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씨앗 된 3억1490만달러짜리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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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3-02-22 20:39 조회4,250회 댓글0건본문
Bloomberg Businessweek 제휴
벼락부자 잭 휘태커의 씁쓸한 인생역정
욕망의 또다른 모습, 그대 이름은 ‘로또복권’ By David Samuels
잭 휘태커(Jack Whittaker)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스코트 디포트(Scott Depot)에 사는 건설 하도급 업자다. 그는 가난한 시골 농부에서 자수성가해 100명 넘게 거느린 상하수도관 건설업자가 됐다. 이미 휘태커는 백만장자였다. 그러나 2002년 크리스마스날 아침 5시45분에 깨어났을 때, 그는 평생에 걸쳐 이룬 지금까지의 모든 성취가 낡은 가죽지갑 속 종잇조각보다도 하찮게 느껴졌다. 그 종잇조각은 5, 14, 16, 29, 53, 7이 적힌 1달러짜리 파워볼 복권이었다.
잭은 2002년 12월24일 허리케인(Hurricane) 시내 C&L 슈퍼 서브 편의점에서 베이컨 비스킷을 사면서 행운의 복권을 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만 해도 그는 숫자 하나가 빗나가 당첨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빗나간 숫자는 방송사의 착오였다. 그의 손에 진짜 당첨된 복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는 배에 통증을 느꼈고,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월요일에 다시 편의점에 들른 그는 계산대 여직원에게 조용히 당첨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당첨돼 흥분한 모습도 아니신데요. 뭘….”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는 평상시 복장인 흰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에 카우보이모자 차림으로 아내 주얼, 딸 진저, 15세인 손녀 브랜디 브래그와 함께 TV 생방송에 출연해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 밥 와이즈로부터 1000만달러짜리 수표를 받았다. 이는 핼러윈데이 이후 쌓인 당첨금 중 첫 번째 지급 분이었다. 그가 복권을 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누적된 당첨금이 2억8000만달러나 됐다. 이후 복권 구입자들이 몰려들면서 당첨금이 3억1490만달러(약 3342억원)로 커졌고 휘태커가 단독으로 당첨되면서 복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차지했다.
2002년 크리스마스 날 대박 터져
당시 휘태커는 30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이 돈의 10%를 목사님 세 분께 십일조로 보내는 것입니다.”
파워볼은 미국 24개주 연합 복권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시민이 이 방송을 지켜봤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크리스마스 전에 해고했던 근로자 25명도 다시 고용하고, 학교와 기타 프로그램에 기부해 웨스트버지니아주 사람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1700만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 모두 기꺼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는 헬리콥터를 살까도 생각했고 아내 주얼은 이스라엘로 여행을 보내주고 싶었다. 금발과 담갈색 눈에 할아버지를 닮아 함박웃음을 짓는 아름다운 손녀 브래그는 그 돈으로 랩 가수 넬리를 만나고, 특별 주문한 푸른색 미쓰비시 이클립스를 사고 싶었다.
이런 휘태커의 행운은 얼마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당첨 복권을 판 편의점 C&L 주인 래리 트라그단은 그에게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10만달러를 받았다. 그는 또 복권을 판 편의점 여직원에게는 새 지프를 사라며 4만4000달러를 줬다. 12만3000달러가 넘는 집도 사줬다.
