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글씨와 제자의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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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9-25 13:05 조회2,6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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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학통이 무너진 삭막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학통이 무너지는 것은 승승의 위엄과 자애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추사 김정희와 석파 이하응이 나눈 사제 간의 정리를 되새겨 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추사 김정희를 일러 사람들은 ‘가슴에 만권서(萬卷書)를 품고, 팔뚝 아래 309비(碑)를 거느리며, 서예의 비의(秘義)를 남김없이 구사했다.’고 말한다. 그의 학문과 예술을 이보다 더 명확 간결하게 정리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획 마다 힘차게 뻗어가는 <추사체秋史體>를 이루었고 또 그것은 만 자루의 붓을 닳게 할 정도의 수련과 노고의 결과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금석학(金石學)도 따를 사람이 없을 전도로 우뚝하다. 그 하늘과도 같았던 추사 김정희가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을 끔찍이도 아꼈고, 흥선군이 그린 난(蘭)을 일러 ‘압록강 이남의 으뜸’이라고 극찬한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를 않다.

 

1851년(철종2), 현종묘천 문제에 연루되어 김정희는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장장 8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지 겨우 2년 반 만의 재앙이었고, 나이 66세, 참담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김정희는 흥선군 이하응을 내외 팔촌척의 친근감의 표시로 ‘외씨’라고 불렀다. 이 때 흥선군 이하응은 31세, 종친부(宗親府)의 유사당상(有司堂上)이라는 하찮은 자리에 있으면서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섬기면서 난(蘭)을 그리곤 하였는데 추사로부터도 극찬을 듣고 있던 시절이다. 후일 그가 그린 란을 석파란(石坡蘭)이라고 하는 것은 흥선군 이하응의 호가 석파이기 때문이다.

 

스승을 귀양지로 떠나보낸 흥선군 이하응은 난을 그리는 틈틈이 전서(篆書)를 쓴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스승 추사 김정희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모아진 석파란과 전서를 북청에 있는 스승에게 보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한양에서 북청까지를 천 팔십 삼리라고 적고 있다. 이하응은 하인에게 난초 화첩(畵帖)과 편지를 주어 북청으로 떠나가게 한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으나 하인은 도성을 떠난 지 근 한 달 만에야 추사 김정희의 편지를 받아들고 돌아온다.

 

―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물며 외씨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받고서이겠습니까…. 뜻하지도 않게 주신 글월은 보통 정성에서 나왔을 리는 만무하여 편지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스스로 진정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쓰신 아름다운 나무와 좋은 인연을 맺고 대숲에서 풍류를 즐긴다는 글씨는 원숙하게 되었으며 문자가 또 상서로우니 사모하는 생각이 간절하여 더욱 부러울 뿐입니다. …귀하게 보내주신 여러 작품은 정중하고도 지극한 뜻인 줄을 알겠기에 평소에는 갖기를 바라지도 못한 것이었지만 물리치면 공손하지 못하겠으므로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미안함을 무릅쓰며 받고 나니,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함께 일어납니다.

 

사제 간의 정리로는 너무도 경건하고 아름답다. 설사 이 일이 오늘날에 있었던 일이라 해도 서른네 살이나 연장인 스승으로부터 이만한 찬사를 받았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할 일이고도 남는다.

이 후에도 이하응은 편지와 화첩을 천리 길 북청 땅에 네 번이나 더 보낸다. 그때마다 추사 김정희는 참으로 따뜻한 회신을 보내주었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연을 여기에 옮겨두고자 한다.

 

― 난화(蘭畵)의 일권(一卷)에 망령스럽게도 제기(題記)를 붙여서 이번 편지에 보내드리니 받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대개 이런 일이란 곧 한 가지 잔재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집중하여 공부하면 유가(儒家)에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확실히 하는 공부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군자는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 도(道)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않게 됩니다.

 

― 허리를 구부려 난초 그림을 보니 이 늙은이라도 역시 마땅히 손을 들어야 하겠거늘, 압록강 이동에서는 이와 같은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면전에서 아첨하는 한 마디의 꾸밈말이 아닙니다.

 

아, 아름답다. 어찌 사제의 정리가 이리도 절절할 수가 있는가. 추사 김정희는 북청 땅에 부처된 지 1년 뒤인 1852년(철종 3) 8월에 방면되어 도성으로 돌아온다. 그 기간 동안 이하응은 김정희로부터 일곱 통의 편지를 받았고, 편지마다에는 이하응의 난초 그림을 극찬하는 문장으로 가득하였다.

                     아무리 옛 일이라도 부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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