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서 전문의로 변신한 김호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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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3-16 10:51 조회5,354회 댓글0건본문
1997년 미국 이민을 기점으로 '김호경'과 '제시 김(30.Jesse Kim)'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호경은 가정불화 때문에 밤마다 겁에 질려 있었고, 사춘기를 성적 부진아와 문제아, 반항아로 낙인 찍힌 채 보냈다. 끝내 고교 1학년 때 자퇴를 했고, 1년 6개월을 골방에 숨어 살며 꿈도 희망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
1997년 어느 날,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었던 그에게 고모를 통한 미국 이민의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앤젤레스에 첫발을 디딘 김호경은 주위의 어떤 도움도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며 시애틀로 떠났다. '제시 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 한 마디 못하고, 땡전 한푼도 없는 제시 김의 미국 생활은 가시 발길이었다. 그러나 잡초 뽑기, 아르바이트, 조교 업무 등으로 고된 노동을 병행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공부했다. 세리토스 칼리지를 4.0만점으로 졸업하면서 '올해의 학생상'을 받았고, 이후 UCLA에 편입해 예비 의대생이 됐다.
의대 병리학부 연구실 보조로 일하며 인간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논문 집필에도 참여한 그는 워싱턴대로부터 연구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전액 장학생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현장의사의 길을 선택해 남가주대(USC)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차 때 인턴으로선 전례 없이 미국 의사 면허 국가고시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은 그는 전미 응급의학 임상 국가고시에서 3년 연속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존스홉킨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사로 주목받았다.
그는 현재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과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16일 미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한인 청소년들이 가난하거나 환경이 나쁘다고 좌절하지 말고, 열정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순간순간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뿐"이라며 "한인 청소년들이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나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위독한 생명을 살리는 그는 지난해 말 자서전 '내 시련의 이름은 자유다'(랜덤하우스)를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는 주어진다'는 분명한 신념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흔들림없이 나아갔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의 도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문제아에서 워싱턴대 전문의로 변신한 베시 김 씨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호경은 가정불화 때문에 밤마다 겁에 질려 있었고, 사춘기를 성적 부진아와 문제아, 반항아로 낙인 찍힌 채 보냈다. 끝내 고교 1학년 때 자퇴를 했고, 1년 6개월을 골방에 숨어 살며 꿈도 희망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
1997년 어느 날,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었던 그에게 고모를 통한 미국 이민의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앤젤레스에 첫발을 디딘 김호경은 주위의 어떤 도움도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며 시애틀로 떠났다. '제시 김'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 한 마디 못하고, 땡전 한푼도 없는 제시 김의 미국 생활은 가시 발길이었다. 그러나 잡초 뽑기, 아르바이트, 조교 업무 등으로 고된 노동을 병행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공부했다. 세리토스 칼리지를 4.0만점으로 졸업하면서 '올해의 학생상'을 받았고, 이후 UCLA에 편입해 예비 의대생이 됐다.
의대 병리학부 연구실 보조로 일하며 인간 세포를 배양하고 연구논문 집필에도 참여한 그는 워싱턴대로부터 연구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전액 장학생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현장의사의 길을 선택해 남가주대(USC)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차 때 인턴으로선 전례 없이 미국 의사 면허 국가고시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응급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은 그는 전미 응급의학 임상 국가고시에서 3년 연속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존스홉킨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사로 주목받았다.
그는 현재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과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16일 미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한인 청소년들이 가난하거나 환경이 나쁘다고 좌절하지 말고, 열정과 노력으로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순간순간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을 뿐"이라며 "한인 청소년들이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나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에서 위독한 생명을 살리는 그는 지난해 말 자서전 '내 시련의 이름은 자유다'(랜덤하우스)를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는 주어진다'는 분명한 신념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흔들림없이 나아갔습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의 도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문제아에서 워싱턴대 전문의로 변신한 베시 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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