가난한 이웃을 돕겠다던 약속도 지켰다. 700만달러를 기부해 교회를 두 개나 지었고, 1400만달러를 출연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잭휘태커재단도 설립했다. 재단은 이 돈을 리틀 리그 공원을 개·보수하는 데 지원했는가 하면 지역 내 공공기관에 어린이용 칠하기 그림책도 사주었다. 이 밖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천 건의 지원 요청에도 성실히 응했다. 당초 웨스트버지니아주도 휘태커에 부과한 당첨금 세금(6.5%)으로 약 1100만달러를 받아 학교 및 노인 정책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복권 당첨금으로 받은 돈은 지금까지 사업으로 번 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나는 평생 무엇이든 열심히 일해서 얻었다”면서 “공짜로 받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언론은 휘태커가 3억1490만달러를 받았다고 보도(TV에 나온 거대한 수표에는 그 금액이 적혀 있었다)했지만 실제로 받은 돈은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다. 원래 29년에 걸쳐 해마다 당첨금을 받아야 했지만 그가 일시불로 청구했기 때문에 실제 받은 돈은 1억1338만6407달러 77센트(약 1203억원)였다. 여기서 세금을 빼면 실제로 그가 손에 쥔 돈은 약 9300만달러(약 987억원)에 불과했다. 신문에서 보도하고 파워볼이 광고한 금액의 약 30%에 불과한 금액이다. 실상이 이런데도 웨스트버지니아주 사람들은 과장된 당첨금 보도에 넘어가 승산(당첨 확률)이 희박한 복권을 계속해서 구입한 것이다(복권시장이 가장 큰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에서는 각각 복권 판매액의 34%와 20%를 세금으로 떼지만 웨스트버지니아주는 공제세율이 무려 41.5%에 달한다).
성추행·폭행 등의 소송만 460여건
미국 역사상 복권에 당첨됐다가 무일푼이 된 사람은 TV 리얼리티 쇼를 얼마든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잭 휘태커야말로 지금까지 자립정신과 근면함을 무기로 성공한 자수성가형 사업가였기 때문에 새로 생긴 재산을 잘 활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가 차라리 복권을 찢어버리는 편이 나았다고 후회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잭 휘태커의 몰락이 시작된 곳은 웨스트버지니아주 크로스 레인즈의 핑크 포니 스트립 클럽이다. 분홍색 반투명 벽과 검은 유리문에 총탄으로 구멍이 뻥뻥 뚫린 것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었다. 당시 그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마치 이 건물의 유약한 외관과 위험한 고속도로 진입로가 결합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8월5일 새벽 5시, 그는 이 건물 주차장에서 경찰을 불러 “누군가 자기 술에 약을 탔다”며 자신의 차 허머(군용차를 개량한 사륜구동 차량)에 있었던 거액이 사라졌다고 신고했다. 당시 그를 조사한 경찰은 기자들에게 “잭 휘태커의 심리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그는 검사를 위해 소변샘플을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가 고용한 사설탐정은 한 시간 뒤 쓰레기통 뒤에서 현금 54만5000달러를 찾아냈다. 이 일로 그는 클럽 지배인과 그의 여자 친구를 강도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잭 휘태커는 “나는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본 사업가”라며 “내게도 사생활이 있으니 변명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잭 휘태커는 자신이 자립정신과 근면, 적극성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므로 거액의 당첨금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는 터무니 없는 착각이었다. 핑크 포니 스트립 클럽 사건이 있은 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는 웨스트버지니아 고속도로에서 허머를 몰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체포한 경찰관 피나도는 그가 술 냄새를 풍기면서도 음주측정을 거부했다며 당시 그의 행동에 대해 “지극히 공격적이었다”고 보고했다. 당시 경찰은 그에게서 소형 권총과 현금 11만7000달러를 찾아냈다. 체포 후 그는 지방법원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상관없다. 나는 누구에게든 꺼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해 원성을 샀다. 또 그는 기름 잡아먹는 허머 자동차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복권에 당첨됐으니 비용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듬해부터 잭 휘태커는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겪은 대가는 빠르게 증가했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월25일 그는 음주 상태에서 차를 몰다, 도로 한복판에 세워둔 채 자리를 떴다. 그 결과 차안 조수석에 두었던 10만달러를 도난당했다. 물론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는 음주운전으로 기소됐다. 경찰 수사결과 그의 돈은 스코트 데포에 사는 버논 잭슨 2세가 훔쳐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일로 잭슨은 자동차 무단 침입과 중절도 등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어쩌면 잭슨은 잭 휘태커가 차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조수석에 현금다발을 놓아두었기 때문에 그냥 내동댕이친 돈을 가져갔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뒤이어 휘태커는 토드 파슨즈를 모욕하고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법정에 소환되기도 했다. 