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눌림의 정체가 수면마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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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9-16 12:28 조회2,0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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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검은 물체가 다가와 목을 조른다. 하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불러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귀신을 만났단 말인가. 등골이 서늘해져 한 동안 공포에 치를 떨어야 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 지용에게 어젯밤에 겪은 이야기를 했다. 대체 그 귀신은 왜 나를 찾아온 걸까. 

“가위눌렸네. 너 그거 처음 겪는 거야?” 

지용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가위눌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아직도 얼어 있는 나를 보고 씩~ 미소 짓는다. 아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자다가 귀신을 보거나, 잠에서 깼는데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현상을 ‘가위눌림’이라고 해. 성인 절반 이상이 평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한다고 하더라고. 난 어릴 때 종종 가위눌려봐서 이제 별로 놀랍지 않아.” 

뭐든 빨리 경험하고 적응하는 지용이. 가위눌림마저 나보다 빠를 줄은 몰랐다. 지용이는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오늘밤에 또 귀신을 만날까 봐 걱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대체 가위눌림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거지? 그 이유를 알아야 귀신을 만나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위눌림’에 대해 검색했다. 

네아비 지식박사의 검색 결과를 살펴보니, 가위눌림은 ‘수면마비(sleep paralysis)’라고 하는 일종의 수면장애였다. 잠자는 동안 긴장이 풀렸던 근육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만 깨어나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이다. 대개 꿈꾸는 수면, 즉 렘수면(REM sleep) 때 나타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수면마비는 깨어 있거나 반쯤 깨어 있는 상태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죽음이나 질식감,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이 문구를 읽다 보니 어제 저녁에 내 목을 조르던 귀신이 또 한 번 떠올랐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했다. 다음에 만나면 콧방귀를 뀌어줄 요량으로 검색 결과를 계속 뒤졌다. 

수면마비가 비몽사몽간에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현상이고, 이 상황에서 환각을 경험했다면 ‘입면기 환각’에 빠진 것이다. 입면기 환각은 꿈을 반쯤 깬 상태에서 겪는 착각인데, 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이 부족할 경우, 또 시각적으로 강한 자극을 받았을 때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시각적 자극이 가위눌림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 덕분에 최근에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떠올랐다. 

사실 친구 지용이 녀석은 벌써 대기업 2군데에서 최종면접을 봤고, 괜찮은 중견기업 여러 곳에서도 이미 합격 소식을 받아 놨다. 나는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 통과마저 감지덕지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공포영화를 즐겨봤고, 도서관에서는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조금 처진 마음으로 나머지 검색 결과를 살폈다. 다행히 가위눌림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 큰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잦은 가위눌림은 ‘기면증’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기면증은 밤에 충분히 자도 낮에 이유 없이 졸리고, 짧은 시간에 발작적인 수면을 취하는 심각한 수면질환이라고 했다. 

X 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가족형 수면마비도 있었지만 사례가 꽤 드물었다. 다행히 내 경우는 기면증도 유전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위눌림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푹 자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네아비 지식박사에게 ‘숙면 취하는 방법’을 묻기 시작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잠들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 좋다. 몸 안의 수면제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생성물질인 트립토판 함유량이 높은 바나나와 파인애플, 키위를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수박이나 맥주는 이뇨작용을 하므로 깊은 수면에 방해가 되고, 늦은 밤에 공포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 않다. 

결국 꿈에서 만난 귀신이 내 목을 조른 게 아니라 내 생활습관과 태도가 가위눌림 현상을 부른 것이었다. 이제 수면마비에 대해 제대로 알았으니 그 어떤 귀신이 와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당장 습관을 고칠 수 없으니 대비책을 한 가지 정도는 마련해둬야겠다. 

“영배야, 한 며칠만 형이랑 같이 자자. 형이 가위눌린 것처럼 보일 때 살짝 만져주면 돼. 알았지?”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웬 겁쟁이 짓이야!”하고 말했다. 

“겁쟁이가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을 찾는 거야. 수면마비는 근육의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의식만 깨어나는 건데, 갑자기 시작돼서 1~4분 정도 지속되거든. 근데 누가 소리 내는 걸 듣거나 몸을 만지면 쉽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이야.”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영배. 하지만 곧 “알았으니 어서 베개 가지고 와”라고 말했다. 야호! 오늘 밤에는 절대 가위에 눌릴 걱정이 없겠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으하하하.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제공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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