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자, 교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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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3-03-16 21:05 조회4,321회 댓글0건본문
오늘 아침 안개비가 내려 마음이 포근해져 있었는데, 보기 드문 멋진 소식을 접하여 하루가 마치 봄향기를 풍기는 듯 다정하다. 바로 얼마 전에 선출된 바티칸 새 교황 프란치스코에 관련된 기사때문이다. 선출된 이후 그의 남다른 생활방식에 대해 이미 들은 바 있었으므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지난 부활절 聖목요일에 행한 그의 세족식은 마음으로부터 감동을 자아낸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이의 가장 낮은 자세! 숭고하며, 정녕 아름답다.
교황 즉위 이후 첫‘성 목요일’을 맞은 교황 프란치스코는 28일(현지시각) ‘세족식’을 행했다. 세족식(洗足式)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준 것을 기리는 의식인데, 예수가 말하길, “스승이며 주인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복음 13장 11~12절). 이어 예수는 열두 제자의 발을 직접 씻고 닦은 뒤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다음날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 사흘 후 부활한다. 밭티칸 교황들은 해마다 한차례씩,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성목요일’에 12명의 카톨릭 신도들을 골라 발을 씻어 주게 되었다. 과거 265명의 교황들은 주로 도심 대성당에서 남성의 발만 씻었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남자라는 이유 때문인데 그들 대부분은 사제였다.
그런데 올해 76세의 老교황은 이 세족식의 오랜 전통을 ‘혁명적으로’ 깨뜨렸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의 청소년 소년원을 찾아가,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이민자의 자녀들로서 범죄를 저질러 수용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 12명의 발 아래 교황이 허리를 굽혀 세족한 것이다. 교황청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교황은 검은 발, 하얀 발, 문신을 새긴 발 아래 무릎 꿇고 앉아 물을 부어 씻고 닦고 입맞추고 소년들의 발을 씻고 난 뒤에는 일일이 그들과 눈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는 것.
이에 대부분의 소년·소녀들이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고 교황청 대변인은 전했다. 이들중 여자 소년원생 2명과 무슬림 2명. 그리스 정교회 신도 1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교황이 여성과 이교도의 발을 씻어준 것은 처음이다. 세족식 뒤 열린 미사에서 제266대 교황이자,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주님은 가장 높은 분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주님이 나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그의 세족은 예수의 가르침의 실천인 것이다. 그런데 교황의 약자·빈자를 직접 찾아가는 세족식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그는 교도소, 병원, 양로원 등을 찾아 수감자, 병자, 노인의 발을 씻어주었다고 한다.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발을 정성으로 씻어준다는 것, 이것보다 더한 ‘낮춤’과 ‘사랑의 실천’ 이 있을까. ‘발’이란 인체 중에서 ‘가장 아래’의 낮은 곳에 있으며, 가장 더러운 곳이고, 가장 관심을 적게 받는 곳이다. 그러기에 타인의 ‘발’을 ‘씻어주고’ ‘입맞춤’하고, 그리고 그 상대와 눈을 맞추는 행위, ‘타인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추상’과 ‘섬김’의 진정한 표현이다. 성스러움 그 자체이다. 하물며 ‘가장 높은 분’인 늙은 ‘교황’의 자세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춤만이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수도자적 자세와 청빈한 생활은 가히 상상을 넘는다. 알려졌듯이 그의 이름 프란치스코는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들과 함께 하며 무소유를 실천한 수도자인데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은 그를 모범삼겠다는 뜻이다. 자신은 스스로를 '교황'이라 일컫지 않고 '로마 주교'라고 부른단다, 추기경 시절 번듯한 공관을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 들어가 혼자 밥하고 해진 옷을 바느질해 기워 입으며, 교황은 바티칸의 카사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최대 105명의 사제가 공동 생활을 하는 기숙사란다. 그가 묵는 201호엔 나무로 짠 침대와 작은 책상, 소형 냉장고등 필수품만 갖춘 검박함, 교황은 공동식당에서 사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는 추기경 시절부터 운전사 딸린 자동차 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즐겨 이용했다. 그의 구두도 많이 닳은 모양이다. 몇몇 신부가 돈을 모아 교황 선출을 위한 로마 회의에 참석하러 떠나는 그의 낡은 구두를 새 구두로 바꿔줬다는 소문이다. 비즈니스석을 예약하려던 비서 신부를 타일러 일반석비행기표를 사게 한다.
교황 프란치스코 1세의 취임 첫 일성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스스로 가난해야한다"는 말은, 그 어느 곳보다도 오늘날 선량한 다수의 교회와 목회자들을 욕먹이고 물질과 권력욕에 물들어 속인들보다 더 속물주의에 이른 ‘강한’, ‘부자’ 한국 교회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되는 말이다. 너나없이 황금만능주의에 정신과 눈을 놓아버린 오늘날의 ‘천박한’ 우리들에게도 교황의 청빈한 모습은 숭고함이다.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탈권위주의 교황이기에 애먹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경호원들이다. 방탄 유리를 걷어낸 전용차로 바티칸 광장을 지나며 몰려든 사람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면,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그이의 신상이 위험하다. 요한 바오로 2세도 저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것. 그러니 새 교황은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과도한 물질 시대에 ‘가난’조차, ‘버림받음’조차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슬람 적대교도敎徒와 이교도 소년들의 발을 씻어주는 교황, 그 모습처럼 서구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세상의 참혹한 분쟁이 반 이상 줄어들 것이니. 한편 당신 스스로 ‘늙어서 교황 못해 먹겠다’며 교황좌를 영면도 하기 전에, 600년 전통을 깨면서 일찌감치 비워준 베네딕토 前교황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존경을 보낸다. 신임 교황을 통해 오랜만에 봄날의 맑은 빗줄기같은 뉴스들을 자주 들으니 행복해진다, 우리 사는 이 곳이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안도를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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