파슨즈는 세인트 올번스 소재 ‘빌리 선데이즈 바 앤드 그릴’의 지배인으로 휘태커의 매장 출입을 금지한 인물이다.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소송은 계속 이어져 2004년에 그는 니트로에 있는 ‘트라이-스테이트 레이스트랙 앤드 게이밍 센터’의 여종업원 채리티 포트너에게 고소당했다. 당시 그녀는 휘태커를 고소하면서 그가 경견(競犬) 도박을 하면서 팬티 쪽으로 자신의 머리를 끌어당겼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이 소송은 당사자끼리 합의하면서 원만하게 해결됐지만 합의금액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뜻밖의 횡재가 판단력 잃게 만들어
2004년 9월에는 세 남자가 휘태커의 집에 침입했는데 당시 집에서 다른 남자의 시신까지 발견돼 충견을 던져줬다. 당시 죽은 사람은 제시 조 트리블(18세)로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경찰 조사에서도 사망 시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 도둑이 음향기기 등 귀중품을 훔치는 장면은 휘태커의 보안 카메라에 잡혔다(트리블 사망에 대해 그의 가족들이 휘태커를 고소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문제는 해결됐다). 이들 네 명은 모두 휘태커의 손녀 브래그의 친구들로 추후 그녀의 일탈행위는 휘태커를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자상한 할아버지였던 잭 휘태커가 스트립 클럽의 추악한 단골손님으로 바뀌는 데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그는 친구, 가족과도 멀어졌는데, 먼저 아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마이크 코스니츠키 변호사는 “이런 이혼 소송은 휘태커의 성격적인 결함일 수도 있겠지만, 거액 복권 당첨자들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코스니츠키는 지금까지 거액 복권 당첨자 6명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뉴욕의 로펌 ‘보이스, 실러 앤드 플렉스너’(Boies, Schiller & Flexner) 소속 변호사로 고객 중에는 지난 2004년 1억4900만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된 전직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주차장 관리인 후안 로드리게스도 있다.
코스니츠키 변호사는 “대부분 복권 당첨자는 자신의 행운 때문에 커다란 죄의식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흔히 당첨자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시달리는데, 이유는 당첨금 일부를 나눠줄 것으로 기대했다가 받지 못하면 분노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첨자들은 자금관리와 심리에 대해 좋은 조언을 얻지 못해 갖은 협박을 당하며 이들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대부분이 막대한 재산에 의지해 탐닉의 길로 도피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코스니츠키 변호사는 복권 당첨자보다 (가난한 처지에서 갑자기 거부가 되는) 프로선수가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말한다. 프로선수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받는 데다 대학 1~2학년에 심리적 불안감을 떨쳐버린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르브론 제임스(NBA 마이애미 히트 소속 농구선수)에게는 친구 매버릭 카터가 있는 데다 주변에 법률, 금융, 회계, 계약 등에 통달한 고학력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복권 당첨자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당첨되는 것이지요.”
또 그는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벼락부자의 위험성을 사전에 잘 알고 있어 이를 선수들에게 철저히 교육시키는 데 비해 복권 당첨자에게는 초보자 교육과정이 전혀 없다”며 아쉬워했다.
자립정신과 오만, 막대한 부가 하나로 뭉쳐진 휘태커는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살한 10대 소녀 브래그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휘태커의 외동딸 진저가 만성 림프종을 앓고 있어 손녀 브래그는 할아버지인 휘태커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할아버지와 매우 친했다. 복권 당첨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할아버지에게 전화해서 하루 있었던 일을 다정하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에는 종종 할아버지 사무실에도 들렀다. 휘태커의 한 친구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한가한 시간에는 침대에 둘이 함께 앉아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휘태커의 꿈은 브래그가 21세 되는 해에 회사와 모든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 애(브래그)는 내 인생의 빛나는 별이자, 나의 전부였다. 그 애가 태어나는 날부터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애를 보호하고 보살폈다”고 말했다.
