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하얗기 때문에 슬픈 '알비노'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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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5-05-20 09:49 조회5,6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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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지 고래박물관의 '엔젤'. 이제는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재주를 넘고 죽은 물고기를 받아먹으려 입을 벌린다. ©Dolphin Project
얼마 전 지리산에서 국내 처음으로 몸 색깔이 하얀 '알비노(Albino) 오소리'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4월 말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견된 흰 오소리의 영상을 공개하며, 알비노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무인카메라의 숫자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이달 초 홍도에서 목격된 흰갈매기 등 알비노 동물의 사례를 들며 예로부터 흰색 동물은 상서로운 징조라고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몸에 색소가 없는 '알비노(Albino)', 그 신비한 모습 뒤의 비애
'백색증(Albinism)', 혹은 '선천적 색소결핍증' 이라고 불리는 '알비노' 현상은 몸에서 멜라닌 합성이 결핍되는 유전자 변이 때문에 발생한다. 알비노 유전자(C)를 호모로 가지면 티로시나이제가 생성되지 않으므로 색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피부나 털은 하얀색을 띄게 되고, 눈은 홍채에 멜라닌 색소가 없기 때문에 망막의 혈관이 비쳐 붉은 빛을 띈다. 알비노는 어류부터 뱀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 조류, 고슴도치, 개, 고양이, 호랑이, 인간까지 다양한 유색동물에게서 나타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로는 동물실험에 쓰이는 흰쥐, 흰토끼 등이 알비노 동물들이다.
사람들에게는 눈처럼 하얀 털과 보석같은 붉은 눈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알비노 동물들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무리와 다른 생김새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어미가 잘 돌보지 않거나 물어 죽이기도 한다. 같은 무리 안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하얀 색깔 때문에 천적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야생에서의 생존율은 매우 낮다. 멜라닌 색소가 없는 피부는 자외선에 취약해 햇볕에 의한 화상이나 종양, 피부암 등 각종 피부질환에 걸리기 쉽다. 종을 불문하고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적 결함으로는 시력장애가 있다. 홍채에 색소가 없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하고 감광성(photosensitivity)이 높아 강한 햇빛 아래서는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알비노 동물이 야생에서 생존 확률이 낮다는 점은 오랜 세월 동안 동물원에서 '알비노 동물은 포획해 동물원에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오기도 했다. 또한 그 희귀성 때문에 일부 동물원에서는 근친교배로 알비노 동물의 번식을 무리하게 시도한다. 알비노 돌연변이체는 열성인자이기 때문에 부모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자식에게서 성질이 나타난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개체끼리의 근친교배는 알비노 외에도 다른 유전병을 대물림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흰 고릴라'의 불행했던 삶
아마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알비노 동물은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 우리말로 '눈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고릴라였을 것이다. '웨스턴 로랜드 고릴라(Western lawland gorilla)'종인 스노우플레이크는 기네아 에쿠아토리알(Equatorial Guinea)에서 야생에 서식하던 알비노 고릴라였다. 1966년 지역의 한 원주민은 흰 고릴라 한 마리를 포획하기 위해 고릴라 무리 전체를 사살한다. 가족을 잃고 생포된 아기 고릴라는 곧 바르셀로나 동물원으로 팔려오게 된다.
알비노 고릴라 '스노우플레이크'의 모습 ©Ettore Balocchi
동물원에 전시된 '스노우플레이크'는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관람객과 언론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흰 고릴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살아있을 때는 영화뿐 아니라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도 등장했고, 죽은 후에는 그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상의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동물원에 따르면,' 스노우플레이크'는 알비노증 때문에 빛을 보았을 때 눈이 과하게 부시는 상태인 포토포비아(photophobia, 수명) 증상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1분 안에 눈을 20번 이상 깜빡거렸다고 한다. 2001년에는 알비노증에 의한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게 된다. 점점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하고 고통이 심해지자 2003년 동물원은 그를 안락사하기로 결정했다. 스노우플레이크가 40살이 되던 해였다. '야생에서는 25년 정도 사는 고릴라가 40살까지 천수를 누리며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니 행복한 삶을 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나이 두 살에 가족을 잃고 철창 안에 갇혀 40년을 사는 삶과 야생에서의 삶,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스노우플레이크의 선택은 어느 쪽이었을까.
세상을 울린 일본 다이지의 분홍돌고래 '엔젤'
잔혹한 돌고래 포획으로 유명한 일본 와카나마현 다이지에서도 알비노 돌고래는 가장 먼저 포획업자의 표적이 된다.
