터뷰 요청을 해둔 지 한참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던 그는 이날 갑자기 "만나자"고 해왔다. 13일 오후 서울 청구동 자택 접견실에서 만난 김 전 총재는 "3김(金)은 무슨 3김. 나는 대통령도 못했으니 '2김 정치'야"라며 특유의 유머로 받아넘기는 모습 등이 예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와 팔이 좀 불편해 보였지만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옛날 일들도 또렷이 기억했다. 지팡이를 잡고 현관까지 걸어나와 기자를 배웅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재는 "경남 양산은 사정이 어떠냐. 엊그제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한나라당이 좀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며 10월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뉴스를 계속 챙겨보시는 모양이다.
"요즘도 아침에 중요한 신문은 다 읽는다.(웃음)"
―최근에는 북한의 임진강 방류사건이 큰 이슈다.
"그게 참. 여섯 사람이나 생사람 죽게 댐 문 열어버린 것 아니냐. 이쪽이 대비를 제대로 못한 것도 문제지만 그런 무도한 짓을 북한에서 하는데도 아무 대책이 없으니 그게 뭔가. 작년에는 한 여인이 금강산 갔다가 사살됐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들한테는 쓴소리 한 번 못하는가. 정부가 더 좀 할 소리는 하고 따질 건 따지고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 북한 조문단을 대한 태도는 어땠나?
"그건 잘 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평화 공존 내걸고서 도와준 걸로 저쪽이 원자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이번에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대응하는 거 보면서 '좋다.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잘하긴 했는데 또 모르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며 웃기도 했다.
―최근 북한은 강공과 유화책을 동시에 쓰고 있다.
"어제도 이북 방송은 극언을 하면서 이 대통령을 욕했는데, 그럼 못쓴다. 우리도 그런 걸 그냥 두면 안 된다. 통일부 장관이든 외교부 장관이든 맞대응해서 '그러지 말아라. 대통령을 그렇게 욕하면 되느냐'고 왜 한마디들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에이 답답혀."
그렇게 말하는 그의 탁자 위에는 세종시 관련 자료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세종시 문제는 나도 그냥 누워서 구경만 할 사태가 아닌 것 같아 한마디 해야겠다. 엄격하게 국가 차원에서만 볼 때는 이게 그리 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행정부가 서울에 하나, 대전에 하나, 과천에 하나, 세종시에 하나, 이렇게 나뉘는 것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 했을 때 일어날 혼란을 생각하면 안 할 도리가 없다. 대통령도 6차례나 약속한 거다. 최소한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복합행정도시를 만들면 되고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충청도 지사들에게 힘을 실어줘서 실천하게 밀어줘야 한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안 했을 때 일어날 혼란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거다. 국민들에게 믿음을 잃으면 그 후에 국정을 다스려 가기 어렵다."
―우리 정치의 이런 지역주의는 '3김(金)정치' 유물이라고도 한다.
"3김은 무슨 3김, 2김이지. 대통령은 두 사람이 했지 내가 했나. 나야 그냥 대통령 보좌만 한 사람이고 정치는 2김이 한 거지. 3김이라는 건 사람들이 잘못 붙인 이름이다.(웃음)"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을 하지 않았는데.
"환자가 조문할 수가 있나. 사람이라는 게 때가 되면 다 하느님이 불러가시는 거다. 과욕을 부려서도 안되고 일을 다 마쳤으면 뒤에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분(DJ)은 그러시질 못했다. 누가 북한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 하면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고 했는데 그런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긴 이제는 그런 소리도 못 듣게 됐구먼…." 애증이 교차하는 듯이 보였다.
―우리 정치의 지역주의 극복하려면.
"대통령중심제 하는 한 끊이지 않는다. 내가 내각제 부르짖다가 망한 놈이지만 빨리 정체(政體)를 바꿔야 한다."
―내각제는 DJP연합 때 약속했다가도 실패했는데.
