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노무현은 박연차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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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09-04-15 20:19 조회3,492회 댓글0건본문
노(盧)는 박(朴)에게 검찰에서 진술할 내용을 교묘하게 지시했다
그러나 박(朴)이 누구인가 '악당의 의리'를 믿는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있을까
오래전, 어떤 문사가 우리나라에는 이제 깡패세계에밖에는 의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개탄하는 칼럼을 읽은 일이 있다. 그때부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왜일까, 하는 고민을 종종 하게 되었다.
'깡패'나 '조폭' 세계의 의리에 대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환상을 가졌었다. 비록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악행을 일삼으며 살망정 충성심과 의리만은 유식한 사람, 높으신 분들보다 낫다면 그들도 근본부터 몹쓸 인간은 아니고, 혹시 어떤 사회적 지각변동이 온다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미화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고 진지한 문학에도 이들을 미화하는 유파가 있다.
이 '신화'는 범죄나 폭력 조직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믿고 싶고 나머지 사회가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검은 세계에서 '의리'가 강한 것은 그것이 조직과 조직원의 생존 자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원의 결속력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폭력이나 범죄 조직이 법망을 피하면서 세력을 키울 수가 없고, '배반'의 결과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조직을 위해서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바치는 행위도, 조직의 결정에 불복할 도리도 없고 반면 희생의 대가는 조직이 후하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 의리가 사라진 이유는 사람들이 약삭빠르고 뻔뻔스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리'를 지키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도 그에 수반하는 불이익, 불편, 고통을 감당할 의지와 인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의리'를 지킨다 해도 처지가 바뀌었을 때 그 상대가 나를 위해 희생해 주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직한 의리가 미덕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무법자의 세계에는 앞서 말한 생존적 필요 때문에 의리가 조금 더 오래 지속이 되었으나 이기적 행동이 천성이 된 세대에게는 절대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은 조폭 세계가 잦은 조직 내 불화와 배신으로 인해 매우 살벌하고 시끄러운 것 같다.
뇌물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도 '의리'는 유령처럼 배경에 존재한다. 뇌물수수는 말할 것도 없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사회정의를 거스르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받는 쪽에서는 뇌물수수가 탄로 날 경우에 아첨을 늘어놓으며 뇌물을 바치는 자가 부인하거나 적절한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 위태로운 도박을 하는 것이다. 그 기대가 어리석다는 것은 무수한 전례가 입증했지만 탐욕에 눈먼 인간은 자신의 경우는 예외가 될 것으로 믿고 검은 거래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른 뇌물수수자들처럼 부인(否認)으로 일관하다가 검찰에 가서 철야심문을 당하고서야 시인하지 않고 비교적 일찌감치(?) 자신은 모르는 사이에 부인(夫人)이 돈을 받았음을 시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에 대해 '고도의 계산된 전략이다' '자충수이다' 등의 추측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글의 주목적은 대국민 변명 내지 사과, 또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부분적 협조가 아니었고 박연차에게 그 돈에 대해서 검찰에서 어떻게 진술하라는 교묘한 지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아마도 30년 지기이며 자기에게 600만달러보다 훨씬 큰 은혜를 입은 박연차가 자신의 신변보다 노무현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허위진술이라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반대로 박연차는 노 전 대통령에게 입은 특혜는 무명시절부터의 후원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고 자신이 아니면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노무현에게 갚아야 할 부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연차가 자신의 간접적 지시를 어기고 아들에게 집을 사주려고 하니 며칠 날까지 돈을 가져오라고 한 사실까지 폭로한 데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의 분노와 서운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래서 박연차가 검찰의 '선처'를 받기 위해서―즉 plea bargaining(양형거래)을 하느라―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며 검찰에서 그런 '거짓' 진술을 한 '특별한 사정'을 밝히겠다고 했다. 즉 검찰이 박연차에게 어떤 미끼를 던져서 거기까지 실토를 받아냈는지를 밝히겠다는 말일 것인데, 무수한 거물급 정치인을 30년 이상 주물러 온 박연차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
어떤 어리석음이 범죄자나 악당의 의리를 믿는 어리석음보다 더 어리석을 수 있을까?