일본 다이지에서 알비노 돌고래 '엔젤'이 포획될 당시의 모습. 같은 무리에 있던 70여 마리의 돌고래는 도살당했다. ©Dolphin Project
일본 다이지 고래박물관에는 '엔젤'이라는 이름의 돌고래가 있다. 알비노 돌고래인 엔젤은 다른 돌고래와 달리 몸이 연한 분홍빛을 띄고 있다. 이 분홍색 돌고래는 2013년부터 다이지 바다에서 어미 돌고래 옆에 꼭 붙어다니는 모습이 관찰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귀한 동물을 일본 돌고래 사냥꾼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었다. 2014년 1월, 포획업자들은 돌고래 떼를 만(灣)에 몰아넣는 배몰이 사냥으로 한 살도 채 안된 알비노 돌고래를 산 채로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같은 무리에 있던 70여 마리의 돌고래들이 살육돼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아직 다 자라기도 전에 어미를 잃고 수족관에 갇혀버린 분홍빛 돌고래를 사람들은 '엔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올해 초 다이지에서 알비노 큰코돌고래가 포획되는 장면. ©Dolphin Project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알비노 돌고래의 운명을 안타까워했고, 곳곳에서 '엔젤'을 방류하라는 서명운동과 시위가 열렸다. '돌핀프로젝트(Dolphin Project)' 등 돌고래 보호단체들은 다이지 고래박물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엔젤은 햇빛도 들지 않는 놀라울 정도로 좁은 수조에 다른 돌고래들과 2년째 '수감' 중이다. 2014년 10월 다이지 고래박물관에서 만난 엔젤은 어느새 사육사의 손짓에 맞춰 뛰어 오르고 물고기를 받아먹으려고 입을 벌리는, 진정한 '돌연변이'가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다. 2015년 사냥철에는 몸색깔이 하얀 큰코돌고래(Risso's dolphin) 두 마리가 더 포획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두 마리는 알비노와는 다른 '루시즘(Leucism, 백변증)'으로 인해 흰 색을 띄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시즘은 몸 속에서 색소가 전혀 생성되지 않은 알비노와는 달리 몸 일부만 색소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다이지 고래박물관에서는 흰 돌고래들을 한꺼번에 대중에 선보이는 날을 '화이트데이'라고 광고하고 기념 행사를 개최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에버랜드 '백호 사파리' 안내문에는 나와있지 않은 백호의 진실
용인 에버랜드에 '백호 사파리'에는 열 마리가 넘는 백호가 전시되고 있다. 사파리 앞에는 백호는 '태어날 확률이 1만분의 1 밖에 안 되는 희귀한 동물로, 사람을 해치는 나쁜 호랑이 백 마리를 잡아먹어야 백호가 된다는 전설 속의 동물'이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태어날 확률이 만 분의 일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내문에는 나와 있지 않은 '백호의 특징'이 있다.
모스크바 동물원의 백호 새끼. 백호는 내사시, 구개파열, 내반족, 척추측만증 등의 유전적 질병을 갖고 태어난다. ©Ksenia Krylova
'백호'라고 불리는 흰 호랑이도 알비노 현상이 아닌 루시즘 때문에 흰 털을 가지고 태어난다. 야생에서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뱅갈호랑이의 경우 1만분의 1, 시베리아 호랑이의 경우는 10만분의 1로 매우 희귀하다. 달리 말하면, 동물원에 전시되는 백호는 모두 근친교배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대부분은 순종이 아니기 때문에 종보존의 가치가 높다고 볼 수도 없다.
털의 색깔을 하얗게 만드는 돌연변이 유전자는 다른 유전적 결함도 함께 일으킨다. 시신경을 뇌의 잘못된 부분에 연결해 내사시(cross-eyed)로 태어나게 하고, 지체장애이거나 우리가 흔히 '언청이'라고 부르는 구개파열인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내반족(기형으로 굽은 발), 척추측만증, 내장기관의 결함 등의 질병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고, 불독처럼 생긴 기형적 얼굴로 태어나기도 한다.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호랑이는 오래 살지 못할 뿐 아니라 전시에도 적합하지 않아, 도태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뒷방에 갇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안면 기형을 갖고 태어난 백호 ©Big Cat Rescue
이러한 문제 때문에 2011년 6월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 AZA)에서는 회원사들이 백호, 흰 사자, 킹치타 등 흰 큰고양잇과 동물을 번식하는 것을 금지했다. AZA는 보고서를 통해 '흰 호랑이, 사슴, 악어 등 희귀한 색깔의 동물을 번식시키는 등, 의도적인 번식으로 희귀한 형질의 표출을 증가시키는 것은 동물에게서 비정상적이고 쇠약하며 때로는 치명적이기까지 한 신체 내외적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고 금지의 이유를 밝혔다. 즉, 동물원조차도 동물원에서 백호를 번식하는 이유는 '종보존'이 아닌, 자신의 눈에 아름답게 비치는 동물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입장료'인 것을 인정한 셈이다.
