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요? 해리 포터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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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0-07-14 15:25 조회1,900회 댓글0건본문
▲ 서대원 원장이 외국인 근로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슈바이처’란 별명은 좀 거북하다”며 “기왕이면 ‘해리 포터’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존경받는 의사이기보다는 친근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진료비 1000원… '마천동 슈바이처' 서대원 원장
요양원·장애인 시설도 10년 넘게 찾아가 봉사 "친근한 의사 되고 싶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서내과의원의 서대원(44) 원장은 스리랑카인 환자 라피(44)씨와 10분 넘게 진료 상담을 하고 있었다. '기침을 자주 하고 몸이 무겁고 아프다'는 말에 서 원장은 "감기 몸살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말한 뒤 처방을 내렸다. 라피씨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곤 진료비로 1000원을 내고 갔다.
간호사 이정미(30)씨는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료비는 모두 1000원"이라고 했다. 라피씨는 이 병원을 5년째 다니는 단골이다.
동네 사람들은 서 원장을 '마천동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외국인 노동자와 홀로 지내는 노인 등을 위해 파격적으로 싸게 진료해주기 때문이다.
간호사 이정미(30)씨는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료비는 모두 1000원"이라고 했다. 라피씨는 이 병원을 5년째 다니는 단골이다.
동네 사람들은 서 원장을 '마천동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외국인 노동자와 홀로 지내는 노인 등을 위해 파격적으로 싸게 진료해주기 때문이다.
10년 전, 서 원장이 병원을 열 때부터 마천동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걱정돼서, 또는 비싼 진료비가 부담스러워서'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가 돼야만 병원을 찾곤 했다. 한푼 한푼 모아 고국으로 보내는 그들로선 몇천원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서 원장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그냥 보냈다.
소문이 나면서 서 원장의 병원은 '외국인 노동자 병원'이 됐다. 서 원장은 "병원에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만 7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5년 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공짜 진료를 미안해하기에 형식적으로 1000원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동네 철공소 앞을 비롯해 발길 옮기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손 흔들며 인사한다"며 "그럴 때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도 돌보고 있다. 서 원장은 개원한 지 두 달 됐을 때 한 할머니 환자로부터 "의료계가 파업하는 바람에 근처 노인요양원에도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요양원에 의사가 다시 올 때까지만 가서 진료하자'며 자원봉사 진료를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곳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 양말이나 속옷 같은 생일 선물도 사 들고 찾아간다.
"동네에 아들과 둘이 사는 할머니 환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노모를 자주 때리고 돈을 뺏곤 해요. 그런데도 이 할머니는 '장성한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도 될 수 없어요. 정말 딱한 일이죠." 그는 "앞으로 노인의학을 좀 더 공부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정말로 도움되는 노인병원을 짓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체장애인 보호시설 '소망의 집'에도 14년째 나가고 있다. 경찰대병원 인턴이던 시절에 진료봉사를 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서 원장은 "주말에도 바쁘고 다른 의사들보다 돈도 못 버는데, 다 이해해주고 사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걱정돼서, 또는 비싼 진료비가 부담스러워서'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가 돼야만 병원을 찾곤 했다. 한푼 한푼 모아 고국으로 보내는 그들로선 몇천원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서 원장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그냥 보냈다.
소문이 나면서 서 원장의 병원은 '외국인 노동자 병원'이 됐다. 서 원장은 "병원에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만 7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5년 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공짜 진료를 미안해하기에 형식적으로 1000원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동네 철공소 앞을 비롯해 발길 옮기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손 흔들며 인사한다"며 "그럴 때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 환자들도 돌보고 있다. 서 원장은 개원한 지 두 달 됐을 때 한 할머니 환자로부터 "의료계가 파업하는 바람에 근처 노인요양원에도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요양원에 의사가 다시 올 때까지만 가서 진료하자'며 자원봉사 진료를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곳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 양말이나 속옷 같은 생일 선물도 사 들고 찾아간다.
"동네에 아들과 둘이 사는 할머니 환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노모를 자주 때리고 돈을 뺏곤 해요. 그런데도 이 할머니는 '장성한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도 될 수 없어요. 정말 딱한 일이죠." 그는 "앞으로 노인의학을 좀 더 공부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 분들에게 정말로 도움되는 노인병원을 짓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체장애인 보호시설 '소망의 집'에도 14년째 나가고 있다. 경찰대병원 인턴이던 시절에 진료봉사를 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서 원장은 "주말에도 바쁘고 다른 의사들보다 돈도 못 버는데, 다 이해해주고 사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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