애지중지했던 외손녀 마약에 찌들어
휘태커는 손녀에게 돈과 선물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특별 주문용 푸른색 미쓰비시 이클립스 외에도 자동차를 4대나 사주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브래그가 하루 용돈으로 5000달러를 받는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돈은 행복이 아니라 그녀 주변에 마약상과 잡범들만 들끓게 만들었다. 휘태커가 횡재(복권에 당첨)하고 1년이 지나기 전에 브래그는 옥시콘틴(효과가 모르핀과 유사한 진통제) 중독치료를 받았으나 곧바로 재발했다. 당첨 1년 뒤 휘태커는 AP통신 기자에게 “그녀의 친구들이 원한 것은 브래그가 아니라 돈이었다”면서 “이런 상황은 열여섯 살 소녀가 이겨내기에는 너무도 힘든 일”이라고 고백했다.
돈을 보고 몰려든 동네 아이들과 브래그는 낮에는 낮잠을 자지 않으면 쇼핑을 했고, 밤에는 정처없이 차를 몰고 다니면서 정크 푸드를 마구 사먹었다. 2004년 9월 휘태커 집에 무단 침입했던 친구 셰이버는 그녀가 마약도 대량 구입해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녀의 차를 들여다본 모 기자는 그 안에 과자 봉지, 음료수 병, DVD, 100달러를 내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5달러, 10달러, 20달러짜리 지폐가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브래그의 한 친구에 따르면 하도 돈이 많아 100달러짜리 지폐들이 차 안에서 날아다니다가 밖으로 날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4년 휘태커는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돈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유산을 물려받으려 하지도 않고요. 오로지 마약만 찾습니다.”
물론 휘태커 자신에게도 문제가 많았다. 추정키로 그가 복권 당첨 이후 연루된 소송만 460건에 달한다. 일부 소송은 그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얄팍한 술수였다. 그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빌려주었던 돈을 돌려받으려 했으나, 대부분 비용만 들어갈 뿐 성과가 없었다. 카지노는 그에게 100만달러가 넘는 빚을 갚으라고 고소하기도 했다. 당시 휘태커는 맞고소를 통해서 카지노가 자신에게 돈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이 개발한 슬롯머신을 이 카지노가 사겠다고 약속했는데 나중에 이를 어겼다며 해당 업체를 고소한 것이다. 소송 기간 동안 휘태커는 보안관을 경호원으로 채용하여 집을 지키게 했다. 덕분에 음주운전에 단속되는 사례는 줄었지만 자신이 치외법권 지대에 있다는 나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2004년 12월9일 휘태커는 이제 음주운전 소송을 피하려고 운전면허를 반납했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 입원까지 감행했다.
그때 17세가 된 손녀 브래그가 실종됐다. 12월4일 행방불명된 그녀는 보름 뒤인 12월20일 세인트 올번스 외곽에 있는 비자치지역 스케리 크리크의 한 고물 자동차(밴)에서 비닐 방수포에 싸인 채 발견됐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탓에 경찰은 문신을 보고서야 브래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견 당시 브래그는 알약과 주사기를 브래지어에 숨긴 상태였다. 사망 시점 체내에는 코카인과 메타돈까지 들어 있었다. 약물 과다복용이 사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장례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힌튼에 있는 로널드 메도우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휘태커 부부는 사람들이 꽉 들어찬 장례식장에 나란히 앉아 랩 가수 넬리의 노래를 들었으며 브래그의 무덤 옆에서 흰 비둘기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브래그가 죽은 뒤에도 휘태커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08년 4월 부인 주얼과의 이혼이 확정되면서 42년의 결혼생활은 파경을 맞았다. 그리고 이듬해 7월에는 다니엘스의 레이크 드라이브 호화 저택에서 외동딸 진저의 시신이 발견됐다. 향년 42세였다.