큰고양잇과 동물구조단체인 '빅캣레스큐(Big Cat Rescue)'는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백호의 번식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이들은 백호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호랑이 중 대부분은 정상적인 털 색깔을 가졌지만 역시 유전병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호랑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버려지는 호랑이(throw-away tigers)'가 된다며, 백호의 번식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뻐서' 태어나고 '아파서' 버려지는 알비노 개, 고양이
개와 고양이도 알비노 동물들이 있다. 개의 경우 도버만 핀셔(Doberman Pinscher), 차우차우, 페키니즈 등 다양한 종에서 나타나는데, 역시 동물원 동물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의도적인 번식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다. 동물구조단체 '노스스타레스큐(North Star Rescue)'에 따르면 알비노 동물은 시력장애, 피부질환 등 유전적 질병 때문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고, 단지 붉은 눈이 무섭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단체에서는 '알비노 동물도 세심하게 관리, 보호하면 훌륭한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며 버려진 알비노 동물의 입양을 호소하고 있다.
알비노 도버만의 모습. 코와 귀까지 분홍빛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arrowanimalhospitalsandimas.com
미국의 '도버만 핀셔 협회(The Doberman Pinscher Club of America)'에서는 알비노 도버만 핀셔에 대해,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고려하지 않고 알비노 도버만 핀셔를 번식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협회에서는 1983년부터 5년간 알비노 부모에게서 난 새끼들을 연구해, 이들이 피부가 햇빛에 취약하고, 수명증 등 시력장애뿐 아니라 잘 볼 수 없는 데서 오는 공포심 때문에 공격성을 갖기도 한다는 결과를 증명했다. 또한 1976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알비노 도버만 '시바'를 현재 번식되고 있는 알비노 개체들의 조상으로 보고, '시바'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개체들을 추적해 이들이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게 하는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아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털 색깔이 하얗고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는 귀머거리'라는 속설을 들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흰 털에 파란 눈을 가진 고양이가 다 알비노 개체는 아니다. 알비노 고양이의 눈은 색소 부족으로 분홍빛을 띄거나 아주 흐린 물색을 나타낸다. 알비노 고양이도 다른 알비노 동물과 마찬가지로 햇빛에 취약하며, 청력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아 길에서 생활하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에는 차 소리나 개가 위협적으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지리산 흰 오소리',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를 위한 '길조'가 되기를
얼마 전, 탄자니아에서 백색증을 앓는 알비노 흑인들의 인권 유린에 대한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갖고 있으면 부와 명예, 행운이 따른다는 미신 때문에 잔혹 범죄의 표적이 되고, 절단된 신체 부위는 3000-4000달러, 시신 전체는 7만 5000달러까지 거래된다고 하니, 전세계의 관심이 필요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혹은 생김새나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과 공격,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단 알비노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세상에는 슬픈 알비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주 퀸즈랜드 동해안에는 세계에서 단 한 마리인 알비노 혹등고래가 살고 있다. '미갈루(Migaloo)'라는 이름의 고래는 1991년부터 고래 떼가 이동하는 시기마다 매년 눈에 띈다. 미갈루를 목격한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위치와 사진을 공유하고 고래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등, 고래 보호 운동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다시 지리산 흰 오소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지리산에는 오소리 외에도 고라니, 삵, 담비, 딱따구리 등 수 백 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 중 많은 종이 멸종위기종이다. 그러나 겨울이면 먹이가 없어 굶주리고, 아직도 덫과 올무 등을 이용한 밀렵이 기승을 부린다. 지리산뿐만이 아니다. 가리왕산에 사는 산양,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 동물들은 곧 있으면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지리산 흰 오소리가 동물원에서 백호를 찾거나 마트에서 알비노 고슴도치를 사려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래 '미갈루'처럼 우리에게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동물들과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심어주는, 그야말로 진정한 '길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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