"(마루 쪽을 가리키며) DJ가 여기를 세 번 찾아 왔었다. 그때 내가 '도와주겠는데 세 가지를 약속해 달라. 하나는 임기 끝나기 전에 내각제 발의해라. 두번째는 동서 화합은 시켜놓아라. 그리고 세번째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사업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안됐다. 그래서 깨졌던 것이다. 또 임동원 국정원장이 북한에서 김정일과 술잔 쳐가면서 희희낙락하는 거 보고 '저 사람 자르라'고 했는데 (DJ가) '못한다'고 해서 '그러면 당신하고 더는 못한다'고 했던 숨은 이야기도 있다. 그때 내가 (DJP)연합 안 했으면 대통령 못했을 거다. 아마 이회창이 됐을 거다."
―DJP연합 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
"시원찮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으로 믿었기 때문에 후회는 않는다. 또 (그때 DJ가 대통령이) 돼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한 일은 있으니까.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는 않는다." 김 전 총재는 부담스러울 것 같은 이야기도 웃으며 시원시원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건강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봤다.
―소문보다 건강이 좋아 보인다.
"오른손이 좀 (왼손으로 오른팔을 들어 보이면서) 불편해서 그렇지 아픈 거는 없다. 매일 물속에서 걷고 물리치료 받고 그런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좋아하는 골프도 가능할까.
"의사가 '나아지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넉넉잡아서 내년 봄까지는 요양하면 할 수 있지 않겠나. 반드시 한 번 (라운딩을) 할 거다."
―혹시 자서전도 준비하는가.
"그런 거 안 한다. 다행히 이 (오른)팔이 연필을 잡지 못하니, (하늘도) 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느냐(웃음). 모든 사람들이 천지인(天地人)의 섭리들을 어기니까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섭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두 시간이 돼가자 주변에서는 "힘든데 그만 하시라"고 했지만 김 전 총재는 "뭐 이 정도 갖고 그래"라며 소리를 쳤다. 그는 특히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상당히 한(恨)이 있는 듯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김영광 전 의원에게 "그 일 좀 어떻게든 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시 문제를 말할 때는 '충청권 맹주'를 자임하던 자민련 총재 때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그가 인터뷰 시점을 이때로 택한 것도 결국 세종시 문제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도 아침에 중요한 신문은 다 읽는다.(웃음)"
―최근에는 북한의 임진강 방류사건이 큰 이슈다.
"그게 참. 여섯 사람이나 생사람 죽게 댐 문 열어버린 것 아니냐. 이쪽이 대비를 제대로 못한 것도 문제지만 그런 무도한 짓을 북한에서 하는데도 아무 대책이 없으니 그게 뭔가. 작년에는 한 여인이 금강산 갔다가 사살됐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들한테는 쓴소리 한 번 못하는가. 정부가 더 좀 할 소리는 하고 따질 건 따지고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 북한 조문단을 대한 태도는 어땠나?
"그건 잘 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평화 공존 내걸고서 도와준 걸로 저쪽이 원자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이번에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대응하는 거 보면서 '좋다.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잘하긴 했는데 또 모르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며 웃기도 했다.
―최근 북한은 강공과 유화책을 동시에 쓰고 있다.
"어제도 이북 방송은 극언을 하면서 이 대통령을 욕했는데, 그럼 못쓴다. 우리도 그런 걸 그냥 두면 안 된다. 통일부 장관이든 외교부 장관이든 맞대응해서 '그러지 말아라. 대통령을 그렇게 욕하면 되느냐'고 왜 한마디들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에이 답답혀."
