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사극’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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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8-17 08:32 조회2,331회 댓글0건본문
‘탐나는 사극’이도다
공희정 /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채널사업팀장
판타지 사극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17세기 조선의 한 섬에서 일어난 이야기「탐나는도다」(MBC). 섬을 벗어나고 싶은 해녀 버진과 귀양 온 선비 박규, 그리고 일본 나카사키로 가는 밀항선을 탔다 표류한 노랑머리 서양인 윌리암. 이들을 둘러싼 사백년전 이야기가 환상적인 화면위에 펼쳐진다.
이야기의 독특성. 우리가 익숙해 있는 사극은 왕실사극. 천명공주의 죽음과 덕만이의 등극, 그리고 미실파의 최대 위기속에서 흥미진진해 지는「선덕여왕」(MBC)이나 고려가 대제국이 될 날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하는「천추태후」(KBS), 낙랑국과 고구려의 슬픈 역사를 그렸던「자명고」(SBS), 모두 왕실이야기이다. 비주류의 삶을 그렸던「대장금」(MBC)도 왕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러나「탐나는도다」는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 변방의 한 섬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천방지축 버진과 영화「마파도」의 귀여운 할매들을 떠올리게 하는 잠녀들, 이들의 대화는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생선처럼 살아있다. 제주도 사투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색함이 더 재미있다. 윌리엄이 등장하는 대목에선 하멜표류기의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하다.
아무리 사 백 년 전의 이야기라지만,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 양 등장인물들의 움직임, 말투 하나하나에 공감의 맞박수가 쳐진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경쾌 발랄 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라의 과도한 진상품 관리로 부담이 커가는 민초들의 목소리도 따끔하게 담고 있다.
환상적 배경. 시선을 잡아끈 것은 푸른 빛으로 넘실대는 제주 바다의 낮과 밤. 특히 제주의 푸른 밤은 그 장면만으로도 명화였다. HDTV를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규가 걸어가던 연두 빛 들판과 그 사이로 난 황토 빛 길은 순수한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어디 그 뿐인가. 샌드애니메이션을 통해 섬이라는 배경적 특성을 적절하게 표현한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모래로 연출해내는 장면 하나하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상쾌한 기쁨인 지 보여주었다. 마치 3DTV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모든 것이 촉감으로 느껴졌다.
소통에 대한 진보적 철학. 인터넷도 없고, 비행기도 없던 시절, 나와 다른 모습을 한, 그것도 노랑머리에 말도 통하지 않는 서양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인데, 윌리엄을 발견한 버진은 그냥 먼 나라 친구를 만난 듯 친절했다. 아무리 귀양왔다고 하지만, 선비인 박규앞에서 당당한 해녀 버진의 가족들은 소통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평등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선비임네 하고 어깨에 힘을 넣어보긴 하지만, 제주에 유배 온 박규는 조금씩 제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다소 낯설지만, 받아들이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소통이란 모든 것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을 때 원활해진다는 이들의 철학인 듯하다.
「탐나는도다」는 출발부터 흥미진진하다. 수 천 년 전 세월 속에 숨어있는 무수한 이야기의 단상들이 21세기적 상상의 나래로 훨훨 날아오르는 느낌이다. 인기 있는 배우, 재벌,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등 드라마 성공의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없어도,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성공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탐나는’ 사극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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