2008년 1월25일 잭 휘태커는 또다시 C&L 편의점에서 복권을 샀다. 복권 대변인 낸시 불러는 휘태커가 숫자 네 개와 파워볼 숫자를 맞춰 당첨금 1만달러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숫자 하나만 빗나가 막대한 당첨금을 놓친 실로 엄청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이은 불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큰 당첨금을 받은 이후 10년 동안 휘태커는 좀처럼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부에서는 그가 무일푼이 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의 이름은 전화번호부에도 실리지 않았고, 명칭과 주소가 다양한 그의 회사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소득신고서에 나온 잭휘태커재단의 주소지에는 진흙투성이 공터 위에 트레일러와 중고 건설장비 몇 개만 놓여 있었다. 공터 끝 작은 단층 건물의 문에는 “벨을 누르세요”라고 적힌 표지판만이 붙어 있었다.
아내와 이혼…외동딸도 사망
10월1일 기자는 벨을 누르고 빗속에서 그를 기다렸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미소짓는 담갈색 눈의 금발 소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손녀 브래그였다. 카펫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추정하건데 안내 데스크 옆의 나무는 죽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그 뒤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그 사람(잭 휘태커)은 여기 없다”며 지프에 기름을 채우면서 앉아 있었다. 대신 그는 거기서 30분 거리에 있는 휘태커의 다른 사무실 위치를 알려줬다. 트랙터 대리점 맞은편에 사무실로 쓰는 자그마한 집이 있었다. 입구에 세워둔 금색 허머 번호판에는 미소짓는 브래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나는 문에 쪽지를 붙였고, 차 앞 유리에도 쪽지를 남겼다.
다음날 아침 다시 왔을 때에 허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휘태커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실내 난방기가 가동되는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30분 뒤 나는 다시 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5분 뒤 휘태커가 운전하는 금색 허머 자동차가 반대편 차선에서 지나쳐갔다. 집을 향해가는 그를 빨리 쫓아갔다.
길가에 주차한 다음 그의 집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집 밖 우편함 옆에서 픽업트럭의 수염 기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휘태커는 10분 뒤 목사라고 소개한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떡 벌어진 어깨와 튀어나온 배에, 평소대로 흰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에 카우보이모자 차림을 한 그의 모습은 마치 산중의 악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며 올해로 자신의 나이가 65세라면서 무료로는 인터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는 그에게 사람들이 절대로 피하고 싶어 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그 이야기를 해주면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무료로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울러 지난 10년 동안 그가 겪은 일은 행운을 믿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이야기이자 선의가 뜻밖의 피해를 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단 말입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때로는 나도 내가 싫어지죠.”
그는 이번(2012년) 크리스마스가 자신이 복권에 당첨된 지 10년째 되는 해라는 생각에 무너진 자존심과 쓰라림을 동시에 맛보는 듯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이제 역사상 최대 복권 당첨자도 아니에요. 한 달 전 누군가 상금이 3억2700만달러(약 3467억원)가 걸린 복권에 당첨됐다던데, 이제 나는 기네스북(세계기록)에서도 밀려났습니다.”
그가 제시한 인터뷰 비용은 1만5000달러였다. 그는 돈을 내지 않으면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일푼 자산가가 됐다는 보도는 거짓이라고 밝혔다. 그가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은 순전히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TV와 신문의 거짓 보도에 대해 무대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였다.
“이것이 저의 유일한 대응방법입니다. 제멋대로 기사를 쓰려면 돈이라도 제대로 주셔야죠. 저를 창녀 취급해도 상관 없어요.”
그는 캐비닛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제 인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안한 대본이 저렇게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잘못된 내용이죠. 진실된 내용이 없습니다.”
갈수만 있다면 복권 당첨 전으로 가고파
옆에 있던 목사가 웃었다. 휘태커는 그에게 교회를 지어주었고 아프리카 선교자금도 대주었다. 이들은 함께 사냥도 갔었다. 목사는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듯이 휘태커에게도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저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메리제인 교회(휘태커가 다니는 교회)를 세웠던 시절로 말이죠.”
휘태커에게 “당신은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도 백만장자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아무도 내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나의 선행만을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목사가 똑똑하지만 고집 센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그때가 더 살기 좋았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휘태커가 슬픈 목소리도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때가 훨씬 살기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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