'깡패'나 '조폭' 세계의 의리에 대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환상을 가졌었다. 비록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악행을 일삼으며 살망정 충성심과 의리만은 유식한 사람, 높으신 분들보다 낫다면 그들도 근본부터 몹쓸 인간은 아니고, 혹시 어떤 사회적 지각변동이 온다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미화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고 진지한 문학에도 이들을 미화하는 유파가 있다.
이 '신화'는 범죄나 폭력 조직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믿고 싶고 나머지 사회가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검은 세계에서 '의리'가 강한 것은 그것이 조직과 조직원의 생존 자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원의 결속력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폭력이나 범죄 조직이 법망을 피하면서 세력을 키울 수가 없고, '배반'의 결과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조직을 위해서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바치는 행위도, 조직의 결정에 불복할 도리도 없고 반면 희생의 대가는 조직이 후하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 의리가 사라진 이유는 사람들이 약삭빠르고 뻔뻔스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리'를 지키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도 그에 수반하는 불이익, 불편, 고통을 감당할 의지와 인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의리'를 지킨다 해도 처지가 바뀌었을 때 그 상대가 나를 위해 희생해 주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직한 의리가 미덕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무법자의 세계에는 앞서 말한 생존적 필요 때문에 의리가 조금 더 오래 지속이 되었으나 이기적 행동이 천성이 된 세대에게는 절대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은 조폭 세계가 잦은 조직 내 불화와 배신으로 인해 매우 살벌하고 시끄러운 것 같다.
뇌물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도 '의리'는 유령처럼 배경에 존재한다. 뇌물수수는 말할 것도 없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사회정의를 거스르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받는 쪽에서는 뇌물수수가 탄로 날 경우에 아첨을 늘어놓으며 뇌물을 바치는 자가 부인하거나 적절한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 위태로운 도박을 하는 것이다. 그 기대가 어리석다는 것은 무수한 전례가 입증했지만 탐욕에 눈먼 인간은 자신의 경우는 예외가 될 것으로 믿고 검은 거래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른 뇌물수수자들처럼 부인(否認)으로 일관하다가 검찰에 가서 철야심문을 당하고서야 시인하지 않고 비교적 일찌감치(?) 자신은 모르는 사이에 부인(夫人)이 돈을 받았음을 시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에 대해 '고도의 계산된 전략이다' '자충수이다' 등의 추측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글의 주목적은 대국민 변명 내지 사과, 또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부분적 협조가 아니었고 박연차에게 그 돈에 대해서 검찰에서 어떻게 진술하라는 교묘한 지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아마도 30년 지기이며 자기에게 600만달러보다 훨씬 큰 은혜를 입은 박연차가 자신의 신변보다 노무현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허위진술이라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반대로 박연차는 노 전 대통령에게 입은 특혜는 무명시절부터의 후원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고 자신이 아니면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노무현에게 갚아야 할 부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연차가 자신의 간접적 지시를 어기고 아들에게 집을 사주려고 하니 며칠 날까지 돈을 가져오라고 한 사실까지 폭로한 데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의 분노와 서운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래서 박연차가 검찰의 '선처'를 받기 위해서―즉 plea bargaining(양형거래)을 하느라―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며 검찰에서 그런 '거짓' 진술을 한 '특별한 사정'을 밝히겠다고 했다. 즉 검찰이 박연차에게 어떤 미끼를 던져서 거기까지 실토를 받아냈는지를 밝히겠다는 말일 것인데, 무수한 거물급 정치인을 30년 이상 주물러 온 박연차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
어떤 어리석음이 범죄자나 악당의 의리를 믿는 어리석음보다 더 어리석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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