그렇게 말하는 그의 탁자 위에는 세종시 관련 자료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세종시 문제는 나도 그냥 누워서 구경만 할 사태가 아닌 것 같아 한마디 해야겠다. 엄격하게 국가 차원에서만 볼 때는 이게 그리 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행정부가 서울에 하나, 대전에 하나, 과천에 하나, 세종시에 하나, 이렇게 나뉘는 것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 했을 때 일어날 혼란을 생각하면 안 할 도리가 없다. 대통령도 6차례나 약속한 거다. 최소한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복합행정도시를 만들면 되고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충청도 지사들에게 힘을 실어줘서 실천하게 밀어줘야 한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안 했을 때 일어날 혼란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거다. 국민들에게 믿음을 잃으면 그 후에 국정을 다스려 가기 어렵다."
―우리 정치의 이런 지역주의는 '3김(金)정치' 유물이라고도 한다.
"3김은 무슨 3김, 2김이지. 대통령은 두 사람이 했지 내가 했나. 나야 그냥 대통령 보좌만 한 사람이고 정치는 2김이 한 거지. 3김이라는 건 사람들이 잘못 붙인 이름이다.(웃음)"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을 하지 않았는데.
"환자가 조문할 수가 있나. 사람이라는 게 때가 되면 다 하느님이 불러가시는 거다. 과욕을 부려서도 안되고 일을 다 마쳤으면 뒤에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분(DJ)은 그러시질 못했다. 누가 북한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 하면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고 했는데 그런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긴 이제는 그런 소리도 못 듣게 됐구먼…." 애증이 교차하는 듯이 보였다.
―우리 정치의 지역주의 극복하려면.
"대통령중심제 하는 한 끊이지 않는다. 내가 내각제 부르짖다가 망한 놈이지만 빨리 정체(政體)를 바꿔야 한다."
―내각제는 DJP연합 때 약속했다가도 실패했는데.
"(마루 쪽을 가리키며) DJ가 여기를 세 번 찾아 왔었다. 그때 내가 '도와주겠는데 세 가지를 약속해 달라. 하나는 임기 끝나기 전에 내각제 발의해라. 두번째는 동서 화합은 시켜놓아라. 그리고 세번째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사업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안됐다. 그래서 깨졌던 것이다. 또 임동원 국정원장이 북한에서 김정일과 술잔 쳐가면서 희희낙락하는 거 보고 '저 사람 자르라'고 했는데 (DJ가) '못한다'고 해서 '그러면 당신하고 더는 못한다'고 했던 숨은 이야기도 있다. 그때 내가 (DJP)연합 안 했으면 대통령 못했을 거다. 아마 이회창이 됐을 거다."
―DJP연합 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
"시원찮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으로 믿었기 때문에 후회는 않는다. 또 (그때 DJ가 대통령이) 돼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한 일은 있으니까.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는 않는다." 김 전 총재는 부담스러울 것 같은 이야기도 웃으며 시원시원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건강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봤다.
―소문보다 건강이 좋아 보인다.
"오른손이 좀 (왼손으로 오른팔을 들어 보이면서) 불편해서 그렇지 아픈 거는 없다. 매일 물속에서 걷고 물리치료 받고 그런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좋아하는 골프도 가능할까.
"의사가 '나아지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넉넉잡아서 내년 봄까지는 요양하면 할 수 있지 않겠나. 반드시 한 번 (라운딩을) 할 거다."
―혹시 자서전도 준비하는가.
"그런 거 안 한다. 다행히 이 (오른)팔이 연필을 잡지 못하니, (하늘도) 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느냐(웃음). 모든 사람들이 천지인(天地人)의 섭리들을 어기니까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섭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두 시간이 돼가자 주변에서는 "힘든데 그만 하시라"고 했지만 김 전 총재는 "뭐 이 정도 갖고 그래"라며 소리를 쳤다. 그는 특히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상당히 한(恨)이 있는 듯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김영광 전 의원에게 "그 일 좀 어떻게든 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시 문제를 말할 때는 '충청권 맹주'를 자임하던 자민련 총재 때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그가 인터뷰 시점을 이때로 택한 것도 결국 세종시 문제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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