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리고 가을 소국 (宵火)

페이지 정보

관리자 작성일08-10-13 11:20 조회6,253회 댓글0건

본문

추억, 그리고 가을 소국 (宵火)

고은영 


밤마다 연애편지를 쓰느라
고뇌하며 엎딘 시간에
방안의 낡은 유리창 문은
자꾸만 덜컹대며 울었다
바람이 긴 골목을 따라 쌩쌩 불고
초 저녁 오름을 타오르던 불길이 불안하게도
가슴에 선명한 음영으로 다가오거나
혹은 달빛 젖은 그리움 속에
잠 못 이루어 뒤척이는 동안

바람 이는 골목 어귀
어쩌면 진통으로 해산하는 행복을 바라며
너는 온 밤을 하얗게 지샜는지도 모른다
가난하여 초라했고 가난하여 슬펐고
가난하여 절망했던 순간들
볼품없는 가난이라고
내면의 아름다움이야 없었겟느냐
가난 속에 도사린 꿈과 더불어 실낱같던 희망은
또 얼마나 비루했겠느냐 말이다

너는
초연하고 은은했던 것이다
소담하고 소박했던 것이다
정겹고 친근했던 것이다
성산포 작은 동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매혹적인 소녀의 정갈한 몸짓처럼
단아한 모습으로 서있던 너는 열여덟

지서를 지나 춘자네 집 앞
우체국 돌담길에서도 은유의 얼굴로
영혼에 스미던 그 짙고 고운 향기
갈바람 타고 환한 미소로 대신하던
그래, 그래 너는 사춘기

20081001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詩) 게시판 목록

Total 115건 1 페이지
시(詩) 게시판 목록
  • 화사 — 서정주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2   293회     추천    비추천
  • 내가 이 땅에 태어나가장 아름다운 순간은네가 나를 처음 보던 그 순간.너의 눈동자 속에내가 비치던 그 순간세상의 모든 꽃이 피어났다.그 후로 나는네 눈동자 속에 살고네 숨결 속에 숨 쉰다.사랑이란그런 것 아니겠는가.서로의 눈동자 속에영원히 사는 것.- 서정주 -
  • 청노루 — 박목월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2   289회     추천    비추천
  • 머언 산 청운사낡은 기와집.산은 날이 저물어가는 곳마다어둠이 내리는데푸른 안개 속에노루 한 마리외로이 서 있네.그 노루의 눈빛이내 마음을 울린다.청노루야,너도 외롭구나.- 박목월 -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2   269회     추천    비추천
  •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봄은 오는가?나는 내 손에 피 흐르는 한이 땅을 잊지 않으리.이 땅의 봄을다시 찾으리.아, 빼앗긴 들에도봄은 오고들에는 푸른 물결이 일어난다.그 물결 따라내 마음도 설렌다.- 이상화 -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2   270회     추천    비추천
  • 껍데기는 가라.봄날의 껍데기는 가라.가을에도 푸른그 소나무와 같은우리의 정신을 위하여껍데기는 가라.하늘과 땅 사이에참된 생명이 살아 있는 한껍데기는 가라.오직 하나뿐인진실한 마음으로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
  • 저녁에 — 김광섭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64회     추천    비추천
  • 저녁이면나는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긴다.하루가 저물고별이 하나씩 뜨기 시작하면내 마음도 별처럼하나씩 켜진다.어둠이 내리면나는 조용히 말한다.고마웠다고오늘 하루도고마웠다고.- 김광섭 -
  • 자화상 — 서정주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58회     추천    비추천
  • 나는 이 땅에 태어나이 땅의 바람과 햇살을 먹고 자랐다.내 얼굴에는 이 땅의 흙이 묻어 있고내 눈동자에는 이 땅의 하늘이 담겨 있다.비바람에 시달린 나무처럼내 몸에는 상처가 많지만그 상처마다 새싹이 돋아나고꽃이 피어난다.나는 이 땅의 아들이다.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으…
  • 행복 — 나태주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81회     추천    비추천
  • 행복은늘 그런 법이다.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가까이 있는 것.눈을 감으면더 잘 보이는 것.귀를 막으면더 잘 들리는 것.그래서 나는오늘도 행복하다.네가 있어행복하다.- 나태주 -
  • 빈 집 — 정호승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79회     추천    비추천
  • 누군가 떠난 빈 집에는바람이 산다.부엌에는 빈 항아리마당에는 빈 그네.문풍지가 울어 대는 밤빈 집을 찾아온가을비 한 줄기.그리고 또 한 줄기.빈 집은 가을비를 품고서럽게 잠든다.- 정호승 -
  • 새 — 천상병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91회     추천    비추천
  • 새는나뭇가지에 앉아노래한다.새는무심한 듯날개를 접는다.새는내 마음 속에살고 있다.나는새가 되어날고 싶다.- 천상병 -
  • 백자 — 백석  
  • 최고관리자   2026-06-15 23:50:51   268회     추천    비추천
  • 백자는 아직도 조선의 얼굴이다.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그 순백의 빛깔은민족의 혼을 닮았다.푸른 용이 구름을 헤치는그 모습 속에우리의 꿈이 숨 쉬고우리의 슬픔이 녹아 있다.백자는 아직도조선의 얼굴이다.- 백석 -
게시물 검색
Donation

Coinbase
Robinhood

광고를 이용해 주시면 싸이트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글이 없습니다.
Poll
결과

New Server